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노인과 아이는 심심하면 사고

요즘 14개월이 되어가는 손자 건이가 우리 집에 와서 노는데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집 전화기는 건이의 장난감이 되었고
탁자에 있어야 할 물건 중 깨질 것 같거나 위험한 것은
높은 곳으로 다 피난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텔레비전이 있는 탁자의 서랍을 다 열고 닫고 속에 것을 꺼내놓고 합니다.
건이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 합니다.
"엄마 건이가 남자라서 그런지 저지래가 감당이 안 되네? 난 얌전했지?"
저만 유난한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다는 얘기지만
듣고 싶어 하는 기대와 다른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넌 더했거든~ 건이는 너에 대면 얌전한 편이야."
"에이 엄마는~~ 설마 내가 건이 보다 더 하였을까?"
"진짜야 네가 이런 말을 할 때를 대비해서 엄마는 사진으로 다 찍어서 보관해 두었거든."
사진첩에서 건이 엄마의 아기 때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도 지극히 말썽부린 순간을 찍어둔 것만 찾아가지고요.
사진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어요?
사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찍어둔 사진은 아니고
첫 아이라 말썽을 부려도 예쁘고 우는 것도 귀엽고 그래서 찍어둔 것이거든요.

aa.jpgbb.jpg

우리 딸 "아~~~ 난 엄마 때문에 못 산다. 이런 사진까지 가지고 있다가
증거를 들이대면 난 건이에게 아무 말도 못하겠네. 엄마 다른 사진은
제발 건이나 건이 아빠에게 보여주지 마세요." 이러는데
나는 건이 크면 다 보여 줄 거야! 너 클 때 사진으로 찍어둔거랑
건이랑 비교해 가면서 보는 재미를 엄마는 즐길 거고.
너만 건이 키우기 힘든 것 아니야 엄마도 너 키울 때 힘들었다고. 하하"
우리 딸 아무소리 못하더군요.
건이 엄마 키울 때 일을 다 잊어버려서 그런지, 사실 건이 엄마도 얌전한 편이였고
건이도 아기답지 않게 신중하고 위험을 감지하면서 살살 다니거든요.

건이 엄마에게 할머니 얘기도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인공무릎관절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일입니다.
수술부위에 의사선생님이 드레싱을 하고 거즈로 덮어서 반창고를 붙여놓고 가셨는데
어머니께서 수술 후 일주일이 되자 실밥이 거즈위로 뚫고 올라오고
수술부위가 아무느라고 몹시 조이고 아프니까
붕대를 풀고 상처를 꿰맨 실밥을 손톱깎이로 몽땅 잘라버리셨습니다.
상처 봉합할 때 매듭을 지은 후에 실밥을 1cm쯤 남겨두고 자르는 것은
실밥을 제거할 때 잡기 좋으라고 해 놓은 건데
매듭 있는 곳 까지 바짝 잘라버리셨으니 실밥이 풀릴까 봐도 걱정이고
상처가 벌어질 것도 같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선생님께서 뭐라 하실 것 같아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실밥이 찌르고 불편해서 심심한 김에 자르기는 하셨지만 어머니도
선생님께 야단맞을 것 같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기에 내가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사고를 치셨는데 어쩌지요?"
"무슨 사고를요?"
"수술부위를 꿰매놓은 실밥을 다 잘라내셨어요."
"어머니께서 심심하셨나 봐요? 어디 함 보십시다!
이래서 어린이와 노인은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니까요. ㅎㅎㅎ
실밥이 안 보이면 나중에 스티치 아웃 할 때 힘들어요."
"상처에 감염이나 실밥이 풀릴 염려는 없을까요? "
"지금으로선 괜찮아 보이는데 소독해 놓고 두고 보지요."
"지난번 떨어지셨을 때처럼 철사로 꿰매시지 않나요?"
"두고 볼게요! 그냥 아물 것 같습니다만…..스티치아웃 할 일이 좀 고민입니다."
"그건 선생님이 하실 고민이지 어머니는 아무 상관이 없네요? ^^
불편해서 아무도 없을 때 손톱깎이로 실밥을 자르긴 하셨지만
또 철사로 꿰맨다고 하실까봐 걱정하고 계셨거든요. "
"고민은 제가 할 태니까 어머니는 걱정하시지 말고 편히 계세요. ㅎㅎㅎ" 이러시더군요.
선생님이 착하니 그렇지 정말 야단맞을 일이었지요.

"어린이와 어른들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고
노인 환자의 심심함을 이해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정말 좋은 분이셨고 그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다 아시지만 아이가 가만히 있으면
어디가 아픈 것이고 조용하면 사고를 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잠시라도 조용하면 얼른 아이를 찾아봐야 합니다.
어느 구석에선가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거든요.

건이가 14개월이 되었는데도 아직 젖을 먹고 있어서
어떻게 끊나 걱정을 하기에 건이 엄마에게 너도 16개월 정도
젖을 먹었으니 건이를 그 정도는 먹일 각오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건 잘못된 육아 방법이라고 하기에
그래서 네가 잘 못 자랐느냐고 물었더니 할 말이 없어합니다.
아이를 낳는 김에 얼른 한 명 더 낳으라고 했더니 자신 없어 합니다.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고 하는데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이 어디 있나요?
다 자기 몫의 일은 하고 살아야지요.

친정엄마 치고는 좀 재미없지요? ^^

순이

1 Comment

  1. 김윤선

    2012-05-22 at 13:58

    우리 손자는 16개월인데요 넘 공감되는 글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손자의 이름도 건이랍니다. 상건이 줄여서 건이라고 부르지요. 너무 예쁘고 귀여운 손자이지요^^*
    제 블로그(blog.naver.com/ysk0519)에 손자사진 많이 올려 관리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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