어른을 모시고 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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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어머니께 얹혀산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래도 하기 좋은 말로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치고

어른이 계시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 많습니다.

우선 일 년에 몇 번은 수지가 맞습니다.

어버이날이라던가, 어머니 생신 등에 누구라도 어머니를 뵈러오면

빈손으로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꽃 고기 등을 한 아름씩 들고 옵니다.

멀리 계시는 오라버니는 자주 곶감이나 생선을 부쳐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먹는 거 사양할 줄 모르는 저는 저절로 얻어먹게 됩니다.

그것도 어머니께서 깎아서 주시니까 저는 먹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어머니 우스개 말씀으로 "우리 딸! 씹어달라고 안하니 장하다." 이러십니다.

먹으라고 가져다 주셔도 바쁘다는 핑계로 밀어놓고 먹지를 못하니까

깎아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저는 한 술 더 떠서 "어머니가 틀니만 아니면 씹어달라고 할 탠데

틀니라서 너무 수고스러울 것 같아서 제가 씹어 먹을게요."이러면서

실실거리면, 어이가 없으신지 웃으십니다.



점방에 나오셔도 앉아 계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온 동네 청소는 다 하고 다니시고

점방 안에서는 약포지를 끼워주시고 자잘한 일들을 도와주십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복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복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큰 복은 어머니께서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겁니다.

지금껏도 어머니가 저를 도와주시고 돌봐 주십니다.

그러면서도 늘 야단은 맞습니다.

어른이 되서 뭐 야단맞을 일이 있냐고 하시겠지만

어머니 눈에는 늘 미숙하고 걱정스러워 보이시나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머니께서 큰 도치 결혼식 과정에 전혀 관여를 안 하시는 겁니다.

뭘 여쭤보면 "나야 뭘 알겠니? 요즘 식대로 따라가야지."

이러면서 저에게 전적으로 일임을 하고 알아서 하라고 하십니다.

결혼식 당일 날 폐백을 받을 때 입니다.

전에는 신부가 시집 식구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을 폐백 드린다고 했는데

이제는 양가에서 같이 폐백을 받는 다고 하면서 남편과 저를 오라고 했습니다.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불려가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겠어서

어머니를 함께 가시자고 했더니 그럴 일이 아니라며 한사코 사양을 하시는 겁니다.

엄마 아빠만 절 받으면 된다고 그러시는 겁니다.

혹시 도치 결혼을 시키면서 어머니 뭐 서운한 것 있으신가? 나중에 어머니께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럴 일이 뭐가 있냐고 도치는 네 소관이지, 할머니가 나서면 주책없어

보일까봐 그런다고 하십니다.

할머니가 나서서 참견을 하다보면 일만 복잡해지니까

부모인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자신의 간섭범위를 정하고 절재를 하셨던 겁니다.


평소에는 어머니 위세를 믿고 저는 동생들에게 전횡을 하는 편입니다.

오라버니는 좀 어렵지만 동생들은 어머니 말씀이라고 하면

다들 꼼짝 못하고 명령을 듣게 됩니다.

나는 그런 습관대로 도치일도 어머니께서 일머리를 코치해 주실 줄 알았는데

매정할 정도로 손녀의 일에는 멀찍이 구경만 하고 계셨습니다.

평소 영향이 미치는 범위를 자녀들까지로 만하시기로 어머니 나름 경계를 긋고

손자들은 그 부모가 알아서 하라고 자유를 주셨던 겁니다.

80이 넘으신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사리분별이 분명하시니

저는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는 줄 압니다.

결혼식에 참여했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우리 어머니를 부러워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친구들은 물론이고 살아계셔도 병환으로 무진 고생을 하는 터라

깨끗한 노인이 분홍색 한복을 입고 손녀 결혼식에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도치 시댁에서도 할머니가 계신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른이 계신 집안에서 큰 사람이라 예의가 더 있을 거란 기대 때문입니다.


80넘으신 할아버지가 아침에 눈 떴다고 할머니께 야단맞는 다고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이웃에서도 어떤 할머니가 돌아가실 듯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더니

다시 살려놨다고 괜히 병원에 모시고 갔다고 며느리 되시는 분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평소 치매 때문에 가족을 많이 괴롭히긴 하시지만 그래도 돌아가시지 못하고

살아나신 것이 축복이 아니고 원망이 되는 그런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어머니는 가족에게 짐이 되시기는커녕 자녀를 끝까지 도와주시고

발을 뺄 때는 단호하게 경계를 그으시는 어머니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이제 장모님 소리를 듣는 위치가 되다보니

어머니 계시다고 미숙하게 행동하는 것들을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우리 도치에게 우리어머니처럼 할 자신은 없습니다.

옛날과는 환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런 시간적 여유도 없고 마음도 없습니다.

그냥 어머니 후광(!) 아래 동생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살아야하겠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살면 여러 가지로 수지맞는 일이 많습니다.^^




순이

5 Comments

  1. 아킬러스

    2010-04-07 at 16:39

    ㅎㅎ 병원에서 노어른을 살려주었다고 불평하는 여자는 며느리이고 살려주었다고
    감사하다는 여자는 딸이지요,,순이님도 친정어머니를 모시니..좋은점이 많지요..시어른을 모시면..좋은점도 좋게 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훌륭하겟지요..ㅎㅎㅎ   

  2. jh kim

    2010-04-07 at 21:43

    순이님
    아침부터 눈물
    흘리게 하십니까?
    어머님 살아생전에 큰아들이 효도한번 못하고 하늘나라로
    주소를 옮겨가신 울엄니 그리도 건강하시고 그리도 대단하신줄로만 알고 살아온 큰아들
    그러나 울엄니는 마음이 그리도 약하셨는데
    마지막 암에 걸리셔서 의사를붇드시고 우리 큰아들은 못하는게 없는사람이라시며 우리
    큰아들이 반드시 살려줄꺼라고 굳게 믿으셨다는 울엄니
    육남매 모두 잘키우시고 그많은 시집 가솔들 모두우애 좋게하시고
    이제조금 호강하시려나 했는데 가셨으니
    순이님 왜이리도 눈물이나는지요?
    어머님께 잘해드리세요
    죄송합니다   

  3. 데레사

    2010-04-07 at 22:58

    어머님이 정말 사리가 분명하십니다.
    저도 한 수 배웠어요. 손주들 일에는 일체 간섭을 안해야 겠습니다. ㅎㅎ   

  4. SunLim

    2010-04-10 at 18:25

    아나로그 시대와 디지탈 시대를 조화롭게
    꾸며가시는 어른이십니다.   

  5. 라금자

    2010-04-12 at 13:09

    참 복도 많네요. 어머님이 건강하시니 부럽기 한이 없습니다.
    오밀조밀 이야기 참 재미있게 잘 이끌어 나가세요. 순이님의 글을 읽으면서. 또는
    읽고 나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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