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 과잉 시대에 하우스 콘서트가 대안

전에는 매주 돌체 음악회에 참석 했는데
세종 아카데미에서 음악 공부를 주 1회 하다 보니
돌체를 주말에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오래 못 갔습니다.
요즘엔 세종 아카데미가 겨울 방학 중이라 돌체에 갈 시간을 얻을 수 있어서
첼로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피아니스트는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귀국한 분이고
첼리스트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독주회를 앞두고 리허설 겸
돌체 무대에 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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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에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는 감미로운 선율에 빠져
피아노 연주자와 첼로 연주자가 호흡을 맞춰 연주를 하다 보면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감미로운 곡인데 아직 호흡이 덜 맞아서 그런지
피아노 부분이 너무 튀기도 하고 첼로가 주눅 들어 보이거나 너무 딱딱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돌체 음악회가 좋은 것은 연주자를 가까이서 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시, 회화, 연극, 무용 등 예술을 꽃피운 것이 살롱문화에서 비롯된 것처럼
돌체 콘서트는 연주자와 손님 사이에 친근한 대화와 교감이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몇 주 전에 예약하고 (유명 음악회는 서너 달 전에 예약하기도 합니다.)
옷을 골라 입고 벼르고 별러서 큰 음악회장을 가는 맛도 좋지만
이런 소규모 음악회를 장려할 만합니다.
우리나라에 음악을 전공한 많은 음악가들이 설 무대가 좁기 때문에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풀어놓을 공간이 없는 문제를 어느 정도
작은 음악실 또는 하우스 콘서트로 해결을 해야 할 듯합니다.
작은 음악실 로는 헤이리에는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카메라타가 있고
그보다 먼저 생긴 일산에는 돌체음악실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전국에 하우스 콘서트장이 30개 정도 생겨서 자리가 잡혀간다고 합니다.
돌체 음악실은 역사가 14년 정도 되어서 매주 토요일 정기적으로 음악회가
열리는데 벌써 778회째 음악회를 했습니다.

크고 화려한 무대가 좋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권위주의 연주자와 청중의
고정관념을 깨고 연주회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만족하는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꾸준히 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것은
입장료도 만원이면 되고
고품격 음악을 접할 수 있음에도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음악공장"이라는 말을 앨빈 토플러가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음악이 오늘날 연주장처럼 대형화되는 것은 물질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주의
공장 시스템에서 비롯된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관객에게 입장권을 팔아 운영되는 극장은 대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수입이 늘고 그 영향력도 커지다 보니 음악 연주의 형식도
교향악단처럼 연주자의 수나 악기 편성이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음악이나 공연 예술에서 점차 인간의 얼굴이 사라지고
음악의 연주자와 감상하는 관객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하우스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를 했었다는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양로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하다보면 너무 가까이에 관객이 앉아 있기
때문에 연주하는 사람이 더욱 긴장되고 불편했었지만 그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생활화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주자와 관객이 가까운 정도가 무대가 있고 객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조그만 거실 같은 공간에 피아노만 한대 놓여있고 입원해 있는 환자분들이
피아노 주변에 꽉 둘러 있어서 피아노 소리에 환자 청각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기고 피아노 페달 가까이에 까지 관객의 발이 들어와 있는데
관객은 신이 난 김에 발을 까딱거리기까지 하면 잘 못 하다가 남의
발을 밟을 것 같은 위치까지 들어와 있어서 연주중에 몹시 신경이 쓰였는데
그런 것에 무감각해지기까지 힘이 좀 들었다는 것입니다.

연주하는 장소가 양로원 같은 시설이나 개인의 작은 거실일 때도 있는데
그분들은 입장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연주장 입구 쪽에 작은 바구니를 하나
놓아두면 거기에 1유로도 넣고 10유로도 넣고 형편껏 바구니에 넣는다고 합니다.
유학생 입장에선 그것도 큰돈이라 교통비로 쓰거나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
실전을 쌓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적은 인원이 있는 곳에서 불러도
가서 연주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때 교회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답니다.
교회에서 하는 연주는 교회에 다 헌금하고 나오게 되어있어서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차를 타려고 하는데
거지 할머니가 쫒아 와서 10유로를 내 밀면서 받으라고 하더랍니다.
괜찮다고 고맙지만 그냥 할머니 가지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면서
오늘 연주 너무 좋았다고 너 때문에 행복했다고 하더랍니다.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 누더기를 걸치고 거지로 살아가는 할머니가 건네는
10유로는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인데
옆에 있던 독일 사람이 받는 것이 예의라고 하더랍니다.
너는 좋은 음악으로 할머니에게 기쁨을 주었고 할머니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기쁨으로 알기 때문에 받지 않으면 오히려 실례라는 이야깁니다.
사회보장이 비교적 잘 되어있는 독일에도 할머니 거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동냥으로 삶을 영위하는 할머니가 음악을 즐긴다는 것도
다 신기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나라 젊은 음악가들의 앞날이 걱정되었습니다.

많이 양산된 연주자들이 고비용을 들여 유학까지 마치고 귀국을 했지만
설 무대가 없는데 우리나라 토양에서 음악가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배운 만큼 돈 벌이도 해야 하고 생계도 유지해야 하고 품위유지를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 길은 몹시 좁아서 뛰어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길이 안 보인다는 겁니다.
내 친구 딸도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서 죽어라 부모가 뒷바라지를 했지만
많고 많은 피아니스트 중에 타이틀만 피아니스트지 변변한 무대에 한 번 설 기회도 없고
부모의 계속된 지원만 받아야 하는 고학력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있습니다.
전에는 피아노를 대학에서 전공하면 피아노 학원을 차려 자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도 줄어들었고 영수 학원은 가도 피아노 학원은
가지를 않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 먼 나라 이야기 같은 클래식
점점 시장은 좁아지고 연주자는 많아진 이 불균형을 깨는 일에
하우스 콘서트나 돌체 음악실 같은 곳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 저 멀리 있는 피아노를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가까운 거리로
끌어 내리고 바로 내 눈앞에서 연주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음악회가
선호 되어야 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가야 합니다,

무릎과 무릎이 닿을 만큼 좁지만 소박하고 따뜻함이 어우러지는 공간
음악이 그 속에 있고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돌체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8시에 음악회가 열립니다.
1월 29일 토요일에는 피아니스트 허태범 장주혜씨의 조인트 리사이틀이 있고
설 연휴 끝인 2월 5일에는 소프라노 김장미씨의 공연이 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첼리스트 남승현씨의 연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장료가 저렴하니까 토요일 오후 시간이 된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입장료 만원만 내면 두 시간동안 연주자의 음악을 독점하듯이 보고 들을 수 있고
커피는 마음껏 마셔도 공짜입니다.
일산 돌체 음악실을 검색해서 위치 등을 알아보시면 됩니다.

순이

3 Comments

  1. 푸나무

    2011-01-23 at 13:25

    하여간,^^*
    정말 당장 돌체로 달려가고 싶게 하는 글입니다.

    돌체를 잊고 살았네요.
       

  2. 공군

    2011-01-24 at 05:37

    돌체를 간지가 어언 수삼년…
    우예주양은 잘 있는지 성공했는지 몰겠어요
    그런데 손님이 점점 주나요?
    사장님이 힘들겠네요..참 좋은 공간인데…
    여러분 가 보세요!!   

  3. 소리울

    2011-01-24 at 12:05

    마음에 입력합니다. 언제든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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