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라고 하면 공기를 흔드는 (가르는) 바람을 생각하기 전에
배우자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지는 불륜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도 바람흔적 미술관 하니까 너무 근사하지 않습니까?
지도를 펴 놓고 승용차를 랜트하여 어느 곳을 가볼까 고르는데
바람흔적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사로잡힌 곳이 바람흔적 미술관입니다.
바람이 흔적을 남기면 상처인데 미술관에서는 어떻게
바람의 흔적을 전시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바람흔적 미술관은 차에서 내리면
저수지를 향해 언덕을 내려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어느 험한 등산로인 듯 돌계단도 반듯하게 되어있지 않고 엉성하여
가파른 길에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발밑만 보며 내려가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바람개비가 보입니다.
옆에서 아~ 하고 탄성이 터집니다.
그녀는 바람흔적 미술관의 느낌을 이미 잡아낸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무척 영세한 미술관인가 보다, 계단을 안전하게 공사할 여력이 없어서
돌로 대강해 두었나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워낙 고요한 날씨라 녹슨 바람개비는 그냥 놀고 있습니다.
설치된 바람개비를 지나 미술관 안쪽으로 들어가자
금방 전시를 마치고 걷어간 자리가 보입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젊은 남자가 있는 유리로 된 조그만 공간이 나오고
밖에는 푸른 저수지를 배경으로 바람개비가 서 있습니다.
바람 없이는 혼자서 돌지 못하는 바람개비는
한 개가 도는 듯 마는 듯 게으르게 서있습니다.
남해 바람흔적 미술관은 설치예술가 최영호님이 설립한 곳이랍니다.
내산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여
허허로움과 여백의미를 최대한 살린 장소이고
예술이 자연이 되고 자연이 예술이 되는 곳에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미술관을 내려오는 불친절한 돌계단을 어렵게 내려오면서
개인마다 다른 느낌이 들 것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광경에
또 다른 느낌을 각자 느끼라고 일부러 그런 입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출입구는 따로 있었습니다.)
미술관 터가 몇 평이냐?
땅값은 평당 얼마나 가느냐?
수익은 나느냐?
왜 이렇게 외딴 곳에 미술관을 만들었느냐?
이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젊은 남자는 말했으나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맘은 원래 없었지만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가파른 길의 불편함 조차도 의도된 공간인 것을
간파하지 못했고 바람 흔적을 공기를 가르는 바람이기 전에
우리가 속된 말로 이르는 바람을 먼저 떠올린 것에 혼자 민망했습니다.
나의 소양이라니…..
바람개비와 바람을 주제로 하여 만들어진 미술관에서
나는 아침을 함께 먹었던 어떤 여인에게 불어 닥친 바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노라 커피숍에 주저앉아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술은 각자 자기가 보이는 만큼 보고 누리면 된다지만
나의 안목이라는 것이 아니 감정 상태가 우울하니
바람에 연관된 또 다른 상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과연 바람은 흔적을 남길까?
흔적을 남기면 그건 상처가 아닐까?
봄에 훈풍이 지나가면 꽃이 피지만
꽃샘추위를 몰고 오는 바람은 독을 깨기도 하는데….
바람은 흔적 없이 지나가면 바람이지만
흔적을 남겨 큰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아침 아라클럽에서 만난 여인은 남편의 바람을 알아버려
크게 상심하고 죽을 것 같은 심정을 하고 와 있었습니다.
평생을 남편과 자녀를 위해 헌신 봉사했는데 이런 배신감을
안겨준 남편을 바라보는 일이 너무 괴로워서 떠나온 길입니다.
남편은 바람을 몰래(?) 피웠어야 하는데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서
어떤 사단을 만들었나봅니다.
아내에게 들키지만 않았으면 지나가는 바람으로 흔적이 없었을 것인데
미숙해서 그랬는지 아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타박하고
아내가 남편을 덤덤하게 대하는 것도 투정을 하다가 꼬리가 잡히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부부간에 바람은 태풍이 되어 가정의 평화를 깨고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바람은 흔적이 있을까?
바람의 흔적이 잡힐까?
무엇엔가 걸리면 그게 바람일까?
흔적을 남긴다면 그건 상처일까?
상처는 늘 쓰리고 아프기만 할까?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처절하지만 않다면
바람은 늘 불어야 생기가 돌지 않을까?
남편의 바람기가 들키는 바람에 큰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지긴 했지만
그 여인은 삶은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큼 고통스럽지만
극복을 잘 하고 나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랑은 사랑하기로 늘 결심하는 것이라는 군요.
봄바람을 맞고 돌아온 날의 소회입니다.
순이
소리울
2013-03-21 at 01:03
바람의 흔적… 무척 낭만적일 것 같은데 그게 아닌 건 확실합니다.
위집에 작년에 분 큰 바람ㅇ 때문에 비닐하우스를 두번이나 보수했고 짐의 칸막이를 다시 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지요.
바람이 흔적을 남기고 가는 일, 그 여인은 이젠 결심을 날마다 하지 않으면 안될 깊은 병이 걸렸고 그래도 살아야하나 죽어야 하나를 한 세월이 흐르도록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 바람인게야. 사는 일도 죽는 일도 다 흘러가는 바람인게야.
그러면서 삽니다.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