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 탈출과 춘향전

모차르트의 후궁 탈출은
“후궁으로부터의 도피”나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는 제목만 듣고생각나는 느낌은 왕비가 아닌 궁녀 즉 후궁이 탈출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궁은 궁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렘 즉 보통 궁궐 내의 후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렘은 금단의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 하림이 터키어 풍으로 변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의 풍습이나 관습에는 아라비아의 것이 계승된 것이 많은데,
하렘은 이슬람시대부터 엄격하게 지켜져 남녀 간의 접촉을 금했습니다.
하렘에는 그 성의 주인 되는 남자만 드나들 수 있고
그 외의 남자로는 아버지나 자녀들, 형제만 가능한 곳입니다.
하렘을 남자들이 겉으로는 야만적이라고 규탄을 하지만

속으로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하는 군요.

오직 한 남자만을 바라고 기다리는 여자가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을 거느린 하렘의 성주가 있었다고 하니 부러워 할 만하지요?^^

후궁탈출은 징슈필이고 독일어로 된 노래연극입니다.
그래서 오페라 보다는 연극의 한 장르로 취급되곤 합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에 노래가 불리는 형태이고 대사가 중요한 기능을 차지합니다.
후궁탈출은 다른 오페라보다 연극적인 요소가 두르러지고 연기의 비중도 높습니다.
후궁탈출에서는 노래를 하나도 부르지 않는 터키의 태수가 있습니다.
비중이 높은 역활이지만 태수는 시종 대사만 할 뿐 노래는 하지 않습니다

후궁탈출의 줄거리는 우리나라 춘향전과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춘향과 이도령, 방자와 향단이 그리고 변사또가 등장하는 춘향전과 마찬가지로
후궁탈출에는 벨몬테(이도령) 춘향(콘스탄쩨) 블론데( 향단) 페드릴로(방자)
태수 (변사또) 이렇게 대입시켜서 보면 재미있습니다.

벨몬테의 약혼자 콘스탄쩨는 시녀 블론데와 시종 페드릴로와 같이 해적에게 사로잡혀
터키 태수에게 팔려가 붙잡혀있는데 태수의 강력한 구애를 받습니다.
여기서 춘향전과 다른 것은 변사또처럼 권력을 이용해 강제로 사랑을 얻으려 하지 않고
콘스탄쩨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태수가 설득한다는 것입니다.
벨몬테는 그의 연인 콘스탄쩨를 구해내기 위해 태수의 궁전을 찾아갑니다.
궁지기 오스민의 방해를 받지만 어찌어찌해서 벨몬테와 콘스탄쩨의 재회가 이루어집니다.
벨몬테가 시종과 시녀와 힘을 합쳐 탈출할 계획을 세웠으나 탄로가 납니다.
궁전의 넓고 큰 방에 잡혀온 그들은 태수로부터 사형을 선고를 받습니다.

그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벨몬테와 콘스탄쩨의 열렬한 사랑에 감격한 나머지
태수는 4인을 모두 석방시켜 자유의 몸이 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춘향전이나 후궁탈출이 다 해피앤딩이지만 결말이 조금 다릅니다.
춘향전에서는 이도령에게힘의 중심이 옮겨가서 변사또를 처벌하지만
후궁탈출에서는 태수가 관용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복수처럼 추한 것은 없다"며 네 사람 모두 조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합니다.
원수의 자식을 알고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일부러 찾아가서도 복수를 할 판인데 손에 잡힌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태수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태수가 이슬람교도가 아니고 원래 스페인 사람이라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유럽 오페라에서 이슬람교도는 우스꽝스럽고 돈 많고 무지한 남자로 묘사 되는 일이 많습니다.
태수가 스페인 사람이기 때문에 관용을 베푸는 모습은 조금 억지입니다.
미국 영화에서 미국인의 우월한 모습을 그려내는 인종우월주의를
은연중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페라에서는 음악가가 유럽 사람들이다 보니
기독교와 유럽인종을 좋게 표현하고 이슬람 종교와아랍인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후궁탈출에서도 힘 있는 자가 관용을 베푸는 태수를 기어이 유럽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후궁탈출은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유행한 탈출오페라의 전형입니다.
탈출 오페라는 대다수가 기독교도의 여자가 납치당하여
이슬람교 영주의 하렘(후궁)에 감금되면서 온갖 유혹을 받지만 이를 이겨내고
그리스도교 남자에게 구출됩니다.

본인의 사회적 기반과 관련시켜 그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이데올로기적 견해라 합니다.
이념적 견해는 자칫하면 인간의 의식형태를 현실 생활에서 분리하여 관념론으로
흐르게 하기 쉬운 것이었으나 요즘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왼쪽 오른쪽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자신의시선만으로 모든 현상을 재단하는것을 봅니다.
전쟁 중인 것도 아닌데 좌파니 보수 꼴통이니 하면서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념이나 인종 종교는 항상 갈등의 원천이 되었고 분열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념이 사회적 기반에 관련시켜 그 이해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요즘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종교와 인종문제를 슬쩍 끼워 넣은 후궁 탈출보다
우리의 춘향전이 훨씬 쉽고 단순하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내 이름이 콘스탄쩨이고 보면 순결한 여인의 표상으로
콘스탄쩨를 그려냈으리란 유추가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형별이 가해지더라도“는 커다란 위협 속에서도 정절을 지켜내는
소프라노의 장대한 아리아입니다.
거의 10여분에 걸쳐 노래하는데 혼신을 다해 정절을 지키는 모습은
동양의 심청이나 유럽의 콘스탄쩨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

주요한 아리아로는“아, 나는 사랑했었노라” (소프라노)
“어떠한 고문을 가한다 해도”( 소프라노)

베이스 파트중 가장 저음이 나오는 "오, 나는 뭐라고 승리를 기뻐할까" 가 있습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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