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를 귀애하느니 방아개비를 귀애하라지만

외손자는 아무리 귀여워한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로
외손자를 귀여워하느니 방아깨비를 귀여워하라는 속담까지 있지만,
나를 처음으로 할머니로 만든 나의 외손자 건이에게
마음이 홀딱 빠져 있다시피 합니다.
손자를 며칠만 못 보면 너무 보고 싶어서 손자를 데리고 안 오는
딸과 사위가 서운해서 혼자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손자가 살고 있는 잠실을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면
매일 가서 들여다 볼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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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이 다는 아니지만 거의 손자를 둔 할머니들이 들이라
모이면 화제가 손자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나도 그렇지만 손자 이야기는 해도 해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할머니 노릇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딸이나 며느리가 직장에 나가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손자를 봐 주는데
주5일 재택근무라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나가서 일 하는 게 쉽지 손자 보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외할머니가 된 사람도 있고 친 할머니가 된 친구도 있는데
손자 자랑에 침이 마르다가도 어느 순간 손자를 키우면서
서운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날 딸 내외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네 살 먹은 외손자 옷을 입히고
친구도 코트를 꺼내 입고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나가려고 하자
"할머니는 요리하고 집에 계세요." 이러더랍니다.
아이 생각에 할머니는 집에 있어야 하고 어디 가는 것은
엄마 아빠와 가는 것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순간 몹시 속이 상하더라는 겁니다.
어린아이에게 할머니는 집에서 청소나 하고 요리나 하고
어디 외출하는 것은 젊은 엄마 아빠하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의 생각에 각인되게 심어준 자신의 태도가 잘 못 되었다는
자괴감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친구는 주5일 손자를 남편과 함께 봐 주는데
사탕 다섯 알을 가지고 놀면서 한 알은 엄마 주고
또 한 알은 아빠주고 세 번째 것은 자기가 먹고
이렇게 말하며 두 알이 남아서 고민을 하기에 장난으로
“한개는 할아버지 먹고 한개는 할머니 드리자.“ 했더니
손자가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안 된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서운하더라고 합니다.

또 한 친구 남편은 집에서 놀던 손자를 딸이 데리러 왔기에
집에서 안고 나와 차안에 안전하게 넣어주려고
안쪽으로 밀어 넣었더니 할아버지가 함께 타려는 줄 알고
"할아버지는 우리 차타면 안 된다."며 밀어 내더랍니다.
아이가 무슨 뜻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며 괴로워하더라는 겁니다.
세 살 된 아이가 별 뜻 없이 한 행동을 가지고 뭘 그렇게 괴로워하냐고
친구가 남편에게 얘기 하니까
아무리 어리다고 이해를 하려고 해도 뭔지 괘씸하고 상처가 된다고 한답니다.
그러다가도 철없는 아이가 한 말을 가지고 서운해 하는 자신이
내가 이렇게 옹졸한 인간이었나?
정말 내가 늙어서 노여움을 타느라고 그런가?
이러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우울해 한다는 군요.

그 서운한 맘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저만 예뻐하며 길렀는데
말을 배워가지고는 사탕 한 알 가지고 인색하게 굴고
자기네 차에는 할아버지 못 타게 하고
할머니는 요리나 하고 집이 있으라고 하면
그처럼 서운 한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손자를 귀애하느니 방아깨비(방아공인지)를
귀애하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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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이는 아직 말을 안 배워서 그런가?
그냥 귀엽고 예쁘기만 합니다.
짝사랑인 것이 분명하지만 짝사랑 할 대상이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순이

8 Comments

  1. 솔이할배

    2012-01-16 at 18:45

    님의 글을 읽으면서 203호나 303호나
    다르지 않다는 우스개가 생각이 났습니다

    나 역시 직장에 나가는 딸 아이 시집 보내고
    첫 외손자를 보면서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키웠습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 덕분에
    친 손녀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정말 애지 중지해서 집사람과 같이
    키우고 있는데 – 이제 35개월 입니다

    그런데 다니는 어린이 집 선생님으로부터
    깜짝 놀랄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몹씨 그리워한다고 —
    2주일에 한 번씩 내려와서 만나는 엄마 아빠가
    몹씨 보고 싶은가 봅니다

    그런데 평소에 우리 보기에는 전연 그런 내색을
    한 일이 없는데– 가끔 떼를 쓰면 너 이러려면
    엄마 아빠에게 보낸다고 하면 – 기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이 진심인줄 알았는데–

    요즈음 철이 조금씩 생기면서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좋은가 봅니다 – 2주에 한번씩 만나는 엄마 아빠가
    오는 날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얘기 합니다
    손자는 [꿩병아리] 라고—
    아무리 잘 키워줘도 때가 되면 산으로 날아가는
    [꿩병아리 -]
    그런데 그 꿩병아리를 오늘도 끼고 잡니다

    세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꿩병아리를 키우는
    바보들입니다 — 그래도 좋습니다
    꿩병아리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예쁠수가 없습니다

       

  2. 가을나그네

    2012-01-16 at 21:39

    ‘외손자’를 강조(?)하는 것은
    ‘친손자’는 귀여워해도 좋다는 얘긴가요?
    직접 키운 제자식들도 소용(?) 없는데
    손자 손녀가 무슨 소용있습니까.
    요새 세상에 소용있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이지요.

    그렇다고 제 자신 그렇게 삭막하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제가 자라난 후 부모님께 별로 효도를 못 한 것을 볼 때
    (부친 일찍 돌아가시고 20대 후반에 유학와서 미국에 살고 있음)
    그저 건강하고 재정적으로 능력이 있어서
    (애들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애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도울 수 있으면 최선인 것 같습니다.   

  3. 데레사

    2012-01-17 at 00:38

    하루종일 데리고 키우는것과 한번씩 보는것과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저도 손자를 길러보지 않아서 섭섭한건 잘 모르고 그냥 이뻐기만 하거든요.
    그러나 직접 키우는 친구들 얘기로는 섭섭한게 아주 많다고 그럽니다.

    문제는 더 큰 후에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아주 무시한다는 겁니다.
    할머니는 몰라도 돼,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고요. 그리고는 세상에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무식쟁이 취급을 해버린데요.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하면서도 어떤때는 눈물이 난다고도 해요.

    나도 다음달에 북경 딸네집에 20일간 파출부하러 갑니다. 딸이 갑자기 미국에
    갈 일이 생겼다고 해서 진짜로 애들 셋 밥 챙겨주고 학교가는것 챙겨주러
    가는데 마음 단단히 먹고 가야겠어요.ㅎㅎ   

  4. 소리울

    2012-01-17 at 11:42

    아이들때문에 분명 상처받습니다.
    친할미인 저는 어쩌다 함께 외식할 때 키워주신
    외할머니 옆에만 앉으려고 하는 것도 속상합니다.

    당연히 키워준 정이 더 가까우니 그러려니 할 것인데도
    매일 보았으면서 그런 날에도 옆에 두고 밥을 먹는 사돈도…
    옹졸하고 비좁은 맘을 들여다 보는 저 자신도 속상합니다. ㅎㅎㅎ
    그런 아이들이 다 자라서 속은 두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한다 카드도 보내고
    귀여운 맛은 없어지고 성숙한 처녀같네요

       

  5. 벤조

    2012-01-19 at 06:07

    손자가 할머니께 배신때린다! ㅎㅎ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6. 리나아

    2012-01-19 at 20:37

    50대 때에는 굳이 빨리 할머니소리를 듣고싶지 않다했는데..
    이젠 점점 나보다 아래인 할머니들이 많은 걸보니 자연스레
    할머니가 되고싶어지고..미리 들어두는 이야기가 좀 괘씸하다해도 재밌기만 합니다 .
       

  7. 부엉이

    2012-01-24 at 09:49

    ㅎㅎㅎㅎ 앞으로의 일이지만 참고하겠습니다.   

  8. 그냥할배

    2019-09-06 at 20:32

    갑자기.. 매일 꼬부랑 허리춤에 징징거리는 이놈을 업고 읍내 시오리길을 걸어다니시던 외할머니가 보고싶네요.
    ~지금 와손주놈을 델다주고 오는길 입니다.
    할배한테 인사도 안하고 지에미한테 쪼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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