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또다시 입원을 했습니다.
통증이 조절되지 않고
통증으로 인해 잠을 못 주무시고
식사를 잘 못하시고
신체쇠약이 오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어서 입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자 "큰애야 나를 병원으로 대려다 다오."이러십니다.
평소에 약 한 톨 드시는 것도 꺼려하던 분인데 병원을 대려다 달라는 것을
보면 정말 많이 아픈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은 아닙니다.
두 주전 병원에 입원할 때도 손이 저리고 아픈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평생 몸 움직이는 것을 쉬지 않으시고 의지가 강하고
자존심이 누구보다 센 분이라 아프다는 말씀을 입 밖에 내질 않습니다.
어쩌다 감기 몸살이 된통 걸려서 끙끙 앓으면서도 약을 드리면
"아플 만큼 아프면 낫지, 약은 뭐하러 먹냐? "이러며 한사코 약도 안 드시고
생으로 앓아서 "어머니 같은 분만 있으면 약국은 다 굶어죽어요. 아프면 먹으라고 있는
약인데 왜 안 드시려고 하세요? 드시면 병이 빨리 낫지요.“ 하면
"우리 엄마는 (나의 외할머니) 평생 약 한 첩 안 드시고도 오래 사셨다.
밥 잘 먹으면 낫는다. 걱정하지마라." 이러시며 할일을 다 하시면서
누워서 앓는 모습도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기억에 아기를 낳으시고도 2~3일이면 나와서 움직이곤 하셨습니다.
그랬던 분인데 스스로 병원에 가시겠다고 하니……
손이 저린 것 때문에 손목터널 증후군 수술을 받으시고
퇴원하여 손목에 수술자국을 보고도 근심이 많으십니다.
"이렇게 수술자리가 시퍼렇게 되어 보기 싫어서 어쩌냐?"
우리가 보기엔 수술자리가 그 정도면 아주 깨끗하고
잘 된 것으로 보여 지는데 그걸 자꾸 들여다보면서 속상해 하시는 것을 보면서
아무래도 어머니가 전과는 달라지긴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팔십대 중반의 연세에도 응석이라고 모르셨는데
갑자기 허물어지는 모습에 우리 형제들이 당황을 했습니다.
모여서 어머니에 관해서 여러모로 의논을 했는데
"어머니를 격려해 드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드리자"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닌데? 이러며 이상하게 생각하면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어머니의 상태를 우리가 못 받아 드리는 것이 되니까
일단은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보자고 했습니다.
MRI, CT 등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 이렇다 할 질병은 없고
손 저림은 손목수술로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해서 한 수술인데
연세 때문인지 효과가 없어서 오히려 수술의 고통만 더 한 것 같습니다.
신경과에서 검사결과 뇌출혈도 없고 특이 상황은 없는데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어머니는 치매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평소에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에게 치매 판정을 내리시는 것에
평소에 친분이 있는 의사선생님이신데도 화가 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올 봄부터 조금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장롱의 물건을 꺼내어 자주 정리를 하시는 겁니다.
장롱 속에 옷 등을 꺼내 보자기에 싸서 다시 넣고
며칠 뒤에 또 풀러 개어서 보자기에 싸곤 하시기에
워낙 정리 정돈을 좋아하기고 깔끔하신 분이라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내일 이사 갈 사람의 장롱정리 같은 상태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워낙 가난하여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보따리로 싸던 기억이 있으셔서 그런가보다 여겼습니다.
속옷에 주머니가 달려서 용돈을 드리면 모아서 거기다 돈을 넣고 계시는데
핀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옷핀을 아예 한통을 사다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옷을 바꿔 입으시며 벗은 옷은 빤다고 하시는 것이
보따리에 싸서 깊이 넣어 두시고는 돈이 없어졌다고 하루 종일 찾았습니다.
어머니의 행동반경을 내가 가장 잘 꿰고 있으니까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역추적해서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입었던 속바지를 깊이 넣어 보따리에 싸서
장롱 깊숙한 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잘 둔다는 것과 세탁을 할 옷이라는 것이 구별이 안되는 탓인 것 같습니다.
입원하여 주사를 맞으시고 좀 평안하여 지시기에
혼자 우두커니 있다가 답답하여 호수공원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가을로 접어드는 햇살은 맑고 바람도 청량해서 걷다가
정자 쪽 그늘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인생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7남매를 기르느라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이 지내시다
연세 드셔서도 강건하셨는데 갑자기 이렇게 허물어지다니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맥을 놓는 것에 당황이 됩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자녀들이 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깊이 이해하려고하니까 끝까지 잘 모시기는 하겠지만
맑은 정신의 어머니로 계실 때와
혼돈이 오기 시작하는 어머니를 모시는 방법은 달라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어머니를 대해야 하는지 공부해 봐야 하겠습니다.
“치매어머니와 시장터에서 느리게 살기”라는 부제가 붙은
“어머니 공부”라는 이동현씨가 지은 책을 사서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제 치매는 나의 가족에게도 닥친 일이 되었습니다.
순이
소리울
2012-09-07 at 01:12
마음이 편하진 못하겠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인 현상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누구나 치매라는 병에서 자우롭진 못하니까요.
지금 저도 더러더러 치매인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더러 합니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셔야 편하게 모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푸나무
2012-09-07 at 01:23
마음깊으신 분들이니 잘 대처 하시겠지요.
그래도 힘은 드시겠네요…..
데레사
2012-09-07 at 03:48
순이님.
눈물이 핑 돕니다. 머지않은 장래의 내모습을 보는것 같아서요.
약물치료를 하면 진행이 더디게 된다고 하던데요.
힘 내세요.
malibu
2012-09-07 at 19:48
순이님,
얼마나 큰 충격이실까 짐작이 되요.
저도 90이 넘으신 친정어머니가 곁에 계셔서 순이님의 마음의 고통이 더 가까이 느껴지네요.
그럼에도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어머님 주위의 자녀분들께서 어머님의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거나, 얼굴에 수심의 빛을 띄우시면 누구보다도 먼저 어머님께서 그걸 감지하시고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지요.
힘드시겠지만 소리울님 말씀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지 모르는 자연적인 현상이라 생각하시고 인정하시다보면 좀 더 편하게 모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요.
치매를 앓으시는 분들의 상태는 간호하시는 분들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뭔가 긴장이 느껴지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어머님의 치매로 비롯된 상황이나 행동들에 가슴이 무너지는 경우가 생긴다 해도, 약간은 코믹하게 받아들이시고, 어머님께도 그저 예삿일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시면서 약물치료를 병행하시면 더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호전되시는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의 어머님도 얼마전 심장주위에 물이 차올라 이주간이나 병원에 입원해 계셨어요.
감사하게도 지금은 입원 전 보다도 더 건강해지셔서 감사하지만, 번갈아 어머님의 병상을 지키느라 애를 썼지요.
인생살이가 참 쉽지 않아요. 그쵸?
말그미
2012-09-09 at 09:36
마음 착잡합니다.
인생여정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의지할 여러 형제들이 있어 그래도 다행입니다.
힘내십시오, 순이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