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중에 짝사랑이 최고!

매주 수요일 음악 공부를 하는 세종 아카데미가 일찍 여름방학을 해서
서너 달 쉬게 되었습니다.
수요일만 되면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나갔는데 방학을 하고 첫 수요일이 되어
비워둔 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잠자는 것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마음과 몸이 저절로 잠실로 향해갔습니다.

건이가 자기 집으로 간지 열흘이 된 날입니다.
우리 집에서 건이 엄마가 50여일 몸조리 하고 갔으니
건이를 못 본지는 10일 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눈에 밟힌다고 하나요?
바쁠 때는 모르겠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이 주어지면 손자가 눈에 아른거립니다.
지금 뭘 할까?
목욕은 했는지, 젖은 잘 먹고, 잘 자는지, 칭얼거리지는 않는지?
정말 쓸데없는 신경이 쓰여 지는 것입니다.
건이 엄마는 전업주부이니까 아기만 전적으로 키울 것이고
건이 아빠도 아기를 좋아하니 잘 돌볼 것이고 할머니가 가까이 계시니 수시로
들여다보시는데 내가 뭔 걱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며 마음을 이성적으로 가다듬고 정리를 해도 금방 도루묵입니다.
건이 보고 싶다. 이러며 노래를 합니다.
건이가 우리 집에 있을 때
(건↗이♬~ 거↘니♪~ 건이♩~) 이렇게 부르던 노래가 있었는데
어느 땐 혼자서 "건↗이♬ 거↘니♪ 건이♩"이러며 노래를 합니다.
누가 처음에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부르면 재미있습니다.
건이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건이” 노래를 리듬에 맞추어 여러번 부르면
아기가 방글거리며 웃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악회에 가는 것 보다 어떤 음악을 듣는 것보다
아기의 옹알이 소리가 더 듣기 좋고 행복합니다.
세종에서 공부하는 음악보다 건이! 건이! 건이! 의 단순한 리듬을 노래하는 것이
더 음악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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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 엄마가 결혼해서 잠실에 살림을 차리고 1년이 넘도록 딱 두 번 가 봤습니다.
한번은 결혼 후 1달여 만에 신혼집 구경을 갔고
또 한 번은 잠실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간 길에 한번 갔었구요.
도치를 그렇게 예뻐하면서 길렀지만 결혼을 시켜놓고는 잘 지내려니 믿고
그들이 가끔 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보고 싶으면 자주 쫒아가 보지 않았겠어요?
궁금하면 전화나 한번 해 보는 정도이지 그다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손자는 눈앞에서 아른 거리는 것이 안 보고는 못 견딜 것 같은 심정이 됩니다.

DSCN5870.jpgDSCN5868.jpg

자동차 미터기에 찍힌 거리로는 일산에서 잠실까지 43.41km가 나옵니다.
110리가 되는 길입니다.
하룻저녁에 왕복 220리길을 다녀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안 들고 건이를 본것만 기쁩니다.
다른 무슨 일이 있으면 하룻저녁에 그 먼 길을 왕복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지요.

내가 건이 보러 잠실을 다녀왔다니 여동생이 나에게 묻습니다.
"건이가 뭐라고 해?"
이 소리는 태어 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할머니를 반기는 것도 아니고
아는 척 할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무리를 해서 다녀오느냐는 뜻이 담긴 말이고
나를 놀리느라고 하는 말인 줄 알지만 나는 성실히 답변합니다.
"건이가 뭐라고 하더라. 내가 가니까 옹알거리면서 쳐다봐
할머니가 왔다고 반갑다고 그러는 것 같았어."
완전히 주관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닌데
이러면서 주책같이 저절로 할머니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언니가 손자에게 그렇게 빠질 줄 몰랐네?"
이 말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동생들에게도 늘 냉정한 조언을 하는 언니가
이렇게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놀랍다는 이야깁니다.
“진짜 손자가 그렇게 좋냐?” 고 묻는데
좋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는 미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하여간 손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계산되어지지 않는 눈먼 사랑입니다.

사랑은 짝사랑이 최고입니다. ^^

내가 건이만 들여다보고 좋다고 하니
“아기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걸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딸애가 얼굴에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힘드니까 더 보람 있는 일이지? 재미있지 않아?” 하니까
그렇긴 하지만 깊은 잠도 못자고 전적으로 건이에게 매여 있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며칠사이에 산후 부기가 가라앉아서 그런지 몸이 결혼 전 모습 그대로 되어있습니다.
젖을 먹이니 몸매 관리가 저절로 되는 것 같습니다.

열흘 만에 만난 건이는 그사이 몸무게도 늘고 키도 커 있었습니다.
옹알이 하는 것도 더 또릿하고 눈을 맞추고 노는 것도 활발합니다.
아기 침대 위에 모빌을 달아놓고 아기의 손목과 발목에 끈으로 연결해 놓으면
아기 손발이 움직이는 대로 모빌이 따라 움직이니까 그걸 쳐다보면서 좋아라 합니다.
건이가 잘 노는 것을 보고 오는데 마음이 흐뭇합니다.

DSCN5882.jpgDSCN5877(1).jpgDSCN5876.jpgDSCN5872.jpg

차를 타는데
딸과 사위가 건이를 안고 세 식구가 따라 나와 배웅을 합니다.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안정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순이

3 Comments

  1. trio

    2011-06-04 at 15:07

    짝사랑 이야기…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외손자 …할머니, 그것도 외할머니한테는 눈물이지요.
    딸이 출산하는 것과 양육하는 것을 보는 외할머니한테는 …
    그래도 손자의 재롱에 눈물이 기쁨이 되지요.   

  2. Hansa

    2011-06-06 at 01:26

    애기가 무장무장 이뻐집니다.
    애기 얼굴보며 웃고 갑니다. 하하

       

  3. 소리울

    2011-06-08 at 12:11

    할머니는 거짓말쟁이래요. 옹알이 하는 것도 할머니라 했다하고
    엄마 아빠 말했다 하고…
    다 아는 척 했다하고…
    이제 돈 낼 일만 남았군요 ‘자랑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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