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먹으며 할머니가 되어갑니다.

집에 산모가 있다 보니 식탁이 산모 위주로 차려집니다.
주로 미역국에 변화를 준 것들입니다.
곰국에다 미역을 넣어 끓이기도 하고 홍합이나 고기를 넣기도 합니다.
그래도 두어 주 동안 매일 먹다보니 산모는 조금 싫은가 봅니다.
감자국 북어국 무국 등으로 대치하기도 하지만 주 메뉴는 미역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 젖을 먹이려면 어쩔 수 없거든요.
미역은 몸 안의 피를 맑게 해주고 자궁 수축과 지혈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건강식입니다.
미역 100g당 100mg 정도 들어있는 요오드 성분은 출산 할 때 잃어버렸던 혈액을 보충해주고

소화 흡수가 잘돼 위의 기능이 떨어져 있는 산모에게 안성맞춤인 음식입니다.
산모가 임신 중에 태아에게 많이 빼앗기는 갑상선 호르몬을 보충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미역은 젖의 분비를 돕고 부종을 가라앉히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미역속의 칼슘함량은 분유와 맞먹을 정도로 많이 들어있습니다.
칼슘은 골격과 치아 형성에 필요한 성분으로 산후에 자궁 수축과
지혈 작용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미역 내의 미끈미끈한 점액질 성분은 장에서 당질과 젤을 형성,
당의 흡수를 지연시켜 당뇨 환자의 혈당조절에도 도움이 됩니다.
배변을 원활하게 하는 질 좋은 식이성 섬유 알긴산도 포함돼 있으며,
혈압을 내리게 한다고 알려진 염기성 아미노산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식이섬유는 소화흡수가 되지 않고 부피를 증가시켜 포만감과 배변효과도
함께 증가하므로 변비 예방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임신 전 상태로 체력을 회복해야할 산모들에게
꾸준하게 미역 섭취가 권장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산모에게 강권해서 먹이게 되는 것이 미역국입니다.

사부인이 반찬을 여러 가지 해서 산모 먹이라고 사위 편에 보냅니다.
산모는 먹는 것을 그다지 밝히지 않아서 음식이 남게 되는데
나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딸이 남긴 것을 알뜰하게 처리합니다.
딸 산후 뒷바라지 한다는 명목으로 내가 잘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지가 맞은 것은 건이 외할머니 수니입니다.
아기 목욕을 시키나 반찬을 한 가지라도 하나
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먹는 것만 무지 축내고 있습니다.

우리 집 식탁에 김치 가짓수가 얼마나 풍부해 졌는지 모릅니다.
건이 할머니가 보내신 백김치, 물김치 배추김치 그리고 멸치볶음 콩자반 장조림 등이 있고
작은 도치랑 결혼할 예비사위 집에서도 반찬이 날라져 옵니다.
오이에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간간하고 아삭하게 무치고 들깨로 무친 무나물도 있고
국수를 말아 먹으면 딱 좋을 정도로 맛난 열무김치를 보내오셨습니다.
산모 먹으라고 해서 보내온 음식이지만 산모가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분량도 아니고 건이 외할머니가 먹는 다고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나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건이 친 할머니야 당신 손자를 얻었으니 좋아서 그런다고 치고
작은 딸 결혼할 댁에서는 왜 음식을 날라 오는지 미안할 지경입니다.
겨우 상견례를 했을 뿐인데 며느리 감 언니가 애를 낳았다고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보내니 안 미안하면 이상한 것이지요.
한편으로 산모 친정엄마가 얼마나 솜씨 없고 살림은 안 한다는 소문이 나서
그럴까 하는 자괴감도 듭니다.
산모 몸조리 시켜준다고 집에 대리고 있으면서 산모 밥 한 번 차려 준적도 없이
오히려 얻어먹기만 하는 것을 그분들이 잘 알고 계신 겁니다.
산모 친정 엄마가 산모음식을 얻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살이 찐 모습이 보이거든 산후 조리를 잘해서 그런가 여겨주세요. ^^

건이2.jpg

맛있는 음식을 놓고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요리나 김치 담그는 일은 예술의 경지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평생 내손으로 김치를 담아본 일이 없어서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어쩌면 김치를 그렇게 맛나게 담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백김치는 무엇으로 맛을 냈는지
배추가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숨도 죽은 것 같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시원하고 달콤하고 그러면서도 새콤하면서 아삭한 그 맛의 비결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작은 사위가 될 집안에서 보내온 열무김치 맛도 지금 자판을 두드리면서
생각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 정도로 사근사근하고 새콤하고 시원합니다.
그런 것이 재료도 좋아야 하겠지만 다 손맛 아니겠습니까?
같은 재료를 써도 그 맛을 내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에
쉽게 해도 맛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맛난 김치를 담는 분들에겐 예술가 칭호를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이1.jpg

집에서 생후 20일도 안된 아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하면서도마음이 설레 입니다.
집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노는 모습도 예쁘고
미소를 지은 얼굴은 더욱 예쁩니다.
살인 미소라고 하더니 그 미소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하다가 어느 땐 귀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혹시 건이가 우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산모도 아닌 할머니가 매일 미역국을 먹고
사돈댁 김치를 예술이라고 감탄 하면서
매일 매일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순이

3 Comments

  1. 김진아

    2011-04-22 at 07:13

    들깨를 넣어 끓인 미역국에 쌀수제비를 넣어도 좋구요.
    쌀국수를 조금 넣어서 ..가끔씩은 미역은 미역이되 색다르게 먹어보는 것도
    좋아요. 아무래도 산후조리엔 미역국이 최고입니다.

    매일매일 할머님이 되어가시는 순이님..

    행복하신 모습이 보입니다. ^^

    똘망똘망 건이 모습..장군입니다.   

  2. 말그미

    2011-04-23 at 14:42

    아기가 날개 없는 천사군요.
    너무 예쁩니다. 며늘아이가 7월이면 곧 해산할 것 같아서
    보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새 아이는 곧 산모가 될 테고 우리 집은 반찬도
    내가 해서 잘 먹이고 따라 잘 먹을 것 같군요.ㅎㅎ
    예쁜 아기 탄생 축하드립니다.   

  3. 벤조

    2011-04-27 at 13:47

    정말 부러워요.
    순이님이 마음을 편히 쓰니 이런 복들이 나리는 모양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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