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이 넘치는 할머니 패티김의 열정

패티김의 공연이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서 마주친 풍경은

어느 여자대학 총 동창회쯤으로 생각하기에 딱 알맞았습니다.
대략 60대 이상의 할머니들이 반이 넘어 보입니다.
나름대로 성장을 하고 멋을 부렸지만 구부정한 어깨와 어정쩡한 걸음걸이
흐트러진 자세는 예쁜 옷으로 감추어도 나이는 어쩔 수 없어 보였습니다.
관객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여자들이고 남자들은 드물게 보이고 젊은이는
연세 높은 부모를 모시고 온 것 같고 패티김의 노래가 좋아서 팬으로 온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거나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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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나의 두 딸아이가 지내는 것을 보면 정서의 교감이라는 것과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큰 도치는 결혼해서 가정이 있고 작은 도치는 직장을 다니지만 자매간에 매일 통화를 합니다.
하루도 소식을 모르면 궁금한 가 봅니다.
30년을 함께 자라고 한 방에 기거를 하고 서로경쟁하고
질투하고 격려하고 도움이 되던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둘이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웃음 포인트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 하나를 말하면 둘이는 웃음이 타이밍 맞게 빵 터집니다.
나는 엄마라도 그들이 왜 웃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한 시대를 공유하고 같은 노래를 듣고 산 사람들 간에는
그들만이 느끼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온 모든 아줌마들이
동창 같고 저기 서있는 사람이 내 친구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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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이야기와 노래와 시대를 공유하고 산 패티김의 공연에는 정말 많은 할머니 팬들이 모였습니다.
그분들은 길옥윤씨도 알고 박춘석씨도 알고 패티김의 이야기를 압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요즘 가수들도 똑같이 노래하는 사랑 이별 그리움 상처 등의
내용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정서에 합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노래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시끄럽게만 들립니다.
그렇지만 패티김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을 적시는 절절한 무엇이 다가옵니다.
지금 20대가 패티김의 노래를 들은들 우리처럼 절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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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김은많은 나이에도 정말 멋지고 파워풀했습니다.
반짝이 바지에 하얀 블라우스를 단추를 열어 속에 검정 티셔츠 바쳐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한 백발의 짧은 파머 머리 할머니가 “열정”을 들고 나오면
실제로 눈으로 보기 전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여기실 겁니다.
그러나 흰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굽 높은 구두에 드레스 자락을 걷어
늘씬한(!) 다리를 살짝 들어 보이면서 무대를 크게 사용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무대 가장 앞에 앉아 있어서 패티김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듣고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녀의 섹시코드에 대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엔 스포티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노래했고
두 번째는 빨간 롱 드레스를 입어서 정열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빨간 드레스는 가슴골이 들어나 보이는 옷이었는데
아래층에서는 볼 수 없지만 2층이나 3층에서는 자신의 가슴을 더 깊이 볼 수 있고
자기가 신고 있는 예쁜 구두를 볼 수 있어서 높은데 앉는 것도
좋은 것이라며 관객을 재미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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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염색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는데 처음엔백발이 조금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흰 머리카락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모험일 것 같았는데
황혼의 인생 열정을 불사르는 처절함이 더하여져서 당당한 할머니로 보였습니다.
아니 패티김은 할머니라는 느낌을 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관객의 평균 연령이 높은 할머니지만 관객의 열정은 젊은이못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몸을 흔드는 관객을 발견한 패티김이
"그렇게 좋으면 일어나서 하라"고 하자 너도나도 다 일어나
박수를 치며 춤추는 모습은 요즘 전성기의 가수 무대 못지않았습니다.
그런 열정을 평소엔 다 어떻게 잠재우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기를 관객에게 나누어 주겠다며 기를 팍팍 쏘아댔습니다.
용기와 희망과 힘을 잃지 마라는 메시지도 주었습니다.
나도 그녀를 보며 나이를 먹어도 힘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날이어서 그랬을까요? 노랫말은 가슴에 오래 남아 메아리칩니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나는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터 글을 쓰는 지금까지 고장 난 레코드판이

한 자리에서 맴돌 듯 자꾸 같은 노랫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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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여전히 섹시한 할머니!
패티김 파이팅 입니다.

순이

4 Comments

  1. 이나경

    2010-10-24 at 16:14

    아… 멋진 콘서트를 다녀 오셨네요. 저도 가고 싶어집니다. 그녀는 파격적인 코드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자기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열정과 처절한 자신에 대한 관리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제 자신이 작아지게 만들기도 하는 사람이 패티 김 같습니다. 좋은 시간 되셨네요.   

  2. 생각하기

    2010-10-25 at 01:51

    역시 부러운 순이님! 패티김의 공연을 가셨군요.
    우리세대는 패티김이나, 송창식,조용필, 조영남이나 되야 가수처럼 느껴지지요.
    영원한 스타, 패티김. 너무나 좋아합니다…
    당당한 노년을 보며 자신을 다잡고 맘껏 열정적이 될 수 있는 멋진 시간이었겠어요.

    스스로를 격려하고 자존심을 갖는게 중요해요.
    몸이 힘들 때 일수록 더 그렇지요.

    날씨는 추워졌지만 하늘은 맑고 높아요..
    이제 깊은 가을이고, 가을도 얼마 남지 않은 듯…..
    건강하시고 재미있는 글 자꾸 써 주세요~~ ^^

       

  3. 트리맨

    2010-10-25 at 04:47

    현재 님 연세가 얼마세요? 72살의 할머니가 섹시하다니요?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섹시하다는건 섹스가 가능한 연령에나 써야지 거의 중성화된 육체나이인 72세의 할머니에겐 불경스런 언사지요,    

  4. 벤조

    2010-10-25 at 05:13

    헉,
    아주 재미있는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그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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