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보다 시어머니가 더 정다운 세대

우리 나이 또래의 여인들은 거의 시집살이를 한 사람들입니다.
더 오래전 어머니들의 시집살이에 비하면 그 또한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가난을 숙명처럼 달고 태어난 사람들이라 시집살이에 더하여
시동생 시누이 공부시키고 밥해 먹이고
시집을 중흥하게 하는 사명까지 띄고 고생한 친구도 많습니다.
어렵고 조심스러운 시집살이를 하다가
친정 부모님 생신이나 행사가 있어서 친정에 가면 친정어머니께서
딸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하고 없는 살림에도 바리바리
싸주곤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뭘 오밀조밀 싸가지고 오면 “친정 갔다 왔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나마 친정이 너무 가난하고 조롱조롱 어린 동생들이 많아서
싸 온 적도 없지만 ….
대게의 친구들은 친정어머니의 사랑을 그런 것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강원도 분들이라 줄게 없으면 산나물 뜯어다 말린 것이라도 싸주시고
김치나 고추장 등도 퍼 담아 주셔서 먹으면서 친정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세월인데 요즘엔 그 풍속이 바뀌었는지
내가 아들이 없어서 며느리를 안 봐서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무심하고 그런 방향으로 무지해서 그런지
너무 착한 사부인을 두어서 그런지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사부인께서 음식을 해 나르십니다.
본인은 음식 하는 게 취미이고 누가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아들 며느리 먹이는 일인데 얼마나 좋으냐고 하시지만
며느리 친정에 반찬 해 나르는 분이 어디 흔하기는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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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김장을 마치셨다고 하면서 시댁을 다녀오는
한이네 식구 편에 저렇게 많은 것을 보내오셨습니다.
김장김치와 총각김치 멸치볶음 장조림 집에서 직접 쑤어 만든 도토리묵,
도토리묵 찍어 먹을 양념간장까지
그리고 주일아침 먹으라고 야채샐러드 재료에
제주에서 감귤농사를 지은분이 보내신 무공해 감귤까지!

차에 싣고 온 물건들을 내리려고 하니 한이가 있어서 사위 혼자 나르기에 벅차니까
나에게 먼저 한이를 안아다 주며 받아 달라고 하면서 장난으로
"어머니 친정나들이 하고 왔습니다."
나에게 시어머니께 인사하듯이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고 웃었습니다.
남들은 친정 다녀오면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다는데
자기는 시집을 다며 오면 저렇게 싸들고 오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딸이 자기 카카오 스토리에 "시집 나들이"를 소식으로 올린다고
사진을 찍기에 나도 덩달아 찍었습니다.
아침에 카카오스토리를 열어보니 이렇게 썼습니다.

남들은 친정나들이라고 하지만 난 시댁나들이!
갈 때 마다 맛있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김장을 하신다는 말씀도 없이 주중에 다 끝내 놓으시고
김치를 저렇게 싸 놓으셨다
심지어 주일 아침에 샐러드 먹고 교회가라고
샐러드까지 싸 주셨다, ㅠㅠ

뭐하나 변변히 해 드리지도 못하는 며느리인데
천사 같은 우리 어머니 아버님은 늘 주시려고 하신다.


사랑 많은 시댁 주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집 나들이 보따리를 풀러놓고 딸과 주고받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 얘 작은 도치야! 난 며느리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며느리가 시집에 오면 이렇게 해서 보내야 할 터인데
게으른 시어머니 때문에 며느리가 얼마나 속이 터졌겠니?" 했더니
"엄마 그게 아니라 나 같은 며느리 맞으셨다면 엄마가 속이 터졌겠지
며느리 싸주시는 우리 시어머니가 착한 분이시고." 이럽니다.

작은 딸 시댁에서만 그러면 유난히 착한 시어머니를 만난
한이 엄마 복이려니 하겠지만 큰딸인 건이 엄마도 시어머니가
따로 사는 며느리 김장을 다 해주시고 며느리 친정에 보낸다고
더 정성을 들여서 담은 김치를 따로 담아 김치냉장고 보관중이라고
다음 주에 가지고 오겠다고 합니다.
며느리 친정이모 아픈데 회복기에 좋은 음식을 장만해서 보내시기도 하고
호박이나 고구마 브로콜리 버섯 밤 등 재료를 보내옵니다.

나에게 딸 만 둘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
이렇게 금방 세태가 변할 줄을 누구도 예측을 못했지만
나에게 며느리가 있다면 우리 사부인처럼 하지 못해서
며느리와 갈등을 했을 것 같습니다.

요즘엔 친정나들이가 아니라 시집나들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철없는 친정엄마 입니다.

순이

2 Comments

  1. Lisa♡

    2012-12-16 at 03:22

    복도 많으세요~~~

    부럽습니다.
    저는 저리 바리바리 싸주는 것은
    양쪽 다 전무한 상태여서 마냥 부럽기만해요.
    제가 아이들 결혼하면 저럴 거 같긴 해요.   

  2. 벤조

    2012-12-16 at 06:18

    잘 받는것도 예술입니다.
    저렇게 모든 사람 다 행복하게 해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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