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덕이가 지금 태어났다면 싸이보다 유명했을 듯

연말이라 모임이 잦은데 올해는 싸이의 말춤 영향으로
사람들이 모이면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말춤을 추는 것으로
흥을 돋우며 노는 모습을 몇 번 봤습니다.
우리 20개월짜리 손자에게도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춤을 추라고 하면
비슷하게 추어서 가족모임을 즐겁게 합니다.
모임에서 말춤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지인 중에 한명이 춤을 좋아해서
동료들에게 말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중3짜리 딸이 추는 춤을 아이페드 동영상으로 찍어가지고 와서 그걸 보면서
동료들에게 전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분은 춤추는 일이 그렇게 즐겁답니다.
진즉에 그 길로 나가지 못한 것을 한탄합니다.
그분에게 작가인 언니가 있다고 그 언니 이야기를 나에게 자주 했습니다.
나는 글에 대한 경외심이 있는 사람이라 글 쓰는 분을 존경하는데
그런 언니를 둔 분이 나와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명랑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마음이 들어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언니인 유시연씨의 신간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얻어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책을 사는 비용은 아끼지 않는 편이고 웬만하면 책을 사서 보는데
괜히 한 권 얻어서 읽고 리뷰를 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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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책날개에 저자의 이력이 나와 있어서 읽는데
이분이 강원도 정선 사람이라 뼝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뼝때는 낭떠러지 혹은 절벽이라는 강원도 평창사투리입니다.
내 어린 날 할머니나 어머니께서 쓰시던 단어이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뼝때라는 말이 고향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바우덕이라는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 묘사되는 풍경은 어릴 때 강원도에서 접했던 풍경이 펼쳐지고
그 느낌들이 되살아나면서 참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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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가 요즘에 태어났다면 이효리나 소녀시대 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 시대에는 여성이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많다고 쳐도
무대가 없었고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여동생 한명도 우리 형제들 중 유난히 끼가 많은 동생이 있어서
어머니 속을 썩이기도 했습니다.
막내여동생인데 지금도 우리는 그녀를 “춤바람 동생”이라고 부릅니다.
초등학교 때는 기계체조를 하더니 중고등학교 때는 식구들의 만류로 운동은 못하고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공부엔 관심이 없고 춤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친구들하고 춤추고 놀다 늦게 집에 오다가 어머니께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다시 춤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H대 무용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춤을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로 승화시켜 생각하지 못하고
춤=춤바람 이런 등식으로 생각하고 딴따라 같은 말로 비하해서 표현하는 우리가족입니다.
공부를 해서 선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홀로 춤을 춘다는 것은 장마 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식구들에게 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가운데 춤꾼의 길을 가느라 막내여동생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제부가 적극적인 지지를 해 주었고 시집식구들이 협조가 되어서 오늘이 있습니다.
그런 시댁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성공은(?) 없었을 겁니다.
“춤으로도 교수가 되는 구나”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집안에서 춤 선생이 되기까지
동생의 고생과 노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래도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니 그만큼이라도 운신의 폭이 생겼지
바우덕이가 살던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 넘치는 끼를 어떻게 발산하고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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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 동생이름은 최수지인데 가운데는 사진을 찍은 작가이름입니다.)

개명한 요즘시대에도 그런데 옛날에 사당패로 다니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걸인처럼 살면서 지낸 덕이의 삶이 얼마나 지난했을 지는 상상이 가는 일입니다.
유시연 작가는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어 예술혼을 발휘한 ‘바우덕이’의 이야기를
접한 순간 온몸에 전율이 스쳤다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규방 여인네들과는 다른,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작가로서의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인 바우덕이는 실존인물입니다.
1848년에 태어나 1870년에 돌아가셨다는 문헌을 작가가 찾아내어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그녀를 회자하는 이들을 만나고
변변치 않은 기록을 뒤져 가며 그 행적을 쫓은 결과물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덕이의 인생은 한마디로 세상과의 온몸으로 부딪치고
헤쳐나간 여인의 삶이라고 정의한 작가의 말처럼
부모에게서 버려져 광대가 된 태생적 한계,
수십 명에 이르는 남사당패를 책임져야 했던 부박한 현실,
비천한 삶 속에서도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했던 한 여성으로 독자와 만납니다.
여기서 작가는 평생 유랑의 세월을 보낸 덕이와 한평생 밀폐된 규방에 갇혀 살던
안방 부인들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를,
또 탐관오리의 등쌀에 산 속에 은거한 백성들과 왕이 되고 싶었던 왕초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서는 사회 제약에 묶인 민초들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개인적으로 「바우덕이전」을 통해 시대와 제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예술영역을 넘나들며 삶에 지친 백성들을 위로한
바우덕이의 인생을 안방극장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사극에서는 선덕여왕 같은 화려한 궁중인물 혹은
궁궐이나 대가 댁에 얽힌 사극이 대부분입니다.
요즘엔 대부분 어린이들이 가수나 탤런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
오래전 어릿광대의 삶이 어떠했는지 조명해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블로그에 방송 피디분이 서너 분 오시는 것으로 압니다.
조금 별난 이웃 이야기를 쓰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메일을 보내옵니다.
몇 번 거절한 적이 있는데 이런 바우덕이 같은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냐 구요?
그냥 감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

작가 유시연은 2003년 계간 동서문학의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2008),
「오후 4시의 기억」(2011),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2010)을 펴냈습니다.
내년에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청에 끌려간 공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순이

2 Comments

  1. 무무

    2012-12-30 at 00:45

    신분은 천했으나 삶은 오히려 자유롭고 풍성했다!! ㅎㅎ
    바우덕이 기생 이런분들이 그런 삶을 살았죠
    규방에 갇혀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지만 궁핍한 것ㅡ 선택이 쉽진 않겠죠? ㅎㅎ   

  2. 신실한 마음

    2012-12-30 at 05:57

    현재의 실력에서 만족치 아니하고 끝임없이 실력을 연마하여 15세 때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의 꼭두쇠(단장)에 오른여성,바우덕이(본명 김암덕)의 성공신화.
    경기도 안성의 소작농의 딸로 때어나서 5세에 남사당패에 입문하여 가난과 배고픔과 남성들의 멸시 속에서도 조선 최고 남사당패의 일등 재주의여성이되고 이에 당시 실력자인대원군은 당상관 정3품의 벼슬까지 하사 하였습니다.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될 수있다고 생각 됩니다 만은 결코 싸이와의 비교하기에는 시대적인 여건의 차이가 너무 많아 비교가 불가 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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