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트라우마

여행 중에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다가
냉수가 안 나와서 봉변 당한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함께 여행했던 어떤 할머니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같은 절에 다니는 도반들과 함께 스리랑카 여행을 갔을 때랍니다.
도반은 "함께 도를 닦는 벗"으로 절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교회에서 집사나 권사와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듯합니다.
종교가 불교인 친구들이 도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자주 듣습니다.
스리랑카는 불교의 시발점이 된 곳과 부처님의 흔적이 많이 있어서
기독교인의 성지순례처럼 불교 도반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같은 절에 다니고 있다고 해도 친구들처럼 익숙한 사이가 아니면
그냥 인사나 주고받고 얼굴만 익힌 관계라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행 중에 파트너가 되어 한 방을 사용하게 되었나 봅니다.
두 분이 한방에 자고 먼저 준비된 분이 차로 나가고
70대 할머니 한분은 버스를 타기 전 화장실을 들려가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마치고 나오려고 하자 화장실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게는 화장실 문이 잠기면 밖에서는 열수가 없지만
안에서는 열리게 되어있는데 이상하게 고장이 나서 잠긴 문은
아무리 손잡이를 잡아 비틀어도 꼼짝을 하지 않는 겁니다.
룸메이트는 이미 나가고 없고 빈 방을 향해죽어라 문을 두드려도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는지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밖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할머니는 겁이 더럭 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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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이지
차는 벌써 떠났을 거고 다행히 출석점검을 해서
차가 돌아오면 좋지만 이미 그럴 만 한 시간도 지나 있어서
혼자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막막해 지자
할머니는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은 할머니는 손으로 문을 두드리다 안 되니
온몸으로 부딪치고소리를 지르고몸부림을 쳤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할머니는 탈진했습니다.
할머니 생각에 같이 온 일행은 이미 떠났고
혼자 호텔에 남겨지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그만 공간에서 어떻게 되나 보다 생각이 드니혼돈을 하는것입니다.

도둑을 맞을 라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할머니의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 것은 버스에 타고 있던 어떤 일행도
할머니의 부재를 눈치 채지 못 했다고 합니다.
대개는 일행 중 누구라도 챙기기 마련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려니
이상하게 한사람이 누락이 되어도 모르고 가게 되었답니다.
가이드도 있었을 것이고버스에 빈자리도 있었을 것이고
통솔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인데요.

몇 시간 후에 할머니가 안 계신 것을 알게 되어
버스가 할머니가 계신 호텔로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너무 기운을 빼고 혼돈해 있던 터라 할머니는
현관을 나오다가 쓰러지면서 발목을 골절당하는 중상을 입고
귀국하셨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든가.
어찌 되었든 단체투어인데 혼자 놔두고 가겠는가?
산 중도 아니고 호텔 안인데 청소하러 곧 오겠지 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면 될 일인데 할머니가 너무 조급하고 당황하셔서
그런 결과가 되었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70대가 되면 침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생소한 나라이다 보니 살려달라는 한국말도 통하지 않고
일행 중 자기를 챙길만한 친밀한 사람이 없다보니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일행은 멀리 가버리고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하니
좁은 공간 안에 갇힌 공포심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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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행 중에 내 친구가 있었는데
사건을 목격한 후로 자기 집에서도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꼭 닫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보다가 아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는데
그만큼 당시에 받은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나도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때문에 조금은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샤워꼭지에 물이 나오게 하고는 조금 지켜보다가 사용하게 되는 군요.

여태 예고없는 단수는 한번도 없었고

샤워기가 나에게 어려움을 준 적이 없는데도

내집 샤워기를 못 믿고 경계하는마음이 생겼습니다. ^^

순이

2 Comments

  1. 해군

    2013-06-02 at 12:25

    그냥 웃고 지나가기에는 심각한 상황이었네요

    무심코 스쳐지나갈만한 일, 누군가의 짧은 경험을
    재미있는 글로 만드는 재주에 늘 감탄합니다   

  2. 벤조

    2013-06-05 at 02:05

    누구라도 겁 났을 겁니다.
    20대라고 별 수 있었겠어요?
    오늘 신문에 보니까 압구정동에서 하루살이가 달라붙었다고
    젊은 아가씨가 놀라서 울었대잖아요.
    다른 사람도 화장실 트라우마 생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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