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자주 만나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딸이 결혼하여 분가를 하지 않고 친정에 들어와 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이 친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를 그리워해서
자주 만날 건수를 만드시는 듯합니다.
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도 집에 있는 한이가 보고 싶어지면
“한이 잘 놀아?” 이렇게 카톡을 보내고 딸은 즉시 답을 보내옵니다.
기저귀를 갈고 있든, 어지르고 놀고 있든, 걸음마를 하고 있든
모자가 외출을 나갔든, 사진 한 장을 첨부하여 "한이 잘 놀아요."
라고 답장을 받아 사진을 들여다보며 혼자 좋아합니다.
한나절만 못 봐도 보고 싶어지는 게 손자인데 친할아버지 할머니는
얼마나 보고 싶을까 생각하면 저는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한이네가 친가에 자주 가기는 하지만 시간을 내어 밖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는
짧은 만남에도 한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며느리 편하게 밥 먹으라고 얼른 식사를 마치고 아기를 안고 나가서 놀아주십니다.
식사가 목적이 아니라 손자랑 노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식사 중에 "더 추워지기 전에 양가 식구들이 다 함께
한이와 여행을 가보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이제 제법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고 싫고 좋고 하는 자기 의지가 생긴
한이를 대리고 떠나는 여행 그것도 사돈과 함께?
조금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차는 한이 할아버지가 차가 크니까 그 차에 다 함께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이동을 하는 것이라 아기의 컨디션에 맞춰야 해서
이동을 하다가 자주 쉬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겠다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기에 가다가 쉬고 쉬는 곳을 구경하고
밥 먹고 아기가 잠들면 쉬지 않고 내처 가기도 하고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대략의 경로는 인제를 지나 한계령을 넘어 속초에서 일박하고 화진포를 거쳐
진부령을 넘어서 집으로 온 코스입니다.
손자와 여행을 간다고 하니 맘이 설레는 사부인이 아침 일찍 출발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서울에서 40분 정도 와야 일산인데 우리 집에 일곱 시에 도착을 하신다니
한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오셨을 것 아닙니까?
원래 6시에 출발하자고 하셨는데 나는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 7시에 출발하자고
한 시간 미루어 잡았습니다.
그래도 7시에 출발하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해서
휴대폰 알람을 맞춰놓고 자다가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깨자
"하이고 이렇게 새벽부터 일어나 놀러가야 하나?" 이러며
부지런한 사부인이 잠시 원망스러웠습니다. ^^
우리 사부인은 인간 네비라고 불린다고 하는군요.
네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길눈이 밝은 사부인은 운전도 잘했습니다.
방향감각이 정확하고 한 번 가본 길을 잊지 않고 안내를 할 정도이고
집에서 여행 다니면서 먹을 음식도 아이스박스에 담아 오셨습니다.
심심풀이로 먹을 수 있는 반 건시 오징어와 땅콩
아기 먹일 우유나 야쿠르트,
사과와 배를 깨끗이 씻어서 사등분하여 차안에서 손으로 들고 먹기 좋게 가져오고
온갖 준비를 알뜰살뜰하게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주 운전을 교대하시고 운전을 하지 않을 때는 아기를 안아 주시고
먹을 것을 챙겨 주십니다.
아기를 어르는 것도 능숙해서 이름을 부르는 것도 특이하게
" 우리 한이야~"라고 사랑을 담뿍 담은 목소리로 한톤 높여서 불러서
아기가 저절로 할머니 품에 가서 안기게 정 있는 모습입니다.
직접 운전을 하고 운전을 하지 않으면 길을 안내하고
가다가 쉴 곳도 정하고 아기를 안아주고 놀아주고, 먹을 것을 챙기고
그 많은 일을 하는데도 목소리는 늘 밝고 명랑합니다.
대조적으로 수하물 같은 한 여인!
놀러 가는데 왜 이렇게 일찍 출발하자고 해서 아침잠을 설치게 하는지
부터 시작해서 나 혼자만 준비하고 출발하는데도 꾸물거리다 제일 늦고
차안에서 주는 음식 받아먹는 것도 귀찮아서 "그만 먹을게요." 하고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숙이고는 인터넷을 하든가 졸든가
창밖만 무연히 바라보고 있어서 단체여행에 도움이 안 됩니다.
어디쯤에서 쉬었다 가면 좋을지 어디가 보고 싶은지
뭘 먹을지 등등의 의견을 나에게 물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이
"알아서 하세요." 이러니 사부인이 많이 답답하셨을 듯
나에게 누가 처음에 붙여준 별명인지 잘 모르겠지만
"수하물"이라는 별명이 딱 정답입니다.
그러나 말하는 수하물 먹는 수하물이라서 더 매력이 없을 듯 합니다.
함께 여행을 하면 성격이 다 들어난다는데 사부인은 정말 매력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건강하고 활기차고 명랑하고 부지런하고 착하고 겸손하고 천진하고
온갖 미사여구가 다 어울리는 분인데 수하물 아줌마는 정말 너무 게으르고 할 줄 아는데 없어서
사돈 잘 못 만났다고 실망하셨을 듯합니다.
순이
데레사
2013-10-02 at 04:10
앞으로는 알아서 하세요 하지말고 의견을 말씀 해 주세요.
사실 의견 물었을때 그렇게 대답하면 그만 힘이 빠지거든요.
그리고 너무나 무관심한것 같기도 하고요.
사부인께서 어디서 쉴까요?
하시면 어디라고 딱히 말할곳이 없으면 차라리 사부인께서 좋아하시는
곳으로 하세요 가 알아서 하세요 보다는 나을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그 어려운 사돈, 특히 따님의 시부모님과 어행을 함께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무무
2013-10-04 at 04:53
의견을 물었을 때 이거저거 혹은 싫다좋다 정도를
표현해 주시면 진행(?)하는 사람이 훨씬 수월합니다
아무도 의사표현이 없으면 끌고 가기가 벅차더라고요
도와주시는 차원에서 조금만 표현해주시면 어떨런지?ㅎㅎ
아니면 끝까지 뒷말없이 말안하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