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거제와 통영 그리고 장사도와 외도를 도는 여정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4시간도 채 안 걸려 부산에 도착하고
20리도 더 되는 긴 거가대교를 건너서 거제도까지 6시간이 소요 됐습니다.
서울에서 우리나라 국토의 거의 최남단에 이르기까지 반나절이면 됩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오후 시간이 길게 남을 정도로 교통이 발달 되었습니다.
외도를 오후에 돌아보고 다음날 장사도를 돌아봤는데
섬전체가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하면 산책로를 주~욱 따라 가기만 하면 되어있고
그 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선착장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인간이 가꾸어 낸 거대한 인공 정원입니다.
해무에 씻긴 5월의 나뭇잎은 먼지 하나 없이 막 세수를 마친 아기 얼굴 같고
꽃은 피어나고 바닷바람은 싱그럽고 바닷물은 잔잔했습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인 곳은 아니고 사람의 손길로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번호가 매겨져 있는 탐방로를 따라 갑니다.
무지개다리, 달팽이 전망대, 온실, 동백터널길 후박나무 쉼터 등
번호마다 탐방로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휴일에 몰린 많은 관광객을 따라 눈으로 보면서 걷기만 하면 됩니다.
정상 즈음에서 친구들이랑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고
통영의 유명한 꿀빵도 사먹으면서 한가로이 거대한 정원을 다녔습니다,
더운 날이라 땀을 흘리며 선착장을 향해 내려오는데 섬집아기 노래가 들립니다.
약간 경사진 도로로 내려서니 섬아기 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음악은 무한 반복되고 있습니다.
땀 도 식힐 겸 아기가 자고 있는 섬 집 툇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손바닥만 한 뜰 앞엔 바로 낭떠러지고, 낭떠러지 사이로 바닷물이 보입니다.
무한 반복되는 섬집아기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를 떠 올렸습니다.
섬집아기는 듣는 장소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섬 아기집 마루에 앉아서 듣는 노래는 많이 애잔했습니다.
아기가 딱히 몇 개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젖먹이 아기가 아닐까?
팔 베고 잠 이들 정도면 2~3살은 되었을까?
엄마가 굴을 따러 가는 시간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일겁니다.
섬 그늘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섬의 그늘진 곳으로 굴을 따러 가나 봅니다.
엄마는 아기를 재워놓고 급히 굴을 따오려고 갔지만 갈매기 울음소리가
아기 울음소리로 들릴 정도로 마음이 온통 아기에게 쏠려있습니다.
그러나 순한 아기는 혼자 남아서 울지도 않고 엄마를 기다랍니다.
돌아오는 엄마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여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다
아기는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를 재워놓고 굴을 따러간 엄마의 맘은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노래 가사에서 굴을 따러 가는 걸로 봐서는 자갈이나 모래로 된 길을 지나
바닷가로 나가는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섬아기집”은 언덕위에 있었습니다.
엄마가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하고 급히 달려올 모랫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무 사이로 파란 바다가 보이기는 했지만요.
아기의 아빠는 어디로 갔을까요?
해답은 섬아기집 뒤뜰에 있었습니다.
금이 간 절구와 낡은 지게 그리고 됫병 소주 빈병입니다.
요즘에도 금복주라는 술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금복주 그림이 그려진 소주병과 바구니에 모여 있는 소주병이
이집 가장은 술꾼일거란 유추가 가능합니다.
특히 술에 대한 상처가 있는 분들은 아기가 왜 혼자 남아 자야하는지
엄마가 아기를 놔두고 썰물 때를 맞추어 굴을 따러 가야하는지
거기엔 아기의 아빠가 술꾼이라는 배경을 읽히게 했습니다.
낡은 어망이나 고기 잡는 도구가 있어서 아빠는 고기 잡으러
바다로 갔을 거란 생각이 들게 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금복주가 어쩌면 지나간 시대를 배경으로 설명하려고 했다고 보여 지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 같습니다.
섬집아기 노래를 5~6번 반복해 들을 정도의 시간동안 머물면서 보니
이런 테마의 관광지가 신선했습니다.
그냥 잘 꾸며진 곳을 보기만 하는 것 보다
이야기가 있는 장소로 만든 곳이 의미 있습니다.
다만 노랫말에 아기가 살고 있는 집은 오막살이가 연상되었는데
절벽위에 반듯하게 세워진 섬아기집은 어울리지는 않았고
노래가사에 나오는 모랫길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낭떠러지를 엄마가 어떻게 올라올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비슷비슷한 예쁜 장소보다
아기가 홀로 잠들었을 방안이 궁금하고
엄마가 올 때까지 아기를 봐 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정서적인 감동이 있었습니다.
외도와 장사도를 돌아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장사도에 있는 섬아기집입니다.
순이
도리모친
2013-06-02 at 14:16
주안이가 더 어렸을 적엔
자주 이 노래를 불러주며
잠을 재우곤 했습니다.
가끔은 주안이가 제게 불러주기도 했구요.
주안이는 이 노래를 불러주면
종종 흐느껴 울곤 했습니다.
다른 남자아이들에 비해
아마 감성이 좀 풍부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 노래는 많은 엄마와 아기들이 그러했듯이
주안이와 제게도 추억의 자장가입니다.^^
mutter
2013-06-03 at 20:52
그렇군요.
저 같으면 휘리릭~ 지나쳤을 디테일한 부분들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글이 저는 좋습니다.
소리울
2013-06-03 at 22:41
아빠는 파도가 잡아먹고 엄마가 굴을 따서 생계를 이어갈 겁니다.
아빠가 어망으로 바다에 일을 나가고 나가지 힘들 때 금복주 한 잔씩을 마셨을 겁니다.
아가가 혼자 남아 있고 엄마는 아가에게 마음이 쏠리는 건 아빠도 없이 혼자 집을 보는 아가가 염려스럽기 대문일 겁니다.
섬마을에는 그렇게 파도가 아빠를 삼킨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남해 군수님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애잔한 이야기… 멋진 여행을 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