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동생 내외의 졸업식 겸 학위식이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박사학위 제부는 석사를 마쳤습니다.
한 달 전부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졸업식에 가려고 별렀지만
점방을 비우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못가고 말았는데 참석하신 우리 어머니께서 흐뭇하시겠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카카오톡으로 졸업식 사진도 전송받고 학위를 수여받는
순간은 동영상으로 보내 주어서 거의 실시간으로 현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구에 사시는 오라버니 내외분도 오시고 동생내외 제부의 부모님 등 많은
분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오라버님이 점심식사를 사셨는데 한식집이 그득하더라고 합니다.
여동생은 나이가 쉰이 넘었습니다.
오래 해외 선교지에 나가있다가 안식년이 되어 귀국을 한 김에
박사과정을 하겠다고 하기에 나이가 있는데 공부가 잘 될까 우려했지만
2년인가 2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우리 여동생이야 말로 공부가 가장 쉬웠나 봅니다.
20년 넘게 해외에서 선교사로 교수로 활동을 하면서 실전을 겪었고
많은 경험을 살려 박사과정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형제들은 모두 환영했습니다.
국내에 정착하면 가까이에서 자주 보고 살면 좋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마침 대학에 자리가 있어서 가게 되었다고 해서 여러모로 좋은 소식이 들립니다.
우리 형제 중에선 최초의 박사이자 유일한 박사이지 싶습니다.
혹시 막내 남동생이 박사과정에 도전하면 모를까
형제들이 공부하는 것을 다 좋아하긴 했지만 이젠 나이들을 먹어서
공부에 뜻을 두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보니 형제 중 내가 가방끈이 가장 짧아졌는데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대리만족이랄까? 기껍고 즐겁습니다.
요즘 흔한 게 박사라지만
우리 집에선 유일한 박사라 우리 어머니께서도 즐거워하셨습니다.
가난한 깡촌 강원도에서 태어나 어려움 중에서도 7남매가 다 공부를 했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80이 넘으신 어머니께서 정정하시고
자녀들의 기쁨에 동참하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누구라도 아킬레스건이 있기 마련인데
저는 친정이 가난해서 늘 마음이 쓰였습니다.
자격지심은 자신도 모르게 묘하게 꼬인 부분이라
조금만 건드려도 길길이 뛰고 과잉방어를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콤플렉스로 의식 밑바닥에 있다가 작용을 해서 남편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우리도치들이
치열이 고르지 않고 시력이 나쁜 것은 꼭 외가를 닮았습니다.
도치 친가 쪽 사람들은 시력도 좋고 치열도 좋은데 외가 쪽은
시력도 다 나쁘고 치열도 나쁘고 그렇습니다.
그런 건 좀 안 닮으면 좋은데 왜 나쁜 것은 엄마를 닮나 모릅니다.
도치들이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날 무렵 치열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크면 치아교정을 해야 하겠다…”이런 말을 하다가
도치아빠가 "치아교정 비용은 도치 큰삼촌에게 청구해야겠다." 그러는 겁니다.
물론 도치아빠야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지만 저는 너무 화가 나서
도치아빠에게 한바탕 싸움을 걸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 포함해서 무섭게 화를 내니까
도치아빠가 항복을 하더라구요.
처가 쪽에 대해 내가 무지 예민하게 구니까
그 부분을 도치아빠가 무서워했습니다. ^^
그래서 결혼 초 부터 남편은 나에게 수없이 경고를 하더군요.
"지금이야 당신 동생들이 결혼하지 않았으니까 당신 좋다고 하는 거지
다 자기 짝 찾아서 결혼해 봐 당신 거들떠도 안 볼 걸?
그때 가서 섭섭하다고 하지 말고 적당히 해.
너무 그러는 것도 동생들에게 부담이 될 거야…"
이러며 내가 동생들 때문에 늘 마음 쓰는 것을 못 마땅해 했습니다.
그럴 때 제가 남편에게 큰소리 쳤습니다.
"그렇지 않아 난 형제 많은 집 장녀이고 동생들 보살필 의무가 있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동생들 잘 돌보라고 유언을 하셨는데
부모 유언을 저버리는 자녀가 어디 있어? 당신은 있는 집 아들이라 물정을 몰라서 그래."
이러며 반발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동생들 학비도 많이 대고 처가에 하느라 고 했지만
워낙 처갓집이 가난한데다 형제가 많다보니
고생만 하고 표는 별로 나지 않아서 짜증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남편이
요즘엔 처가 쪽 위세에(?) 눌린 사위들을 모아 단합대회를 하곤 합니다.
사위 중에 대표 격인 도치아빠가 여동생 남편들을 불러내어
동서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처가집 식구들 흉을 보나 봅니다.
무슨 말들을 할까 궁금한 나는 만만한 막내제부를 꼬드겨 보지만
동서들 끼리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뻔~ 한 거 아니겠어요?
사위들 끼리 모이면 처가 흉보겠지요.
우리도 동서들끼리 모이면 시집 흉을 보니까요.^^
(이럴 땐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이 잘 안됩니다.)
지금은
동생들이 다 결혼하여 각자의 가정을 단정하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계시니 우루루 몰려다니며 함께 식사를 하거나
얘기를 나누거나 모이길 자주 합니다.
남편이 "동생들 결혼하면 당신을 거들떠도 안 볼 거라"고 장담 했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형제는
어렵고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최고의 우군입니다.
남이 뭐라 든 극성스럽게 보살핀 형제의 숲이
더욱 튼실하고 무성해 지는 것 같아서 흐뭇합니다.
순이
모가비
2012-02-10 at 02:14
집안의 경사를 축하 드립니다.
강원도 산골,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우리 형제들의 생각이 합께 떠오르는 군요
이제는 모두 손주들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일희이희(一喜二喜)하며 지나지만요..
잘읽고 불로그 염탐 하고 이웃 신청하면서 돌아 갑니다^^
맘소리
2012-02-10 at 02:51
축하드립니다!!
가족의 기쁨은 내 기쁨이며 이웃의 기쁨이지요.
행복한 가족의 모습에서, 남인 저도 기쁨을 느낍니다.
God bless you, all !!
벤조
2012-02-10 at 05:57
부럽습니다앙~~
많이요.
미국에 살며 가장 후회되는 일이 가족관계입니다.
푸나무
2012-02-11 at 02:48
추카 추카드려요.
오늘에사 돌아왔어요.
jh kim
2012-02-13 at 12:11
내가 왜이리 눈물이 흐르는가요
왜 이리도 가슴이 뭉클해지는가요?
축하드려요
축하드려요
누가뭐래도 연로하신 어머님과 대구 최목사님 눈에선 보이지 않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을껍니다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감사한일이
이렇게 고마운일이
축하드려요
순이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치 아버님께서 훨씬더 수고 하셨구요
어머님께서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모습을 그려봅니다
윤동희
2012-03-13 at 01:47
순이님 블로그에 댓글을 달기위해서… 조선컴 가입도 하였습니다^^ 위의 게시글을 읽고 순이님께 질문을 드리면 답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용기내여 이메일을 보내었습니다. 순이님.. 시간나실때 이메일 (lilian@remekorea.com)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 주소로 온 메일은 제가 쓴 것입니다 ㅠ 저는 결혼을 앞둔 예비 새댁이고.. 남편의 갑작스런… 박사 도전 계획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ㅠㅠ 제 메일에 답변을 주신다면 평생토록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