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는 나의 보물일까? 빌려온 보물일까?

회사에서 금요일 월차를 받은 사위는 금 토 일을 몰아서
식구들을 대리고 2박 3일 동안 본가에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우리 식구들이 “이쉐프”라고 부를 정도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위는
회사를 안가는 아침이라고 느긋하고 푸근하게 아침식사를 준비를 합니다.
전날 퇴근하면서 슈퍼에 들려 재료를 준비해 왔다고 하면서 김밥을 쌉니다.
김밥재료도 간단한 것이 아니라 속만 세어보니 9가지입니다.
계란도 부치고 햄을 볶고 단무지 우엉 맛살 시금치 참치 치즈 깻잎….
잠에서 깬 아기에게 젖을 잔뜩 먹여서 한이를 안방에 대려다 놓고
두 내외가 주방에서 도란도란 음식을 만듭니다.
나는 한이랑 노는 일을 맡았습니다.
한이는 옹알이를 시작해서 이야기 하는 맛을 아는 듯이 옹알거립니다.
으~응 그랬어? 그랬구나! 나도 의미 없는 옹알이에 대꾸를 해 줍니다.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는 내용은 없어도 눈을 맞추며 길게 이어집니다.

김밥과 함께 먹을 감자 그라탕도 있습니다.
감자를 얇게 다져서 우유와 치즈를 넣어 죽같이 만들었는데
지난밤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새로운 음식이라나요?
나에겐 조금 느끼한 맛이지만 아기 젖을 먹이는 딸에게는
아주 맛있고 영양 만점인 추천할 만 한 음식입니다.
칼도마 소리가 통통 울리더니 사위가 감자를 써는 소리였습니다.
사위는 음식점에 가서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주인에게 레시피를 물어서
집에 와서 솜씨를 내 보곤 하는데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저거다 싶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식구들에게 해 먹이곤 합니다.
남자도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음식에 맛 뿐 아니라 멋까지도
낼 줄 아는 섬세함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릅니다.
특히 사위가 음식 솜씨가 좋고 부엌일에 취미가 있으니까
주부 일에 서툰 장모의 모든 흉이 덮이고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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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방에서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사위를 보고
"이쉐프" 라고 부르면 사위가 즐거워합니다.
부주방장 격인 우리 딸 장쉐프는 나를 닮아 주방 일에 취미도 관심도 없었는데
남편이 하는 것을 따라 배우더니 주방 일을 즐거워합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도 모르면 나에게 묻는 게 아니라 남편에게 전화를 겁니다.
"된장찌개를 했는데 왜 당신이 한 맛이 안 나지? 뭘 더 넣어야 할까? "
친정엄마를 옆에 놔두고 그러는 것이 경우에 닫는지는 모르지만 ^^
모르는 것은 실력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게 정석이겠지요.
그러면 사위는 "고추장을 조금만 넣어서 한 번 더 끓여서 맛을 봐"
이런 식으로 알려줍니다.
정말 2% 정도 부족하던 된장찌개 맛이 고추장을 조금 넣는 것으로
맛이 달라지고 먹을 만 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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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는 아침부터 김밥을 싸고 감자로 만든 요리를 선보이더니
부지런히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를 목욕 시킵니다.
어제 저녁에 목욕을 시켰기 때문에 아침엔 목욕할 필요가 없는데도
다시 머리를 감기고 씻긴 다음에 아기로션을 발라서 예쁜 옷을 갈아입힙니다.
아기 옷을 입힐 때는 내가 거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이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본가 나들이를 가는 길인데
내가 긴장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한이와 한집에 있어 매일 보고 어르고 기저귀도 갈아주곤 하지만
본가에서는 친손자라도 자주 못보고 이렇게 사위가 월차라도 받고
시간을 내야 손자를 안아볼 수 있는 귀한 행차가 되었습니다.
사돈댁에서 손자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게 되니
아기가 본가에 가는 일은 큰 행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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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친가에 보내는 준비를 하면서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가면서, 업힌 아이 갑갑해한다 빨리 걸으라 한다."
라는 오래전에 들은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내 친구의 시어머니께서 친손자보다 외손자를 더 귀애 하셔서 친구가 몹시 속상해
하니까 다른 친구가 그 말끝에 들려준 속담이었습니다.
한집에 사는 친손자가 귀하긴 하지만 외손자는 아무래도 좀 어려워서
그러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대게는 친손자를 외손자보다 더 귀애하는 것이 당연하고 외손자를
더 귀애하는 것은 푼수 없는 행동으로 보는 속담이겠지요.
나는 딸만 둘이라서 친손자는 없고 외손자만 둘이라 비교할 대상은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 외손자를 업고 가는 할머니의 심정이 오늘에서야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친손자는 이래도 저래도 탈이 없지만 외손자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남의 귀한 보물을 빌려왔다가 돌려주는 심정으로
아기의 머리를 빗기고 옷을 골라 입혔습니다.
친가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더 예쁘게 보이라고 그러는 것이지요.
한이 할아버지 할머니야 자주 못 보는 손자가 예쁘겠지만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외할머니의 심정도 묘한 것입니다.
한이네 세 식구가 빠져나간 집이 썰렁하기만 합니다.
한이네 친가에서는 일본 딸네 집에 가셨던 한이 증조할머니도 오셔서
그 댁은 오늘 잔치 분위기겠네요.

순이

4 Comments

  1. 쉬리

    2012-09-22 at 00:27

    저도 딸만 둘…외손주만 있습니다.
    한번은 애들이 필리핀에 왔는데
    손주가 아파서 열이 안내립니다.
    한밤중 응급실을 가도 열이 안내려
    일정을 바꿔 급히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신종 플루가 유행하던 시점였는데

    저는 아주 식은 땀이 나는게…사돈 댁 어른들께 죄송스러워지더군요.
    손주는 수영장에서 하두 놀아서 단순 몸살였습니다.   

  2. Lisa♡

    2012-09-22 at 03:54

    김밥이랑 사진 좀 올려주지~~~~   

  3. 말그미

    2012-09-22 at 15:50

    외손자는 빌려온 보물이 아니던데요, 순이 님?

    외손자가 나자 마자 한 달을 같이 있었는데도
    정이 폭 들어 내 보물 같았습니다.ㅎㅎㅎ

    한이총각 귀엽습니다.
    다 이쁘지만 특히 눈이요…^^
       

  4. 물위애 달가듯

    2012-09-23 at 01:31

    제집 이야기를 대신 써 주셨습니다
    누구나 이 년배되면 겪는 일 이지요
    행복 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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