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미술관 가을 전시회 일별하기

전시기간이 짧아서인지
관람비용이 없는 무료라서 그런지
우리 사회가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신윤복, 김홍도의 그림이 좋아서인지
간송미술관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해서인지
아니면 이모든 것이 다 포함되었는지
간송미술관 그림관람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습니다.

연말이 다가와서 연차 남은 것을 써야 해서
월요일을 택해 간송미술관을 갔습니다.
봄에 꽃필 때 다녀온 간송미술관을
가을이 깊어가는 때에 찾아가는 마음이
출발부터 설레었습니다.

오후 4시 좀 지나 미술관까지 도착이 되었는데
줄이 미술관 입구를 지나 골목 끝을 빠져나와 있었습니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산뜻한 날씨이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저 줄의 끝에는 보고 싶은 그림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지루하거나 불평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untitled.png

긴 대열의 끝에 서서 휴대폰을 보다가
책을 꺼내 읽기도 했는데 책은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뒤 돌아보니 내 뒤로도 50명쯤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5시가 되어 가는데도 간송미술관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도 못 갔습니다.
못 보고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때
직원이 나와서 줄을 앞으로 당기라고 했습니다.
여섯시에 미술관 문을 닫기 위해선 5시에는
골목에 늘어선 줄을 마당 안으로 걷어 드려야 합니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당겨 정원으로 사람들을 넣고
더 이상의 줄을 서는 것을 막는 것이 보였습니다.

untitled1.png

마당 안으로 들어가서도 30분이 넘게 서 있다가 입장을 했으니
오후 여섯시까지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고 하면 바삐 돌아봐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잘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실내가 어둑해서 그림을 잘 볼 수 없었습니다.
안내하는 젊은이는 자꾸 재촉을 합니다.
이제 12분 남았습니다.
자리를 이동하면서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5분 남았습니다.
조금씩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을 끄겠습니다.
감상은커녕 시간이 다 되어 밀려 나오면서도
그다지 불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어서
이나마 그림과 일별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한 느낌이 들고
간송미술관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실 단오풍정은 보지도 못했습니다.
흐릿한 불빛아래 그걸 보겠다고 여러 사람이 머리를 디밀고 있는데
나까지 그러기는 체면이 없어서 입니다.
그런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제목 없음.jpg

그래도 전시회를 다녀오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월하취생”이라고 달빛아래에서 파초 잎을 깔고 앉아 생황을 불고 있는 남자가
어쩐지 남 같지 않았습니다.
종이와 벼루가 있는 것을 보면 글을 쓰다가 접어
놓은 듯하고 술병도 보입니다.
날이 더워서 바지를 무릎위로 걷어 올리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폼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처지가 좋지 못해서 생황을 불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듯합니다.
흐린 불빛아래에서 유리창 너머로 조그만 그림을 들여다봤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더욱 절절한 느낌이 전해옵니다.

이런 그림이 상시 전시되어 아무 때나 볼 수 있다면
조금은 애틋함이 덜 할 듯합니다.
흐린 불빛아래 복잡한 시장 골목에서처럼 밀려가면서
감상이 아닌 실물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일별을 해도
이상한 감동이 있는 것을 보면 원본이 주는 포스인가 봅니다.

간송 미술관이 너무 불친절하다고 비난하는데
난 어디론가 사라졌을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분의 혜안과
비록 볼 수는 없다고 해도 내 나라 안에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여러 가지 불편과 불친절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도 조금 나은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더 좋겠지요.

10월 27일까지 전시합니다.

순이

2 Comments

  1. 소리울

    2013-10-23 at 06:01

    자주 가던 곳인데, 저 그림도 보았던 그림인데….
    생황의 음색은 별로 들어보지 못해서 긍금해요. 너무나 애잔한 가락이 흘러나올 것 같은…   

  2. 해군

    2013-10-30 at 01:41

    평일 아침 9시반쯤 갔더니
    10시 개장후 20분쯤 지나서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많으니까 이럴때 편하더군요^^

    그 분 덕분에 수많은 문화재들을 지켜냈는데
    칭송은 못 할망정 불평이라니요?

    유명한 작품들을 가까이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입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