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문화적이지도 야만적이지도 않아야 (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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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간 전쟁 중인 두 나라, 순과 조. 순나라 황녀 하문예아는
화친이라는 미명하에 조나라의 예친왕 아수청라사륜과 혼인하게 됩니다.
하루하루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살아야만 하는 치욕스러운 적과의 혼인.
그런 예아에게 예친왕 사륜은 뜻밖의 손을 내밀어 줍니다.
그를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 예아의 죄책감도 커져만 가는데….
작가는 반란과 전쟁, 정치적 세력 다툼을 굵고 힘찬 문체로 그려내며
전장의 거친 갈등을 표현하고,
예아와 사륜의 위태로운 감정은 섬세하고 부드럽게 묘사하며 다채로운 분위기와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돋보인다고 하는
소개 글을 읽고 암향이라는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어떤 느낌일까?

책을 받아들면 대게 작가가 누군가를 보게 되는데
작가 이름은 비연이라고 되어있는데 전혀 알아 볼 수 없고
짐작도 가지 않는 짧은 소개가 책날개 안에 있었습니다.
몇 년 생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본명이 뭔지
그런 가장 기본적인 것도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대게는 출신 도나 출신학교 생년 정도는 밝히고 넘어가는데
이렇게 불친절한 작가 소개는 처음 봤습니다.
그런 게 뭐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책을 받아들면
우선 작가의 성향을 대략 파악하고 읽게 되지 않나요?
지은이를 소개하는 난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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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비연 (飛蓮)
11월 10일생으로 적혀있습니다.
비연이라는 작가의 생일을 알아서 뭐하겠습니까?
적어도 생년을 알아야 그가 신세대 작가인지 아니면
세상을 관조하는 나이가 있는 분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이 정도는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데
마비노기와 입스타를 즐긴답니다.
마비노기와 입스타가 뭔지 아시는 분 계세요?

입스타를 검색해 보니
"스타크래프트"라는 PC게임을 실력이 아닌, 입, 또는 글로써
고수인 척하는 행동."을 말한다고 하는 군요.
미비노기는 뭘까요?
그것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인터넷게임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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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국지나 수호지 초한지 같은 것을 읽고 자란세대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약간의 허풍이 들어간 책들은 머리가 아프고 복잡할 때
술술 읽히는 맛에 선택하곤 합니다.
암향도 손에 잡자 그냥 내처 읽게 되더군요.
숙적인 조와 순, 두 나라의 친왕과 황녀, 그들의 운명적 만남과 전쟁이
암향의 줄거리입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의 행동양식에 따라 백성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데
정치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열한 것 같습니다.
배경이 되는 순의 황제는 시와 음악 그리고 목공을 즐겼습니다.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로마를 불태운 네로황제와 비슷한 분이
고대 중국에도 있었더군요.
환타지 소설이라 역사속의 작은 팩트 하나로 여러 가지 정황은 지어낸 것이
확실하지만 정치의 깊숙한 면은 요즘의 정치판을 보고 쓴 듯 했습니다.

신목이라고 해서 나무가 왕궁과 왕궁사람들을 지켜준다고 착각을 한 사람들이
나무 하나를 궁궐로 옮겨오는 과정을 설명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 나무주변에 있는 나무는 죄다 베어낸 뒤에 땅을 다듬어서 이동을 하는데
만일 나무를 옮기는데 인가가 방해된다면 인가도 허물고 길이 좁다면 길을 넓히고
물을 건너야 한다면 다리도 만들어야 합니다.
수백 수천 명이 나무하나에 달라붙어야 하는 비효울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왕 한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그런다니 ….
기묘한 나무나 바위를 궁에 들여오기 위해서는 요즘처럼 장비가 발달한 시대에도
쉽지 않은데 사람의 손에만 의지해서 이뤄지는 작업에는 많은 인명피해를 내고도

나무나 돌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그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나무나 바위만도 못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억울했겠습니까?
억지로 시상을 떠올려 글을 지으면 그걸 옆에 있는 내시나
간신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까
제왕은 백성의 고달픔은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멍청한 일에
백성의 세금을 쏟아 붙고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문화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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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나라에서 야만족이라고 헐뜯는 조나라에서는 나무에 무슨 효험이 있어서 나라를
지키느냐고 나무는 나무일 따름이라고, 나라는 나무의 영험함 덕에 지켜지는 게 아니라
백성들에게서 가혹한 세금만 거두지 않으면 지켜지는 법이라고 낮은 세금과
공정한 상벌제도 이 두 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부강한 나라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금의 시대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보여 집니다.
권력주변의 세력들의 부정부패가 나라를 좀먹는 것을 자주 봐오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여인과 시와 음악 그리고 목공예를 즐긴 황제는
동족의 반란에 목숨을 잃고 일족이 죽게 되지만
야만족이고 전쟁에서는 흡사 피에 굶주린 야차처럼 굴던 사륜은
적국의 황녀와 정략결혼을 했지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은 재미있고 가볍게 읽혀졌습니다.

다만 흠이라면 제왕 일륜이 형님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였다는
사륜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싱겁게 소설이 마무리 됩니다.
고대소설뿐 아니라 현대에서도 출생의 비밀은 너무 쉽게 소설을 풀어가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출생의 비밀이 원초적이긴 하지만 혈육의 정을 숨겨진 출생의 비밀로
시작하는 것은 조금 진부해 보입니다.
그래도 신명이니 천명이니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얽히게 해서 풀어가는
글 솜씨는 지루하지 않아서 읽기 좋았습니다.
사륜이 야만인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상하고 섬세한 성품을 매력 있게 그렸고
조국을 생각해야하는데 사랑 앞에 무릎 꿇고 마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야기는
많이 보고 익숙한 구도이지만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작가가 써서 그런지
만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중국 송나라 금나라 이야기가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해도
사랑과 순리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천명인 것을 발견합니다.

거짓과 협박과 협잡이 난무하는 요즘 정치판의정치하는 분들이 읽어도

교훈이 되고 좋을 것 같은 내용입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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