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에 아들을 안고 듣는 웨딩마치

휴일이라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딸의 방에서 경쾌한 웨딩마치 소리가 들려옵니다.
휴일 날 집안에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은근 행복한데 더하여
웨딩마치를 연주하니 보던 책을 덮어놓고 딸아이 방으로 갔습니다.
딸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고 사위는 아기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아
아내의 연주를 듣고 있습니다.
사위 표정도 품에 안긴 손자의 표정도 제법 진지합니다.
느닷없는 웨딩마치는 뭐고 침대에 앉은 두 남자의 진지함은 또 뭐지?
내가 들어가자 딸은 눈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며 미소를 짓더니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고 연주를 계속합니다.
사위는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한손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톡톡 칩니다.
나도 관객이 되어 사위 옆에 앉았더니
바그너의 오페라 로앵그린에 나오는 웨딩마치를 마치자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을 연주하고
김동규가 불러서 유명해진 "10 월의 어느 날"까지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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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각에 다음달에 사위의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다고 하더니
그때 피아노 연주를 맡아서 미리 연습을 하나보다 생각했더니
작년 딸의 결혼식 때 순서지를 옆에 놓고 그날에 불렀던 축가까지
한곡 한곡연주를 다시해 보면서 그 분위기를 추억하나 봅니다.
그때서야 오늘이 한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작년 10월 3일 결혼식을 하고 허니문베이비가 생겨서 낳은 아이가
벌써 80여일이 되어 약 20일 후에는 한이 백일이 됩니다.
세 식구가 웨딩마치를 울리면서 결혼기념일 자축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사위나 피아노 연주를 하는 딸이나 모두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이지만 신혼도 없이 임신과 출산을 겪고 육아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조금은 서운할 듯하여
"내가 아기 봐 줄 테니 둘이 나가서 저녁이라도 먹고 오지?"
라고 했더니 젊은 내외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엄마 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보니 낭비하면 안 되겠어!
나가서 외식할 돈이면 슈퍼에서 장을 봐다가 집에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유익인데 괜히 많은 비용을 쓰면서 멋 부릴 필요가 없더라고.

아이도 고생이고…."
이러기에 내가 하하 하고 크게 웃었습니다.
딸은 평소에도 낭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쉬움 없이 큰 아이라
결혼 후 첫 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을 집에서 피아노 연주로
자축하고 넘긴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결혼 전에는 생일이니 만난 지 일 년 되는 날이니 프러포즈 한 날이니

밸런타인데이니 하면서 무슨 기념할 날도 많고
꽃바구니도 어지간히 받아오고 요란스러운 청춘이었다가
결혼 한지 일 년 만에 이렇게 생활인이 되는 것은 너무 낭만이 없어 보였습니다.
"엄마가 저녁 사줄까?" 물었더니

외식은 하지 않기로 했다며 슈퍼에 장보러 가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서
난 유모차에 손자 태우고 밀고 다니는 것이 좋아서 얼른 따라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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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일주년을 맞은 젊은 부부가
코스트코에 가서 가장 먼저 집어든 것은 아기 기저귀였습니다.
포장 단위가 큰 대신에 가격이 엄청 싸다고 하면서
140개가 들어있는 종이 기저귀를 두 박스나 사고

아기 옷을 정리할 콘솔을 사고

아기가 잘 때 입고 자는 침낭 비슷하게 생긴 옷도 고릅니다.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쇼핑이 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조그만 치즈 케이크와 과일 등을 더 골라서 집으로 오더니
사위와 딸이 부엌에 들어가 오손 도손 저녁밥을 짓습니다.
사위는 메인 요리사로 이쉐프이고 딸은 보조 주방장 장쉐프가 되어
뚝딱 거리고 만들더니 한상 그득히 차려옵니다.
"엄마 나가서 외식 한 끼 할 돈이면 아기 기저귀를 한 달 치를 사고도
이런 상차림을 할 수 있는데 왜 돈을 낭비하겠어?"이럽니다.
낭비하지 말고 살라고 엄마가 되어 자녀에게 강조를 하면
그건 분명 잔소리가 되거나 어쩌면 모녀의 관계도 나빠질 소지가 있는 일인데
다행히 우리 딸이 알뜰한 남편을 만나서 저절로 철이 들어가니 나로서도

잔소리 할 일 없고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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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결혼기념일이 궁상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치즈케이크를 자르며 결혼 일주년을 자축하고
과일도 이쉐프가 모양을 내어 잘라와 후식으로 먹으면서
요즘 아이들은 참 현명하게 사는구나 싶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예쁘게 살아가는 딸의 가족을 지켜보는 친정엄마 마음이 흐뭇합니다.

딸의 결혼기념일에 낄 일은 아니지만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기에 웨딩마치를 다시 청했더니

웨딩마치뿐 아니라 10월의 어느날, 당신은 나의 태양까지

메들리로 몇곡 엮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웨딩마치는 아름다운 소리로 온 집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순이

2 Comments

  1. 안영일

    2012-10-05 at 21:37

    쪼 잔한 친정엄마분 입니다, 제집의 경우 어찌 어찌 딸둘이었는데 지금 하나 그

    놈이 같이 살지요 딸의 결혼식 외식비 ?최소한 200$은 주면서 나가서 사먹어라 –

    손주 생일 그리고 대소사에 참여를 못하면 100$은 내놓고서 사주거라 ?그 이외에도

    손주들 돍 (첫돌의 경우 ) 할배가 2000=3000$내놓고서 손님수대로 치뤄라 -해야지 /

    젊은이들의 아기 기저귀 값 그리고 분유값 (한통이 20-30 $로 )한두통값을 생각했는

    데 분유 한박스 200-300$함니다 물론 할배 할매가 직접 사야할 품몫으로 자식들

    도 (사위) 거절은 하지만 결국 쓰더군요, 그렇게 서너번 하면 손주크고 그다음 가죽

    신발 (할매할배가 사주는 품목으로 모두가 고가임니다) 옷 , CD 참으로 많고 하다못해

    서 장보러 갈때에도 손주들 말을 안해도 할배 할매의 사랑을 알고있읍니다, 저의

    생각 몇푼의돈같고서 집 부동산까지입니다, 자식들에게 얇삽하게 보이지안고 다

    주어라 하는 제졍우는 그런생각으로 **피아노 소리 일제 라하더군요, 큰손주 , 직은손

    주 딸녀석 그리고 식구, 사위의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 다르더군요, 그리고

    이외에 야구 수영 ,갗가지 주간 어린이용 월간지 참으로 손주들에게 들어가는돈 천

    문학적 입니다 ,시대에 고마운것은 손주둘의 사림학교 수업료 자체가 제가 이민을올

    때의 대학 학비와 같은 지출 자식 이지만 그저 대견하고 더 신기한것 집에서 아이

    들 학교보내는 에미가 딸이라 ? 야 너 이상향속의삶 너무 호사하는것 같다하면

    지도 항상 염두에 익히며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산다함니다, 젊은이들 그리고 늙은이

    들 지 자리를 찿아만드는것이 참으로 익숙치안은 우리들입니다,
       

  2. 마이란

    2012-10-06 at 07:31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부부예요. ^^
    가끔 들려주시는 얘기 읽을때마다 느끼기도 했지만
    첫번째 결혼 기념일 보내는 방식과 그 마음이 참 아름다워서
    쪼꼬만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며 미소짓게 되네요.
    어쩜 이리 현명하고 예쁘대요? 하면서요. ㅎㅎ

    한껏 축복합니다~~~ 두 사람, 그리고 초롱한 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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