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멋진 남자와 단발머리 여인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가지고 산처럼 둘러 진치고
삼천여명의 관객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의 신호를 기다리는 긴장된 순간
그 가운데 우뚝 선 남자!
등을 보이고 서있는 남자의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됩니다.

그는 특이하게도 연미복을 입지 않고 조명에 비쳐 약간 감색 빛이 도는
정장양복을 입은 가늘고 긴 체형의 뒷모습이 심플하고 단정합니다.
그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듯도 하고
몸을 낮추고 가시덤불 숲을 걸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가
작은 몸짓으로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듯 머리를 털거나 크게 흔들고
신이 난 듯 양팔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씩씩하게 걸어 나와 객석을 향해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
오케스트라를 향해 지휘봉을 흔드는 모습이 다른 때 보다 더 멋있어 보입니다.
정명훈씨 나이가 60인데 어깨도 굽지 않았고 살도 찌지 않았으며
곧고 바르게 선 모습이 아름답기조차 했습니다.
남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 처음이지 싶습니다.

PS12010200120.jpg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단발머리 여인은 또 다른 매력입니다.
군청색 연주복은 어깨를 들어내고 무릎아래가 풍성한 옷인데
짧은 단발과 연주 복이 단아하게 어울렸습니다.
늘 긴 파마 머리였는데, 짧은 단발머리는 음악에 어울리는
포스를 풍겨내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들고 몸을 앞으로 약간 굽힌 도전적이고 자신 있는 포즈입니다.
뒷모습이 멋진 남자는 정명훈씨고 단발머리 여자는 정경화씨입니다.

남매가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너무 멋진 일입니다
바이올린을 들고 입장하는 정경화씨 걸음걸이는 씩씩하고
얼굴엔 가득 화사하고 친근한 웃음을 띠고
동생인 정명훈씨와 함께 무대를 걸어 나오는데
관객은 미리부터 환호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서 그런지
빈자리 없이 3000여석을 꽉 매운 관객들로 부터 박수가 아낌없이 쏟아집니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이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곡임에도
많이 중후하고 어쩌면 슬프기까지 한 느낌이 전해 와서
이제는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며 들어야 하는 것이 조금 애잔했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그 큰 무대에서 천하의 정경화씨도
삑사리를 내서 내가 잠시 아찔했습니다.
절대 완벽한 연주를 추구하던 그녀도 나이 들어가는 표가 납니다.
눈을 감고 그녀 특유의 인상을 쓰면서 음악 속으로 들어가서
거의 몰아지경에서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고
드레스 색과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려
발랄하고 음악에 어울리는 포스가 있었습니다.
가슴속까지 적셔오는 스코틀랜드 환상곡입니다.

스코틀랜드 환상곡 연주를 마치고
지휘를 한 남동생과 뜨거운 포옹을 하는 모습에서
남매간에서만 교감되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정경화의 연주가 끝나고 휴식시간이 이어져야 하는데
박수가 끊임없이 터져 나와 몇 번 인사를 하러 다시 나오더니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를 앵콜곡으로 들려주었습니다.
바흐의 곡을 연주하자 뜨겁게 박수치던 관객의 열기는 금세 얼음을 끼얹은 듯
기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게 바뀝니다.
고적하게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소리는 오래된 고성에 외로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그 넓은 음악회장이 순간에 분위기가 바뀔 수 있는 것!
그게 음악의 힘이겠지요?
PS12010200122.jpg(사진 세종문화회관 자료)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 가족, 정트리오
그중에 60세가 된 정명훈 지휘자와
65살이 된 바이올리스트 정경화 남매가 들려주는 음악은 행복한 화음을 이루었습니다.
정경화씨 젊을 때부터 그녀의 연주를 들어 왔는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그녀의 나이가 65세가 되었습니다.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화제가 됐던 정명훈 지휘로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주시간만 55분에 달하는 대작이라 그 감동에 박수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향 단원들과 한 목소리로 외쳐준 해피 뉴이어
올 한해가 해피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뒷모습이 멋진 남자, 단발머리 여인 너무 멋집니다.

순이

3 Comments

  1. 푸나무

    2012-01-07 at 00:31

    아, 나도 뒷모습 멋진 남자 가까이서 보고잡다.
    삑사리를 언어순화용으로
    헛치기…라던가 근데 잘 안쓰이는것 같아요.
    만들어놓긴 했는데,

    야아, 그런 대가도 삑사리를 ….
    근데 그게 콘서트 재미 아니게써요.
    실황 아닌곳에서는 들을수 없는,

    언니 부럽삼.!!!
       

  2. 벤조

    2012-01-07 at 08:09

    부러움 제청이요!
    그런데 정경화가 벌써 62세?
    내 나이 먹은 것은 잊어먹고 그녀 나이 먹는것이 안타깝네요.
       

  3. 소리울

    2012-01-08 at 01:00

    세월을 이길 장산느 없다더니…
    그래도 한 편생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인생이 풍요로울까요?

    한편생 후회없는 삶이 있을까 마는 음악가들 보면 늘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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