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연주회도 긴 설교처럼 지루하다면?

볕이 잘 드는 거실에서
돌 지난 아기를 안고 그림책을 보는 엄마의 모습은
더 바랄 것 없는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아기는 기차그림을 보면서 “칙칙폭폭 꽥~ ”하고 노래 부르듯 소리를 냅니다.
엄마도 따라하고 심심하면 할머니도 따라합니다.
거실에 가득 널려있는 책을 아기는 이리저리 다니다가
아무거나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책 읽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지하철에서도 책 읽는 분을 볼 수 없습니다.
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책을 꺼내 보는 것이 보통의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10명이 눈앞에 있으면 거의 대부분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휴대폰 속에도 읽을거리가 무궁무진 하니까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분을 봤습니다.
40대 정도의 남자분인데 지하철을 오르면서 오른손에 있는 휴대폰을
엄지손가락으로 계속 문지릅니다.
그것도 바삐 문지르기에 뭘까 했는데 게임을 하느라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휴대폰에 떠오르는 화면을 문지르면 뭔가가 지워지고 점수가 올라가는
그런 것인가 봅니다.
5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가면서도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내리면서도
한손은 여전히 휴대폰 화면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지문이 닳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집에 가서도, 아이들 앞에서도 저럴까?
게임에 온통 마음을 뺏기고 있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눈을 액정화면에서 떼어 어디쯤인가 두리번거리다 이내 휴대폰으로 들어갑니다.
휴대폰이 심심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오락을 제공합니다.
엄지손가락을 저렇게 쓰면 치매는 걸리지 않겠다고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분들 중 오락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서의 목적이 많이 있지만 오락성과 여가선용이 가장 큰 의미인데
휴대폰으로 하는 게임은 독서의 목적과도 같아 보입니다.
게임을 나는 잘 모르지만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재미있으니 게임을 하는 것이고 재미있으니 몰두하겠지요.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어 하지만
자녀에게 "좋은 책"을 강조하는 순간 아이는 책 읽기 싫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책에 대한 강박감이 있는데
독서에 대하여 자유로운 생각이 필요합니다.
만화책도 나쁜 책이라고 생각해서 못 보게 하지만
만화책처럼 쉽고 재미있는 것도 없습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버지도 만화책 보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래도 어떡하든 가만가만 아버지 몰래 만화책을 많이 봤습니다.
책은 누가 보라고 강요해서 읽게 되거나
못 보게 한다고 해서 안 보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말리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게임을 그렇게 말려도 게임방이라도 찾아가서 하고
어른들도 게임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누구라도 재미있으면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아람누리에서 이건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친구 남편이 이건창호에 다니고 있어서 표를 구해 주었는데
그분이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창호에서는 이건음악회를 지역민과 문화나눔의 일환으로
벌써 24회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좋은 음악회이지만 표를 파는 것이 아니라 100% 초대권을 발행해서
보고 싶다고 해도 표를살 수 없는 음악회입니다.
올해는 표를 못 구해 못 보겠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표가 남았는지

블로그에서 초대권을 준다고 하기에
응모를 했더니 두 장을 바코드로 찍어서 휴대폰으로 보내왔습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했습니다.
시몬 디너스틴이라는 미국 피아니스트인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다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이라는 데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지루한지 중간에 졸기도 했습니다.
90분간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는데 중간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생각하기엔 라이브로 90분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공연장에서 전곡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듯해서 흥미로웠지만
실제로 90분을 설교를 듣는 듯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중간에 휴식시간이라도 있던지 다른 음악회처럼 악장사이에
박수라도 칠 수 있으면 모르는데 숨소리도 작게 해서 피아노 음에
집중 해야하는 90분은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음악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분들에게나 유익한 시간이 되었을까?
평범한 지역민과 문화 나눔을 위한 음악회로서는 실패로 보여 집니다.
음악과 가까워지기는커녕 음악에 정이 떨어지고 다시는 클래식 음악회를
선호하지 않을 듯 한 분위기였습니다.
내 옆에 앉은 분도 고개를 심하게 떨구어가며 열심히 주무셨습니다.

사실은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한 연주자의 실황으로 90분간 인터미션 없이 음악을 듣는 일이요.
연주자는 악보도 없이 암보하여 90분을 쉴 틈 없이 연주하는데
앉아서 듣는 것도 못한단 말인가요?
그런데 앉아서 듣는 일도 보통 힘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연주자는 한 곡 한 곡 연주해 나가면서 어떤 성취감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32곡을 듣다 보니 그 멜로디가 그 멜로디 같고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았습니다.
공짜로 귀한 연주회를 다녀오고 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식하기도하고
염치없기는 하지만 재미가 빠진 음악회는 다시 가고 싶지 않고
다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CD도 듣지 않을 듯합니다.

음악도 재미로, 독서도 재미로,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

잘 못 되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어려운 독서는 힘들기만 하고

어려운 음악은 듣기 싫은 것이 누구나 같은 마음일 듯합니다.
음악도 독서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이

5 Comments

  1. 좋은날

    2013-10-28 at 01:38

    긴 댓글을 두번째 날리니 오기가 생겨 다시 씁니다.
       

  2. 좋은날

    2013-10-28 at 01:41

    저는 남녀노소 맛나다는 피자를 안먹습니다.
    된장국은 석달열흘 질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클래식은 취향에 맞질 않아 연간 두어차례 서울로 클래식 음악회를
    정신문화 함양이란 거창함을 내세워
       

  3. 좋은날

    2013-10-28 at 01:47

    성장을 하고 참석하곤 하지만 저는 이미자며 나훈아 노래가
    제 정서상 그윽히 스며들듯 좋으니 천상 버터체질 아닌 된장촌놈인가 봅니다.ㅎㅎ

    음악회에서 초반 오분은 분위기에 취하다가 그 반복되는 모르쇠 자장가에는
    그냥 끄덕끄덕 졸음속에 깊이들어 자장가음악회가 되곤합니다.

    하지만 세미클래식은 대중과 쉽게 섞여드는 새로운 장르개척으로
    출장길이나 여행길에서 자주 즐겨 시디를 구입해 듣습니다. ㅎ

       

  4. 참나무.

    2013-10-28 at 03:29

    근데 골트베르크를 앵콜로 전곡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있지요
    끝났을 때 단 한 사람 남았더던가?
    명한 일화인데 오래되어 정확한진 모르겠네요
    저도 아는이가 있어서 초댓장은 가끔 받는데…좀체 시간이…;;   

  5. 공군

    2013-10-28 at 04:00

    그 공연자가 뒤늦게 어찌어찌해서 유명 연주자가 되었다고 하던데…
    이건음악회가 오랜기간 무료로 좋은 음악회를 해주니 참으로 기업의 좋은 기여이긴 한데
    정말로 그 정도의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면 발상을 전환하는게 좋지요
    나같은 사람도 들을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음악들을 해주는게 좋은데…
    나는 이미자도 나훈아도 패티김도 심수봉도 몇곡 이상은 다 싫증나요
    케비에스 음악회 정도가 딱 수준에 맞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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