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에게서도 최선을 다하는 교훈을 얻다.(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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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방에 있다가 보면
머릿니 때문에 놀라서 뛰어 오는 젊은 엄마들을 가끔 봅니다.
아이가 머리를 자꾸 긁어서 봤더니 서캐가 보이고 이가 있다는 겁니다.
요즘처럼 자주 머리를 감고 씻는데 머릿니가 아이 머리에서기생하고 있다니
믿기 어렵기도 하고 젊은 엄마가 아이를 비위생적으로 기른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하다고 하고 창피하다고 합니다.

어린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집단생활을 시작하면
이가 옮아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5~60년대에는 정말 친근한(?) 기생충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화롯가에 둘러앉아 이를 잡는 일이 일과이고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있으면 어머니께서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서캐를 잡으면 혼곤히 잠이 들기도 했던 기억이 따뜻한 추억입니다.
우리어머니는 유난히 깔끔하신 분이라 집안에 먼지 있는 꼴도 못 보시고
어디 때가 타는 것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깔끔한 분인데도 시대가 그래서 그랬는지
이와 동거하는 일은 그냥 그러려니 여기셨는지 약이 없어서 그랬는지
이 잡기 운동을 어릴 때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촌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가 당연히 기생을 하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세재가 발달을 하고 아파트형태의 주거환경이 좋아지면서
이를 30년 넘게 잊고 살았는데 언제 부턴가 이가 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머릿니 샴푸 등을 심심찮게 손님들이 찾습니다.

머릿니를 발견한 젊은 엄마는 기절할 듯 달려와 머릿니 샴푸를 사가지고 가는데
대게는 무척 창피해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나 유치원에 대한 원망도 많고 같은 반 아이의 누구에게서 옮겼을 거라고
위생상태가 나쁜 아이를 지목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지역을 싸잡아 못 살 동네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머릿니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어떤 분은 조용히 머릿니 샴푸를 어느 정도 몇 회 정도 사용하면 되는가 묻고
다른 분은 샴푸와 침구 등에 뿌릴 스프레이 그리고 기생충을 죽일 수 있는
피부에 바르는 연고 참빗까지 고루 사가지고 가면서 해충에 대한 적의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분은 침구를 몽땅 들어내서 버려야하겠다고 흥분하는 분도 있습니다.
학교도 옮기고 집도 이사를 가야하겠다고, 이 지역을 벗어나야겠다고
천재지변을 만난 듯 무척 분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머릿니 샴푸로 온 식구가 한번 씩 감고 침구 등을 삶아 빨아 햇볕에 널어 말리고
청소기를 돌리는 정도면 머릿니는 없어질 것 같은데 대책 보다 이주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머릿니를 발견한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머릿니에 대한 적의는 심해 보였습니다.
이런 분은 이를 박멸할 수만 있다면 초가삼간이라도 태울 기세입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는 말이 있는데
속담의 영험함(!)에 혼자 속으로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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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현대 경제연구원 지음) 라는 책을 받아들고 보니
첫 장에 빈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정주영 회장이 어디까지 노력해야 ‘최선을 다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에 쓰여 진 건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그래서 많이 들어본 예화입니다.

‘최선’에 대한 빈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정주영회장이 인천에서 막노동을 할 때 최선을 다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교훈을 빈대에게서 얻었다고 합니다.
노동자 숙소는 밤이면 빈대가 들끓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은 빈대를 피해서 밥상 위에 올라가서 잤습니다,
하지만 빈대가 밥상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오는 통에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짜내서 생각한 게 양재기 네 개에 물을 가득 담아서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안에 밥상의 다리를 하나씩 담가 놓는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시 빈대에게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밤 도대체 어떻게 이놈들이 밥상 윌 올라오는 것인지를 보기위해서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물 때문에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없게 된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서 사람 몸을 향해 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빈대들이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런 미물도 목적을 달성하기위해서 온갖 방법을 찾고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하는데
나는 빈대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무슨 일에든 절대로 중도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을 쏟아 붓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빈대에게서 평생 어떤 일을 할 때도 더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자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요즘엔 작은 분노로 인하여 초가삼간을 태우고도 남을 울분을 터트리는 일들을
많이 보는데 이분은 미물에서도 교훈을 얻어서 삶의 지표로 활용했습니다.

“하기는 해봤어?” “하면 된다!” 등은 지금도 흔히 회자되는 말입니다.
한국 현대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세상을 뜬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를 추념하며 타계 10주기를 기념하는 의미로 출간된 이 책은,
정주영의 생활철학과 경영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정주영은 남다른 통찰력과 한발 앞서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바탕으로 개인적 삶과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인물입니다.
이 책은 ‘아산 경영노트’를 통해 아산 정주영의 경영활동을 하나의 학문으로서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장을 제공합니다.
특히 정주영 특유의 리더십과 사업 확장 노하우, 조직 및 인력 관리 등 경영의 진수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어 경영학 교과서로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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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전쟁후의 참혹한 폐허 속에 있을 때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주도한 이제는 전설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의 목표는 항상 현실의 장벽 위에 있었습니다.
현대건설을 세워 경부고속도로를 닦아 국가경제의 인프라를 구축한데 이어
선박 기계 자동차 등 한국 기간산업의 토대를 세우고 키웠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 참여할 때도, 조선소를 세울 때도,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 때도
무모하다는 비판과 견제에 직면했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500원짜리 지폐와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으로 선박을 수주한 전무후무한 사례는
“해봤어?”로도 통하는 도전정신의 결정판입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정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좌절에 빠진 국민에게 미래의 꿈을 심었고 열매를 열리게 했습니다.
그의 족적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쳐있습니다.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질수록 정주영 같은 분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큰 축복인 것을 압니다.
정주영 회장님이 실천한 기업가정신을 다시 읽어보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은 이익이 우선이지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항상 염두에 두라”는
말로 기업 이상의 국가관을 심은 정주영 회장님 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어떤 경제학 서적이나 자기 개발서 보다 유익하고
부자를 꿈꾸는 사람 기업을 경영하는 분 정치를 하는 분, 청소년 대학생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머릿니로 시작한 독후감 내가 다시 봐도 웃기는 군요.
이 책의도입부에 빈대 이야기로 시작 되었기에 생각난 이야기지만
머릿니와빈대는 다르듯이 특별한 연관은 없습니다. ^^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작은 일로 큰일을 그르치지 않고
빈대에서도 교훈을 얻는 위대한 분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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