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콩깍지

서양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중 하나가 도제 제도입니다.
견습제나 인턴십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제도는 중세 이래
직업사회가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사농공상의 서열로 기능인이 그다지 대접받는 직업이 아니었기에
직업의숙련도를 정리한 말이 잘 없습니다.
도제는 우리말로는 적당한 게 없고 일본말로 시다 정도로 번역이 됩니다.
그 다음이 편력 그 다음 단계가 직인(fellow)입니다.
직인은 장인(master)의 전 단계로 어느 정도 기능을 익히면 장인인 스승을 떠나게 됩니다.
직인이 스승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찾아 시냇물을 따라 가다가 물레방아 일을 찾습니다.
다다른 곳에는아름다운 아가씨가 있는 물레방아 간에 취직을 합니다.
물레방아 주인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딸이 있는데
나그네는 취업도 하고 예쁜 아가씨와 사랑도 꿈을 꿉니다.
장인(匠人)이 장인(丈人)이 되면 더없이 좋은 거래인데 그게 어긋나는 바람에
겨울 나그네가 되어 쓸쓸히 길을 떠나 과거를 회상하는 슬픈 이야기가
겨울 나그네 스토리가 됩니다.

물레방아간의 성실한 일꾼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주인의 맘에 들었고
아가씨와 데이트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순수하고 배짱이 없는 탓에
그녀를 재미있게 해 주지 못했나 봅니다.
설레는 마음과 애절한 맘에 이도 저도 못하다가
그만 안타까운 맘에 잔잔한 물위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는데
아가씨는 비가 오는 것 같다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합니다.
청년은 요즘말로 터프하지 못해서 아가씨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물레방아간 아가씨는 수염이 텁수룩하고 야성적인 매력이 있는 사냥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자기 집 일꾼 청년에게는 관심을 거둡니다.
겨울이 되어 시냇물도 얼어버리고 물레방아 일도 없어지자
실연의 상처를 안고 다시 방랑의 길로 떠나면서 문에 "잘 자" 라고 적어놓습니다.
마음 약하고 고운 심성의 남자가 연상 됩니다.
피아노를 짚고 서서 겨울 나그네를 애절하게 부르던 헤르만 프라이가
끝내 눈이 촉촉하게 젖어 옵니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꿈을 꾸었네……
이랬지만 더 매력 있어 하는 남자에게 연인을 보내고 소심하게 말로도 못하고
문에다가 겨우 잘 자…라고 써 놓고 돌아서는 남자
그 모습을 악보로 적어낸 슈베르트나 노래 부르는 헤르만 프라이나
그것을 몇 백 년 후에 듣는 사람이나 가슴에 이슬이 맺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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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선생님은 음악을 강의하는 그 그룹에서 가장 하드코어에 속한답니다.
하드코어가 뜻하는 것은 강의가 어렵다는 말인가 봅니다.
대게 문화강좌라면 대중의 구미에 맞고 재미있고 흥미위주의 강의를 하는데
정준호 선생님은 음악의 아주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 설명해줍니다.
요즘 들어 베토벤의 장엄미사, 십자가위의 일곱 말씀, 헨델의 세르세
리날도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등에 관해 강의를 들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전에도 말했지만 내 영혼의 어느 깊숙한 곳에 음악에 대한 결핍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들으면서 결핍의 홈이 매워지는 기쁨은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음악을 통해 얻어지는 위무는 상당합니다.
매주 세종문화회관 까지 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열심히 참석해서 듣고
배우는 것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음악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이
그 어떤 보약보다도 내 마음에 약이 되는 까닭입니다.

상처는 사람과 관련된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군가에게 버림받거나, 좌절당하거나,
상처 받거나, 거부당한 경험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실연의 상처는 선천적인 좌절반응과 수치심, 우울증,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상실로 삶의 의미를 잃게 합니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겨울 나그네가 되어 시냇물을 따라 다시 길을 떠납니다.
인생에 콩깍지가 벗겨지자 다시 헐벗은 계절을 맞게 됩니다.

나그네로 왔던 곳 다시 나그네 되어 떠나네.
꽃이 만발했던 오월, 소녀는 사랑을 말하고 어머니는 결혼을 부추겼건만
사랑은 방랑을 좋아하는 법, 하늘의 이치가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잘 자, 내 사랑!
문에 “잘 자” 라고 적어 놓을 테니 내가 네 생각했음을 알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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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따뜻했던 어느 날을 생각하며 차가운 날 밤 마을 어귀를 벗어나는데
다시 새로운 장소에서 예쁜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고 다시는 겨울 속으로 떠나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난 늘 해피앤딩만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수준의 사고를 합니다.

내 인생의 콩깍지

오래전에 이런 제목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로 젊은 남녀의 심리와 연애 풍속도를 그렸는데
진정한 짝을 만나기까지 좌충우돌 벌이는 연애의 쓰라린 경험과
그 속에서 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남녀의 우여곡절 많은청춘의 역사를 그렸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공부한 이번 주간에
내 인생의 콩깍지와 겨울 나그네가 혼합된 복잡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콩깍지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랑했던 추억, 혹시 다시 올까하는 기대감
그저 친구로 남고 싶은 욕심,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심,
다른 사람을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희망, 우연히 다시 만났으면 하는 집착을 다 버려야" 만

괴로움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이

5 Comments

  1. 벤조

    2010-09-17 at 08:38

    애타는 마음에 잔잔한 물 위로 눈물을 떨구고 말았는데,
    아가씨는 비가 온다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구요?
    우째 낮설지 않은 광경 같은데요…

    겨울나그네는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싸아해집니다.
    저도 음악결핍증이 있는 모양입니다.
    어려운 강의를 쉽게 풀어주신
    정말 좋은 글, 짝짝.
       

  2. 김세린

    2010-09-17 at 09:41

    멋진 ‘겨울 나그네’ 해설입니다.

    꼭 내 인생 같이 처량하군요, 마지막 문단은 실연한 자들의 마음을 잘 묘사했군요.

    방문 감사합니다
       

  3. Lisa♡

    2010-09-17 at 09:50

    정준호선생님 강의들으시는군요.

    아무튼 바지런하시고 모범적이세요.

    저는 요새 예전에서…거의…..일년을..ㅎㅎ   

  4. 안영일

    2010-09-17 at 22:02

    댓글을 적어봄니다, 음악속에 깊은 내용 고맙게 잘 듣고 공부햇읍니다, 음악 워낙에

    음치인지 / 콩나물 악보도 저의 가족들에게는 둗드러기가 돋습니다 어려워서- 그래서 깨닭은 이치 우리집안의 구성원은 *단선율 *애초의 인간들이 품었던 외골의 음률 –
    후세에 재주있고 기교있는 분들의 복선률 음악 또한 싫치는 안지만 딸가기힘든 피안의 언덕으로 생각함니다, *무식한놈 첫사랑일가 첫여자일가 첫 여자친구와 사는사람이 조금전 저녁 오후 5시에 마시는 와인석잔 천손주 (6살) 1학년놈이 할아버지 하면서 내 책상에 같고오는군요, 세상 모르는 남자가 여자 남자 일생 결혼식을 하면 나처럼 68살까지 마음이 여일할줄 알었는데 5-6년전 심하게 식구를 질투했지요, 식구 하는말 그게 애낳고 몇년 그런맘이었지 얼씨구 엄청 순진하네 그러더군요, 그런 식구와 지금도 한침대에서 생활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르고 모르는것 이곳의 글 주인장님으로 인하여 참많희 보고 배우는 사람입니다, 즐거운 주말을 맟으십시요,   

  5. 생각하기

    2010-09-19 at 04:47

    성문앞 우물곁에 ~ 노래를 불러보다가 꽂혀만 있던 가곡CD을 꺼내엇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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