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이슬비가 오락가락해서 오래 전부터 가려고 생각했던
임진각 평화누리 공연이 우중에 열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집에서 비교적 거리가 가깝고 휴가 마지막 날이라 건이네 식구들과
피크닉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성된 평화누리 공원에는
"음악의 언덕"이라 부르는 넓은 잔디밭이 있었습니다.
무대를 바라보게 약간 경사지게 자리 잡고 있는 대형 야외공연장은
뉴욕 센트럴 파크가 부럽지 않은 공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렐 정도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걱정이 되는 부분은 공연 중에 비가 오면 어른들이야 괜찮지만 아기가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음악의 언덕 어울터는 약 2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 공연장으로,
무대를 중심으로 넓게 자리하고 있어서 실내 공연장의 엄숙함은 없지만
자유롭고 평화로웠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부터 향긋한 풀냄새가 맡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
분단의 한국 역사와 냉전의 상징인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은 아주 대단한 기획이었습니다.
평화누리 음악의 언덕을 찾아가는 길에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개성으로 가는 출입국사무소가
보였는데 국경 아닌 국경을 만들고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열린 음악회인 것 같습니다.
7시에 시작하는 음악회에 오후 다섯 시부터 붐비기 시작 했습니다.
짙은 회색 구름이 가까이 내려와 있고 짙은 구름 속에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잠시 보이기도 했는데 저녁이 되어도 날씨는 여전히 후텁지근 더웠습니다.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건이를 눕혀놓고 우리는 저녁 겸 싸가지고 간 간식을 먹었습니다.
부지휘자가 나와서 오케스트라 단원과 합창 단원들이 함께 리허설을 하는 것을
보며 들으면 음식을 먹는 일이 너무도 멋스러웠습니다.
음악회에 대한 기대와 잔디 위에서의 피크닉은 "너무 좋다. 안 왔으면 후회할 번했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좋았습니다.
앞에 자리를 편 분들도 과일까지 싸가지고 와서 드시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고
다들 김밥이랑 통닭까지 싸와서 맛있게 가족들이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으면서도 비는 잘 참아 주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이슬이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모기는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진 콘서트는 영상으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소개와 소프라노 조수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축사가 담긴 영상 메시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야외 음악회이다 보니 진행이 순조롭지 않아 보였지만 편안한 분위기라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바렌보임의 지휘와 함께 “합창” 교향곡 1악장의 비장한 분위기가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자 주위는 철없는 매미소리 외에는 조용해 졌습니다.
구름 낀 낮은 하늘과 풀향기, 속에서 매미울음소리까지 음악 사이에 들렸는데
야외의 그런 소리는 음악을 방해하기보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1악장에서 2악장으로 넘어가는 잠시 동안 매미소리가 정적을 깨 주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면서 “그 매미 참 센스 있네!” 이런 느낌입니다. ^^
오케스트라의 연주 실력을 운운하기엔 이날의 분위기는 충분히 감격스럽고 뭉클했고
그러면서도 가볍고 경쾌했습니다.
(연합뉴스 사진)
전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에어컨이 시원치 않다고 연주 도중에 오케스트라 단원을
퇴장시키고 15분 이상 에어컨 점검 후에 다시 연주회를 했다는 바렘보임의 기사를 봤기에
무더운 야외 음악회에는 더 까칠해 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바렌보임은 지휘 도중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열 번도 넘게 꺼내는 모습이
보였지만 연주를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술의 전당에 비교하면 너무 덥고 습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박지민, 베이스 함석현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노래한 합창단의 힘찬 노래가 평화누리 야외 음악언덕에 울려 퍼지자
원어는 모르지만 찬송가 가사로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습니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안에서 우리 모두 피어나는 꽃같아~~
우리 건이 손을 잡고 지휘를 하면서 따라 부르다 보니 음악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졌지만 음악을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듣던 환희의 송가는 마음속에서 그득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면서 점잖게 앉아 있어야 했지만 야외음악회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우리 건이도 기분이 좋은지 무척 즐거워하였습니다.
앙콜 곡을 들을까 해서 10분 넘게 박수를 쳤지만 그런 서비스는 없었습니다.
잔디밭에 모였던 관객들도 조금 아쉬운 기분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족들과 피크닉 겸 참석한 평화음악회는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가고 싶어집니다.
임진각에 울린 평화의 메시지는 충분히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순이
말그미
2011-08-18 at 14:35
참 귀한 공연을 다녀오셨군요?
얼마나 근사했을까요?
장소가 임진각이 더욱 각별하셨을 듯합니다.
아고~
그런데 아기 건이가 모자를 터억~ 하니 써서
다 큰 애기 같아 깜짝 놀랐답니다.
얼마나 예쁜지요?
공연동안 보채진 않았는지요?
늘 바쁘실 분이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침 휴가 중이셨던 것 같습니다.
가족끼리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따뜻한 행복 늘 한결 같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