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외롭고 파괴적이고 괴로운 청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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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재정한 오늘의 작가상 역대의 수상작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한수산의 부초”, “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등은 많은 분들이 읽었습니다.
그런 소설을 생각하고 201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혜나의 제리“ 를
올리뷰 리뷰에 응모 했더니 책이 왔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오늘의 작가상에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이 선정됐다는 것에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책의 내용은 한 시간 정도만 읽으면 끝낼 수 있는데
책장을 넘기기 두렵고 괴롭고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습니다.
무슨 도색 잡지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기성세대와 단절된
화성인을 보는 듯 낯선 장면들입니다.
기성의 모럴로는 도저히 공감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들입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이런 얘기가 소설 속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제리는 호스트바에서 호스트로 일하는 청년의 닉네임입니다.
제리는 호스트바에 나가서 여자들의 성적 노리개를 자청하여
돈을 받고 자기를 산 여자들을 즐겁게 해 주고 수고비를 받습니다.
우리 부모세대에서는 남자가 기생이 있는 술집에 드나들다
맘에 들고 예쁜 여자를 보면 집사주고 살림을 차렸다는 애기는 들어 봤는데
요즘엔 돈 많은 여자의 맘에 들기 위해 남자들이 온갖 애교를 부리고
그런 여자의 팻 (애완견)으로 살고 싶은 남자애들이 많다는 겁니다.
아니면 연예인으로 나서고 싶고 더 큰 꿈은 얼굴 성형을 해서라도 더욱 예쁘게(?)
고쳐가지고 호스트바에서 에이스로 살고 싶어 합니다.

어머니와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눈빛도 마주치는 일 없는 냉랭한 모녀 관계입니다.
술과 담배가 없으면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남자를 찾아가서 자신을 학대해 주기 바라기도 하고
오락실에서 밤을 세워가며 게임에 몰두하기도 하는
정말 읽기조차 괴롭고 답답한 청춘입니다.
싱싱하고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청춘이어야 할 시기에
병이 이리 깊어 지도록 우리는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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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사람입니다.
상상하는 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호스트바 이야기를 신문기사에서 읽어서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그럴줄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여자 대학생이 남자 10명 세워놓고 맘에 드는 사람을 선택 합니다.
선택된 사람은 자기를 선택한 여자 옆에서 담뱃불을 붙여주고
술을 따라주고 노래를 부르는 등 온갖 애교를 떨어야 합니다.
우리세대의 사람들은 혹시 남자 여자를 바꾸어 쓴 것 아닌가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세상이 뒤집혔다고 말씀하시더니 정말 세상이 뒤집혀졌나 봅니다.

세상이 바뀐 것을 넘어서 뒤집어 졌다고 말하면 20대 청년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남존여비 사상에 절여있는 꼴 보수의 이야기라고,
남자는 여자를 사서 놀 수 있는데 여자는 왜 남자를 사서 놀면 안 되는 거냐고.
그러나 돈을 벌어보지도 않고 돈에 대한 가치가 생기기도 전에 부모에게 받은 용돈으로
남자를 사고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여관을 가고 오락실에서 밤을 새우고
이러는 것은 앞으로 살아야 할 긴 세월에 얼마나 더 큰 고통이 기다릴까 두려운 것입니다.
희망을 바늘 끝만큼도 세울 수 없는 아프고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의 이십대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맨 정신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이나 꿈은 둘째 치고
선생님이나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진다면 그렇게 막막하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도 포기하고 막가기로 작정한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피 끓는 청춘의 삶이 왜 이렇게 막막하기만 할까요?
우선은 부모와의 관계가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귀에 구멍을 뚫어서 볼펜 깍지를 끼워 귓불을 넓히는 아이들도 있고

귀에 하도 여러 개의 귀걸이 구멍을 뚫어서 더 뚫으면 귀가 완전히 찢어질 것 같다고 더 뚫지 못하고
6~7개의 귀걸이를 달고도 만족을 못하는 숙녀도 봤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그런 것으로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귀를 뚫는 것은 고전이고 눈 위에나 코 그리고
배꼽에 링을 달고 혓바닥과 입술에까지 피어스를 한 사람들을 봤는데
자신의 몸을 학대함으로 얻어지는 쾌감 같은 것은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 정도로 아픈데 그럴때 자신이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소설가가 자신의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하지만
이런 청년 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리라곤 나는 여태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책을 돈을 주고 샀다면 읽지 않았을 겁니다.

읽는 것 만으로도 불쾌하고 거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뷰를 써야한다는 책임감에 읽기는 했는데
이렇게 불편하고 막막한 심정은 책을 읽던 중 처음 느끼는 감정입니다.

외롭고 갑갑하고 막막한 우리의 자녀들!
스스로를 파괴한 청춘들을 어찌해야 좋을 런지요.

순이

3 Comments

  1. 데레사

    2010-08-13 at 06:26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도 그런 내용으로 쓰여진게
    있다니……

    책도 덮어놓고 신청하기가 겁날것 같습니다.   

  2. 아름다운 석양

    2010-08-14 at 00:17

    저도 순이님과 똑같은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이책을 읽어야 하나 참 중년인 남자가 하기도 힘든 행태를 소설을 통하여 생활을 보여
    주는 젊은세대 정말 이렇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이 걱정된다 그리고 책 읽는 동안 줄곳
    누가 내용 이라도 같이 볼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리뷰도 제대로 올릴 수 없었어요
    글 솜씨도 없지만요 이런책은 올리지 않았으면 생각 했던것도 사실입니다
    잘 보고갑니다   

  3. 생각하기

    2010-08-16 at 12:28

    모르는 세상이 참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부자들의 삶’을 가장 모를 것 같았는데 몰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삶’을 모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엇습니다. 집에 있는 두 아들들이 젊은이의 대표라고 생각해서인가 봅니다.
    엄청난 타락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소설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군요.
    소설이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건 옛날 얘긴가요?
    저는 요즘 김영하씨의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끝냈습니다.
    깔끔하고 재밌습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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