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위에 두 손을 모으고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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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갔다가 집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걸으면서도 손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습니다.
퇴근하면서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고 나오긴 했어도
혹시 손에 뭐가 묻었을 것 같은 것을 떨어내려고 그럽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에 내려서
출입문 번호 키를 톡톡 누르면서 집안의 기척을 살피면
아기가 와~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벨을 누르지 않아도 집안에서 번호 키 누르는
작은 버튼 소리를 감지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장 앞에서 신을 벗고 유리문을 미처 열지 못했는데
아기는 손을 배꼽위에 포개고 고개가 땅에 다을 듯이 인사를 합니다.
인사말은 딸이 대신합니다.
"할머니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마치고 아기는 품에 안깁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그리워하다 만나는 가족처럼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현관 앞에서 그러고 한참을 있습니다.

내가 사위보다 귀가가 늦을 때면
현관에 세 식구가 나란히 서서 인사합니다.
사위와 딸 가운데 조그만 아기가 서서 배꼽인사를 합니다.
그 인사를 받으면 감격스럽습니다.
“와~ 할머니 오셨다.”
외치며 아기를 몰듯이 하며 세 식구가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주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피로가 싹 가시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절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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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릴 때는 대통령께서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거나
우리가 사는 지역에 오시면 수업을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오래
기다렸다가 지나가시면 손에 든 태극기를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비바람 치는 날이든 뙤약볕아래든 관내의 초 중 고등학생들이
총동원되어 강요된 열심과 충성으로 환영했지만 검은 승용차 안에서
그분이 감격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라서 감격을 드리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한사람의 환영 그것도 조그만 아기의 환영이 귀가를 서두르게 합니다.
15개월 된 아기가 통통 거리고 달려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이
왜 그렇게 대견하고 아름답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기를 보면 괜히 더욱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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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앉아 있으면 등 뒤로 돌아가 그 조그만 손으로
내 등을 통통 두드립니다.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엄마가 시켜서 그러는지
아니면 "아고 시원하다."이러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그러는지
등을 두드려 주면서 내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반응을 시원치 않게 하면 등을 한 번 더 두드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봅니다.
아주 만족한 기분을 보이면 아기도 헤벌쭉 웃습니다.

아기는 무엇을 먹다가도 내 입에 가져다 넣어줍니다.
“할머니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조금 남은 부분이라도
내입에 넣고는 빈손을 들여다보고 억울한 눈빛을 하기도 합니다.
줄 것이 없으면 제 빈 손가락이라도 입안에 넣어줍니다.
그걸 나는 맛있게 빨아 먹는 시늉을 하면 저도 재미있는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내입에 심심하면 넣어줍니다.
나는 빈손가락을 빨면서도 맛있다는 시늉을 해야 하고
배부른 티를 내야합니다.
“아응 맛있다!” 이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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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공원에 산책을 나가도 어린 손자 손을 잡고 갑니다.
유모차나 자전거를 타기 싫어하고 무조건 걷겠다고 해서
안고 가다가 걸리다가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아기는 꽃도 봐야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도 봐야하고
신기한 볼거리가 많아서 걸음을잘 떼지 못합니다.
한발자국 가다가 멈추고 두발자국 가다가 멈추고
공원 한 바퀴를 돌려면 한 시간은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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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이런 환영을 받아 봤겠습니까?
배꼽 인사를 아들에게 가르친 딸도 예쁘고
커다란 덩치를 해 가지고도 귀엽게 배꼽인사를 하는 사위도 귀하고
손자는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나는 행복한 할머니입니다.

동생을 보내고 카톡 인사말에 여태는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이 글귀를 적어 놓고 있었는데
요즘 바꿨습니다.
“배꼽 손 착착 안녕하세요.” 이렇게요.
내 카톡 번호를 보는 분들에게 내가 손자에게 받는 기쁨을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순이

5 Comments

  1. 참나무.

    2013-10-25 at 00:14

    행복이 뚝뚝 흘러넘칩니다…

    ‘… 누가 날 이리 반갑게맞아줄꼬…’

    제3의 인생을 맞는 것 같다는 …
    울집 남자가 아주 자주 하는 말이기도합니다

    직장에서 빨리 퇴근하고싶을 때도 많으시지요

       

  2. 무무

    2013-10-26 at 22:43

    읽는 내내 저도 행복합니다^^

    아가의 말랑한 손가락이 내입에 들어 올 때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울까요?
    저도 며늘아이가 임신하여 곧 할머니가
    될터인데 건강하지 못해 할머니 구실이나 할까
    걱정되고 마음 아픕니다
    아가가 집에 오면 안아주고 업어주고 해야 할텐대요
    통통거리며 걷는 손자의 모습을 봐야할텐데 말이죠

    손자와 함께 사시는 순이님이 부럽습니다   

  3. Lisa♡

    2013-10-27 at 01:43

    아이고..얼마나 귀여우실까?
    세상에 안봐도 비디옵니다.
    절로 웃음이 묻어나구요.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떠나는
    사람들이야 마음 아프지만 그렇게
    새생명이 다시 세상을 차지하죠.
    너무 예뻐요~~   

  4. 해군

    2013-10-30 at 02:18

    손주 자랑하시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아시지요?
    그래도 자랑하고 싶으신 거구요
    얘기만 들어도 행복이 전해옵니다   

  5. 좋은날

    2013-10-30 at 07:47

    어린 날
    옆집에 여자아이가 태어나 간난아기가 있어
    자주 놀러가서 얼르고 까꿍하며 놀아주다가
    너무 귀여워 기저귀 누런 고무줄을 당겼다놓기도 하고 ㅋㅋ
    토실토실 보들보들 엉덩이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귀여운 모습을 어쩌질 못한 악행임을 고백합니다. ㅎ

    시방 글을 읽으며
    그런 심사가 듭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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