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과 오지랖 넓은 사람이 필요한 사회 (sos원숭이)

누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들이 보내는 sos 신호가 감지되면서 지금 도우러 갈게요!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해
돕지 못하면 가슴속이 답답한 엔도 지로라는 사람의 이야깁니다.
그는 이탈리아 유학시절에 비공식적으로 엑소시스트 일을 배우게 되었고
일본에서도 몇 차례 엑소시스트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조금은 만화 같은 내용인데 추리기법을 사용해서 지루하지 않게
어떤 현상을 사실로 꿰어 맞추어 가는 듯합니다.

SOS 원숭이는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가 지은 최신 장편소설입니다.

옳고 그름은 명확한 게 아니라서 완벽하게 악한 인간도 존재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선한 인간도 없다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풀어냅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힘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악한 힘이 드러날 때도 있다며
선과 악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라고 합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원숭이 귀신에 씐 아이를 도와 준건지 도움을 받은 것인지
거액의 주식 오발주 사건이 어떤 실수에 의해 일어났는지 오히려 모호해 집니다.
나에게 결론을 말해 달라면 마음이 여리고 남을 돕지 않고는 못 견디는
주책과 오지랖이 넓은 따뜻한 한 인간을 조명한 것으로 보이고
주책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우리주위에 많으면 좀 더 밝고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작가가 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받아 놓고 미루다 오늘은 꼭 리뷰를 작성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어 놓으면 학교 다닐 때 숙제를 못한 기분과 똑 같이
찜찜해서 그런 기분을 빨리 해소하려고 메모장을 열었습니다.
책은 다 읽었지만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도 생소하고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도
궁금해서 그것을 찾아볼 요량으로 인터넷을 보다가
“지하철서 할머니와 소녀 몸싸움 동영상 확산” 이런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관심이 가서 동영상을 자세히 봤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무심해보입니다.
중학생과 할머니의 난투극이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벌어지는데
아무도 몸을 써서 말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춘기 어린 여학생이 지하철에서 낯선 할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사건은
그 아이의 잘 잘못을 떠나 평생 짊어지고 갈 상처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누구라도 그 사이에 들어가 아이를 달래 다른 칸을 피신을 가게 하든가
할머니를 달래든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걸 볼거리라고 동영상을 찍고 있습니다.
겨우 어떤 아주머니 목소리가 "둘이 똑 같네요…"이러며 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연령에서 비슷한 조건의 사람끼리 싸울 때는 구경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도 약자고 소녀도 사회가 보호해야할 약자인데 구경만 하면서 할머니가 나쁘다

여학생이 나쁘다 이러고만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른은 권위를 잃었고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받아야하는 사랑을 잃었습니다.

싸움에도 세대 간에도 완충지대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 여학생에게 반말을 들은 할머니의 분노를 풀기위해 중간에 대신 맞아 줄
어른이 있어야 하고 소녀를 보호해 줄 무조건 적인 어른이 있어야합니다.
어떻게 노인세대와 어린 소녀가 50년 쯤 되는 세대 간의 완충지대 없이 막 바로
몸을 던지는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할 사회병리 현상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히키코모리라고 합니다.
히키코모리는 신체장애나 임신, 육아 등을 제외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필요할 때만 외출하는 상태" 나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등을 “히키코모리군”으로 정의했습니다.
sos원숭이에 나오는 용어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처음으로 접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하지 않고 외출을 전혀 하지 않고 컴퓨터로 게임하고
인터넷 서핑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집에만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통계가 잡히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 장래에 히키코모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예비군"도 15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나사는 것도 어려운데 남을 돌볼 여력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볼 때
남을 돕는 일에 조금은 주책과 오지랖을 넓혀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아니라도 누가 돕겠지 그러기보다.
나에게 지금 이런 순간이 닥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일인가 보다 하고
주책을 부리며 달려 들 수 있는 그런 오지랖을 키운다면 세상은 더 따뜻해 지지 않겠는지요.
동영상을 찍을 틈이면 싸움에 달려들어 말려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얼굴이 지워져서 나오지만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그게 순식간에 확산되고 악풀이 달리고 이러는 사회현상은 올바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동영상이 없었으면 지하철에서 그걸 본 사람이 몇 십 명으로 끝나지만
벌써동영상을 본 사람은 수백만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남의 일이라도 좀 도울게 없을까 주책스럽게 기웃거리고
남의 일에 관심을 하며 살아가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SOS원숭이입니다.

리뷰를 쓰려고 마음 먹은 날에 할머니와 소녀의 난투극을 보게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소녀를 누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보호했으면

할머니를 누가 나서서 달랬더라면

최소한 동영상이라도 찍지 말았으면

아니 인터넷에 올리지만 말았더라도….

그 많은 사람중에 동영상 찍는 사람은 있어도 싸움을 말리는 오지랖 넓은 사람은 왜 없었는지?
번역을 한 민경욱씨가 옮긴이의 후기에 이런 말을 썼더군요.
책을 덮은 후의 산책길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아이를 돌아보며
괜찮겠지 생각하던 사람이 “괜찮니?”라고 묻게 되는
그런 조그만 변화라도 기대한다는……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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