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무서울 때가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셨나요?
이제까지 열심히 잘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형제들이 많은 것이 즐겁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자녀가 결혼해서 좋은 가정을 꾸려가며 재미있게 사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이 크고
손자의 재롱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철없는 할머니고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시고….
도무지 아쉬울 게 없는 안정된 삶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무서워지는 겁니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 죽을 건가?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데 내 마음을 아무리 달래도 내가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갱년기 우울증이 아닐까?
삶의 권태가 온 걸까?
그야말로 배가 불러서 그러는 걸까?
스스로 여러 가지 진단을 해 보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삶의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
배터리가 닳아서 멈춰버린 그 상태의 내가 돌아다 보입니다.
70살 까지는 일을 하고 그 후에 놀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유 없이 찾아온 일상의 권태는
일을 계속하기엔 이웃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옳지 않은 것을 깨달고
점방을 접었습니다.
30년 넘게 꾸준히 일을 했으니 나에게도 안식년을 주기위해
일을 접고 한 일 년 쉬려고 합니다.
일을 쉬면 다시 일하기 어려울 거라고 주위에서 조언을 하는데
"못하면 말고."이런 각오도 생깁니다.
이제부터 마음 가는 데로 해보려고 합니다.
일 을 쉰 첫 주간인 지난주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 집도 빼먹지 않고
형제들의 집을 순회했습니다.
여동생 집에 가서도 자고 어머니 모시고 호텔과 팬션에서 자기도 하고
막내 남동생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막내 남동생 집에 간 저녁에 늦도록 앉아서 이야기 했는데
어머니를 비롯해 다 새벽 형 사람들이라 새벽 여섯시가 되자
다들 또 거실에 모여 앉습니다.
평소에도 카카오톡으로 형제들이 매일 수다를 떨지만
시간에 쫒기지 않고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 하는 일이 귀한 일입니다.
새벽 여섯시에 시작한 수다가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이어지는데
아침 식탁이 차려져서 동생이 막내아들을 부르자
방에서 눈을 비비며 10살짜리 조카가 나옵니다.
눈을 비비는 아들을 바라보며 동생이 "너 게임했구나?" 라고 물었습니다.
쉬가 마려워서 거실에 나왔던 조카가 언제 제 아빠 휴대폰을 들고
방에 들어가 두어 시간 게임을 했나 봅니다.
아이는 당연히 안했다고 하지만
"짜샤~ 너 눈 보면 다 알아." 하니까 열 살짜리는 제법 말대꾸를 합니다.
"내 눈이 뭐 어때서요?"
"게임해서 눈이 작아졌잖아?"
"아니에요 잠간만 하고 잤어요."
"자면 눈이 커지는데 게임해서 작아진 눈이 보이는데 짜식이~"
"아니예요! 제 눈이 원래 작아요."
" 니 눈이 왜 작아 짜식아~ 게임을 하니 작아 진거지"
"아빠는~~ 내 눈이 원래 작아요. 게임해서가 아니예요."
어머니와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막내 남동생은 자신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운 청소년기를 거쳐서 그런지
자녀들에게 매우 엄격하게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을 봅니다.
게임을 못하게 단속하는데 집에 할머니와 고모들이 온 사이에
잠깐 아버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걸렸으나
게임 해서 눈이 작아졌다고 하는 아버지와 눈이 원래 작다고 알리바이를 대는
아들의 싸움을 보는 게 너무 행복해 보이고 재미있는 겁니다.
그러다 부자가 끌어안고 뒹굴며 장난을 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이제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게 여겼던 부분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한 일 년 놀며 재충전을 해야 하겠습니다.
에너지가 방전 된 상태에서 죽지 못해 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유익이 없습니다.
초보운전자가 자신의 차 뒤에
“저도 제가 무서워요. 나 초보” 이렇게 써 붙인 것을 보고
맞다 내 마음 상태가 저렇구나! 나도 내가 무서울 때가 있구나!
이제 부터라도 나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일도 접고 열심히 충전하려고 합니다.
내일 부터는 미국을 갑니다.
순이
소리울
2012-06-10 at 09:24
잘 다녀오세요.
재충전의 기회는 정말 잘 선택하신겁니다.
더 무서워지기 전에 선택하신 일,
축하드립니다.
저는 지금 제가 무섭답니다.
그렇지만 무서움을 무릅쓰고 무서움을 즐겨야 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리나아
2012-06-11 at 08:19
용단내리는 일 쉽지않은데….
좋은 시간 누리세요….
제 친구들 약사친구들 토욜 결혼식, 자기네 혼사외에는 참석도 못하고….
다는 아니지만… 대개들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