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낡은 메리야스는 예술입니다.

우리어머니는 여태도 당신의 빨래는 손수 하십니다.
흰 메리야스를 말갛게 빨아 널어놓은 것을 보면 예술입니다.
면이 낡아지고 얇아져 하늘거리는 것이 실크같고깨끗함은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낡을 뿐 아니라 종종 기워진 어머니의 속옷이 널린 것을 보기도 하는데
그것도 하도 깨끗해서 어머니의 야문 손끝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속옷을 기워 입는 사람이 있냐고 하시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내의에 헝겊을 덧대어 기워 입으십니다.
자녀가 많은데 옷을 안 사 드려서 그러나 하시겠지만 안 사드릴리가 있겠어요?
새것을 사 드리면 선물상자 채 받아 두었다가 포장지도 풀지 않고
이웃에 불쌍한 할머니들께 나누어 드립니다.
어머니가 받아서 다른 분들에게 드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리지도 못합니다.
그냥 기워서 빨아 널어놓은 내의가 눈에 띄면 “예술이다.” …그러며 바라봅니다. ^^

누구든 새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헤어진 옷을 입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데 남에게 좋은 것을 주기위해 헌 것은 내가 입는 다는 우리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손끝이 아주 야문 분이라
빨래를 해도 때가 쏙 빠져서 원래의 색깔을 유지하고
와이셔츠 다림질을 하셔도 세탁소에서 한 것처럼 다리십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 네 자매는 엄마가 낳은딸인데도

살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다 직업이 있어서 그렇긴 하겠지만 그래도 큰딸인 나를 비롯해서
딸 넷의 살림살이가 다 남의 도움을 받거나 허술합니다.
여태는 내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는데 작년부터는
어머니의 막내딸인 춤바람동생 집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해외공연이 잦다보니 아직 초등학생인 손자들 돌보시러 가셔서
나는 어머니를 빼앗겼습니다.
어머니 안 계신 공백을 요즘엔 사위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알뜰한 사위가 살림을 잘 챙깁니다.

세탁기에서 다 된 빨래를 베란다에 널면서 보니
빨래는 분명 다 되어서 때는 빠진 것 같은데 색깔은
어머니께서 손빨래 한 것처럼 선명치 않습니다.
여러 색이 서로 엷게 섞인 듯도 하고 땟물이 적당히 혼합되어 이 옷 저 옷에
옮겨 다닌 것도 같아 보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손수 손세탁을 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손빨래를 할 여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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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되어 빠른 시간 안에 성경을 일독하시겠다고
젊은 사람들 틈에 앉아서 성경을 읽으시는 우리 어머니 십니다.
80이 넘은 연세에도 저렇게 몇 시간씩 성경을 읽으신답니다.
어머니는 백내장 수술 하신지도 얼마 안 되셨고
무릎도 인공관절이라 같은 자세로 추운데서 오래 계시면
많이 불편 하실 탠데도 연세는 생각지 않으시고 저렇게 하십니다.

새해 들어서 저런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를 위해 책을 한권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도 일제 강점기에

강원도 깡 촌에서 태어나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하여 7남매를 낳아
키우시느라 갖은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
자녀를 다 키워놓으니 손자를 키워야 하는데 그걸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 평생엔 휴일이나 휴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어머니삶의 행적을 적으면 좋은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써 놓은 것만 모아도 책 한 권을 되고도 남을 듯합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제대로 글쓰기 공부를 한 적 없이주절주절 적은 글이지만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께서 글을 읽을 수 있고 지력이 있을 때
책 한권 만들어 드리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듭니다.
몇 년 전 부터 블로그를 보는 사람들 중에 책 내라고 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결혼 전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럴 주제가 아니라서
1%의 가능성도 없이 거절을 하곤 했는데
이제 두 딸이 다 결혼하였고 손자도 있는데 내가 좀 주책을 부린다고 해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기 위해 책을 만들어 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책이고
읽을거리가 너무 많아서 나부터도 보내온 책 중에는 개봉도 안하고 버리는 책도 있는데

종이 낭비가 없는 블로그 글쓰기로 만족해야지 늘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블로그엔 들어오지 못하셔서 내 글을 읽지 못 하십니다.
전에 어머니께서 인공관절 수술을 위해 입원해 계실 때 병원일지를 쓴 것이 있어서
그걸 프린트해서 읽어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에게는 옷을 기워 입을 정도로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새 옷을 내어 드릴 정도로 너그러운 마음씨와

늘 겸손하고 책을 읽으시는 노모의 모습은 누구에게라도 귀감이 될 듯합니다.
그러니 효도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위한 책을 내 볼까?
괜히 그런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듭니다.
괜찮을까요?

순이

5 Comments

  1. 소리울

    2012-01-08 at 16:09

    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 어머니도 새 것은 다 남을 상자째 내어주셨는데 돌아가시고 보니
    막상 어머니 옷은 기워입고 계셨는데 새 상자가 아직도 남아있었지요.
    어머니들의 삶은 오늘을 사는 며느님들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아니, 어머님께서 행복해하실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하신 일이 옳은 일이고 훌륭하고 지혜로운 일이었다는 확신을
    딸의 책을 통해 얻게 되실 것이니
    제일 효도하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2. 리나아

    2012-01-12 at 01:52

    어머니의 신념과 부지런하심,등등 정말 참 대단하십니다.

       

  3. 벤조

    2012-01-12 at 05:31

    하세요, 당장!
    제가 평생교육원의 life story writing 클라스에 다녔는데
    거기 오는 사람들 보면 대개 자기 주위사람들 이야기를 써요.
    기록으로 남겨 후손에게 주겠다는 뜻이지요.
    개인 기록이지만 그 시대상도 기록되는 것이니 의미가 있겠지요?
       

  4. 길벗

    2012-01-15 at 11:51

    좋은글…담아갑니다.   

  5. jh kim

    2012-01-23 at 13:00

    당장 준비하셔야 합니다
    왜 냐구요?
    요즈음 함부로 멋데로 좌충우돌하는 젊은이들에게
    필독서가 되어
    베스트셀러가된다면
    나라가 달라질겁니다
    사회가 변화될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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