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르며 우는 해산의 고통

산기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한 딸애에게서 연락은 오는데

월요일이라 바빠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딸아이의 산통을 옆에서 나누고 싶지만 몸을 뺄 여건이 안 됩니다.
병원에 입원 했으니 알아서 하겠지 믿는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안절부절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 입니다.

주일오전 부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만 하루가 지났는데도
배탈을 만난 듯 싸르륵 싸르륵 아프다가 언제 아팠는지 할 정도로 고요한 시간이
반복 되는 것이 거의 하루가 지나도록 산모는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래 가지고 애가 나오냐? 거의 죽도록 아파야 애를 낳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딸이 많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내 손이 떨립니다.
나는 도저히 애 낳는데 갈 형편이 안 되어서 막내 여동생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못가서 그러니 자네가 가서 애 낳는 것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이번 주말에 큰 공연 일정도 있고 무척 바쁜 사람인데 열 일 젖히고
흔쾌히 가서 봐 주겠다고 해서 의리 있는 춤바람 동생에게 감사했습니다.

우리 도치들도 날라리 막내 이모를 무척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날라리 이모가 조카인 우리도치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막내 이모가 워낙 멋쟁이라 예쁜 옷도 잘 사다주고 인형이나 장난감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잘 챙기니 환영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구경도 가고 놀이공원이나 함께 데리고 놀아주는 것을 잘했습니다.
나는 우리 딸들이 날라리 같은 막내 여동생을 닮을까봐 조금은 걱정 되긴 했는데
아이들이 워낙 이모를 따르고 좋아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여동생이 훈이 준이를 낳고 우리 집에서 산후 조리를 했었기에
내대신 조카가 애를 낳는 병원에 가서 지켜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모가 대신 달려가 주어서 내가 안심이 되었습니다.

춤바람 동생은 몸 쓰는 일을 잘 하는 사람답게 산모에게도 야단을 쳐 가며
진통이 오는 산모에게 몸을 움직이게 했답니다.
"산모가 해맑은 표정을 하고 우아하면 애가 나오느냐? 침대에서 내려와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고 서서 자꾸 걸어 다녀."
이러며 큰 소리를 쳐대니 아픈 사람으로서는 번거롭기 그지없지만
이모 명령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마지못해 침대에서 내려와 남편에 의지해서
서성이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니까 진통이 점점 자주 강해집니다.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니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니
소리 지르기보다 아래로 힘을 쓰라"고 하고 "쉴 때는 숨을 어떻게 쉬라"고 하는 등
아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산모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동생에게 어떻게 그런걸 아냐고 했더니 임산부벨리라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것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산통이라는 것은 아이를 낳아본 여자라면 어느 정도 아픈지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에 남편도 있고 시어머니도 있고 여동생 외할머니 이모까지
아무리 둘러서 있어도 가장 생각이 나는 것은 엄마라고 합니다.
아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엄마를 찾으니 보다 못한 작은딸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좀 오면 안 되냐고 하는데 내 마음이 아파옵니다.
딸이 아이를 낳는 고통을 당하는데 옆에 있어주지 못하다니….
그렇다고 점방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일하다 버려두고 갈 수도 없고
누가 대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조금 있더니 작은 딸이 울면서 전화를 또 합니다.
"엄마 약국 문 좀 닫으면 안 돼요?"
사실은 전화 받기도 어려울 정도로 바쁜데 전화를 자꾸 하니까 마음이 더욱 번거롭습니다.
나라고 왜 걱정이 안 되고 옆에 있어 주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도저히그럴 수 없는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엄마 약국 좀 때려치워 언니가 죽을 것 같은데 엄마가 안 오면 어떻게 해?"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없는 언행인데 나에게 작은 딸이 전화에다 소리를 지릅니다.
언니가 죽게 생겼는데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냐는 거지요.
언니가 울면서 엄마를 부르니 마음 약한 작은 딸아이의 그 속이 어땠는지
짐작을 하고도 남기에 과격한 언어를 쓰는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약국 문을 닫고 달려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내가 더 안타깝지요.
그러고도 수 십 분이 흘러서 "언니가 분만실에 들어갔어요."라는 문자가 오고
또 수 십 분이 흐르고 난 후에 "언니가 건이를 낳았어요."라는 문자가 옵니다.
아기는 오후 6시 10분에 나왔는데 나는 일이 7시에 끝났습니다. 휴~우
월요일 중에서도 유난히 더 바쁜 날이었고복잡하고 전화와 문자는 열심히도 와서
나도 아이 낳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월요일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병원엘 갔더니 남편은 회사에서 바로 출발을 해서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건이 외할아버지는 (아기 이름을 건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딸 결혼식에 울던 사람이 외손자가 태어나자 그 감격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남편이 늦었지만 저녁을 사겠다고 해서 건이 할머니 건이 아빠와 함께 음식점엘 갔는데
배가 고플 시간인데도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되었다는 감격 때문만도 아니고 딸애의 산통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도 아니고 새 생명을 만난 벅찬 감동 때문 인 듯 했습니다.

사우디4.jpg사우디5.jpg

( 32년 전 지금의 산모가 아기였을 때 생후 2주일 쯤)

나는 큰딸을 사우디에서 낳아서 외국이라 남편밖에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데
주위에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해산의 기쁨을 맛보는 딸아이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대려다가 강보에 쌓인 아기를 온 식구가 상면을 했습니다.
외할머니의 특권으로(!) 아이를 내가 펼쳐 보였습니다.
3.6Kg의 건강한 남자아기로 숱 많은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자랐고
강보를 펼치자 아기의 팔다리가 길쭉길쭉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꼼지락 꼼지락 하는 것을 만져 보고
기저귀까지 끌러서 큼직한 꼬추까지 자랑을 시켰습니다. ㅎ
(나로서는 생길 것이 다 생겼는지, 아기의 건강상태를 살펴보는 것이었지만)
건이 외할아버지는 휴대폰에 사진을 찍어서 즉석에서 휴대폰 첫 화면에 아이 사진을
올리며 남편의 평소 모습과는 달리 들어내 놓고 좋아합니다.

해산의 고통이 다 지나가고 다시 딸의 평온해진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뿌듯한 행복과 피곤이 합쳐지며 나른하게 눈이 감깁니다.
차 속에서 언젠지 모르게 눈을 감고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오기에 받았더니
산모가 "아직 젖이 나오지 않는데 건이가 신생아실에서 우유를 먹기 시작하면
젖을 안 먹을까 걱정이 된다."고 하기에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하고 푹 쉬기나 하라고
했는데 앞으로 건이 때문에바빠질 것같습니다.
당장 퇴원하면 친정으로 오는데 방 한 칸 비워서 아기와 산모 방을 만들어야 하고
산모 도우미가 집으로 온다고 해도 산모 먹을 음식 재료나
필요한 것도 사 날라야 하고 한 달은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가 건이 할머니가 된 신고를 합니다.

순이

4 Comments

  1. 도토리

    2011-04-05 at 08:28

    축하합니다..^^*   

  2. 김진아

    2011-04-05 at 10:46

    축하 합니다. ^^

    건이 할머님…

    *^^*   

  3. 오드리

    2011-04-05 at 13:14

    축하드려요. 새생명은 정말 크나큰 축복이지요.   

  4. 김복희

    2011-04-06 at 02:50

    축하드립니다. 고녀석 누굴 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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