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에서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생각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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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을 건너면서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와
윤심덕이 사랑했던 남자와 현해탄에 몸을 던지기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을 마감한 그녀를 생각했습니다.
일본을 향해 갈 때는 침대에 누운 채로
올 때는 뱃전에 기대어 바다를 보면서 그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서로를 마주 바라봐야 하는데
상대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다 봐 주기를 바라지만
상대는 다른 대상에 목을 매고 있으면 그런 불행이 없습니다.
윤심덕이 사랑했고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던 김우진은
죽을 이유가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도 있고 자녀도 있고 집안이 든든해서 동경 유학까지 마친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윤심덕은 가난한 집에서 유난히 교육열이 강한 어머니 덕택에
공부를 하고 일본유학을 마친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입니다.
어떤 장소에서든지 윤심덕이 노래를 부르면 앵콜이 쏟아지는
그 당시로서는 훤칠한 키에 세련되고 신학문을 접한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이었습니다.
가수가 지금처럼 대접을 받는 시대가 아니라서 돈을 벌지 못했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불운이 늘 먼저와 자리 잡는 통에
행실에 대한 소문이 나쁘게 나서 괴로움이 더했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났는지 시대를 거스른 것인지
사고와 행동이 다른 사람보다 앞선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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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곡에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나도 어릴 때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고 좋아서 (?) 뜻도 모르고 따라 불렀는데
부를 때마다 웬일인지 모를 서러움이 북받치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랫말은 윤심덕의 자작시라는 말도 있고 김우진이 지은 시라는 말도 있으나
사랑하는 두 사람은 이 노래대로 생을 정리했다고 느껴집니다.
밤중에 일본에서 부산으로 오는 연락선에 두 사람이 함께 탔습니다.
두 사람 다 일본 유학중에 자주 오가던 뱃길입니다
그날은 1926년 8월 3일, 음력으로는 그믐밤이었답니다.
내가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던 그즈음 여름밤입니다.
윤심덕은 김우진의 팔짱을 꼭 끼고 갑판으로 나가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하며 마음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떳떳하게 사랑한단 말을 못하고 숨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몹시 불공평하고 세상이 자기 둘에게만 가혹한 것을 원망합니다.
끝내는 둘이 끌어안고 현해탄에서 바다로 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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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사랑하면 죽을 수 있을까요?
죽음을 찬미하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절망은 우리가 원하는 감정은 아닙니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그러고 둘러보면 절망할 것밖에 없습니다.

이미 사랑하기에도 사랑을 위해 죽기에도 늦은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인연이라도 잘 지키고 지속하는 것은 바라는 바입니다.
아픔 없는 사랑은 없을까요?
평화롭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격려 받는 그런 예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고통이 없으면 인생이 아니듯 괴로움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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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정오에 배가 출항을 해서 오후 내내 부산을 향해 왔습니다.
배의 선미도 가보고 선수도 가보고 이곳저곳 배안을 둘러 봤습니다.
해가 쨍쨍한 우측면과 그늘이 있는 왼쪽을 둘러보면서
쾌청하고 잔잔한 바다에 위에 둥둥 떠가는 것은 몸이었고
마음은 사의 찬미를 부르고 현해탄에서 몸을 던지 윤심덕을 생각해 봤는데
그분이 바다에 빠지던 날은 밤이었기도 했지만 잔잔한 바다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은 맑고 태양은 빛나고 푸른 바다는 잔잔하고
수평선 너머에는 흰 구름이 몽글몽글 솜처럼 피어나는 것이
어디하나 죽음을 유혹하는 어두운 그림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포함한 우리네 삶이 늘 쾌청할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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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4 Comments

  1. 리나아

    2010-08-15 at 13:46

    10년전 배를 타고 일본크루즈 여행…아마도 같은 뱃길 !!…나혼자 여행길…
    크루즈라고는 하지만 짧은 거리라서인지 별 크루즈라는 (이름이 무색했던)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나름,,면세점도 있어서 그 배안에서 위스키도 사 왔던것 같고…..
    돌아오는 날 태풍때문에 출항을 바로 못하고….밤새 배는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물이 들어와 가라앉으면 어떡하나…밤새 뜬눈으로 걱정했던 추억(?)이….!!

    괜찮았나요..물결이…..?   

  2. 데레사

    2010-08-15 at 19:33

    저는 부산에서 후꾸오까 가는 배를 몇번 타봤습니다.
    돌아올때 오륙도가 보이고 부산시가지의 높은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분이 아주 좋더라구요.
    여행이란 떠날때도 좋지만 돌아올때도 역시 좋아서…
    잘 다녀 오셨군요.   

  3. 생각하기

    2010-08-16 at 12:43

    사랑을 얻을 수 잇다면 어떤 댓가라도 치르….

    저를 비롯한 교과서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건전함이 때론
    현해탄에 뛰어든 저들보다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    

  4. 아킬러스

    2010-08-27 at 18:35

    전통사회에서 혼인을 하였으나 ..새로운 문물을 배운 남자..거기에서 만난 신여성…어느 여인에게도 갈수없는 로맨티스트? ㅎㅎ..결국은 신여성과는 죽음을,,,그리고 전통적 사회의 가족은 그대로 지키려는 몸부림…사실,,시대적 변화기에..남자나..여자나..앞서는사람은 비난을 받지요..비난의 기준은 또 항상 전통적기준이니,,ㅎㅎ..그래서 시골에는 부모모시고,집안지키는 큰 마누라…서울에는 새로운 시대변화에 호흡이 맞는 작은 마누라…해방이후에 60년대까지…좀 한양나들이 하는 부류의 어른들중에는….시대적상황의 이해인가? 도덕적비난인가? 각자의견해에 따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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