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에는 이미 겨울 찬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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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가을 여행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지리산 자락을 둘레둘레 구경하면서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을 가는 줄 알았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사전에 지리산이 해발 몇 미터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어떤 방향엔 어느 고을이 붙어있고 전설은 어떤 게 있고….
이런 것을 공부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강조를 하는데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 보이는 만큼만 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여행에 대한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ㅎ
공부까지(!) 해가며 여행하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습니다.
별명이 수하물인 사람답게 대려다 주면 거기서부터 생각나는 이야기와
현장 속에서 발견 되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글을 올릴 때 깨달아지는 것도 있고
느낌이 되살아나서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긴 합니다.

호수공원을 산책하듯 지리산 자락을 밟으며 구비 구비 걸으면
가을이 끝자락이긴 하지만 단풍도 곱고 힘도 안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2박3일 동안 얼마나 빡세게 (나로서는) 등산을 했는지
아직도 팔다리에 근육통이 남아 있습니다.
둘레길이라는 것이 산책길과 같을 거란 생각을 한 내가 오산을 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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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만나 12인승 봉고차로 출발을 해서
첫 번째 코스가 노고단이었습니다.
친구들 말로는 노고단 거의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고
조금만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쪼~오끔 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고 해서
노고단이 높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차에서 내리는 친구들의 포스가 전문 등반인 차림입니다.
조금 걸으면 될 일인데 뭔 등산스틱까지 가지고 가나 했는데
그런 장비를 갖춘 사람은 지리산을 몇 번이나 다녀간 사람입니다.
나는 휴대폰만 넣은 조그만 색을 어깨에 메고 가볍게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 지점부터 얼마간은 오르막이긴 했지만 비교적 평탄했는데
어느 순간 눈을 들어 보니 저 위가 까마득합니다.
거기다가 시간 재촉까지 합니다.
리더인 친구가 시간이 늦으면 여기까지 와서 노고단을 못 보고
갈 수가 있으니 빨리 가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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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오전 9시에 출발해서 남원까지 길에서 소요된 시간이 있고
밥 먹고 하다 보니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인데 3시면 들어갈 수 없도록
(실제는 3시 30분) 통제를 한다고 합니다.
노고단을 꼭 봐야 한다고 선발대로 잘 걷는 친구들이 앞서가고
나는 뒤로 쳐졌는데 편한 길을 두고 지름길이라는 돌로 된 길을 오릅니다.
나는 그 길이 어찌나 힘들고 다리가 아픈지 내 심장 소리가 내 귀에 둥둥거리고
다리가 움직여 지지 않아서 날아갈듯 지나가는 등산객이 부러운 생각이
드는 한편 내가 얼마나 평소에 운동을 안 하고 살았는지 표가 나서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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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거리며 노고단 대피소까지 갔는데 저 앞에서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릅니다.
"수니야 빨리 와 여기 문 닫는데…."
사력을 다해 갔더니 내가 입장한 후에는 바로 문을 닫더군요.
산이 높아서 위험해서 인지 입장한 사람들의 숫자를 카운트 했습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통제시간이 이미 조금 지나 있어서
일행이 오고 있으니 문 닫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해가며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꼭 마라톤 주자가 파이널 테이프를 끊듯이 그날의 마지막 노고단
입장객이 되는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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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 입구 통제소에서 쳐다본 노고단은 또 까마득했습니다.
포기하고 대피소에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친구들 사진도 찍어 줘야하고 어렵게 올라온 길인데
노고단은 봐야지 하면서기를 쓰고 올라갔습니다.

노고단에 오르고 보니 해발 1500m가 넘는 높은 곳이었습니다.
친구 말처럼 버스에서 내려서 쪼~오금만 걸으면 되는 길은 아닙니다.
등산을 밥 먹듯 하면서 단련한 사람에게는 조금만 걸으면 될지 모르지만
등산에 소질이 없고 움직임이 둔한 나는 첫날부터 고생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노고단을 오르면서 내려오면서 본 경치는 가슴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산 넘어 산, 구름 넘어 구름이 겹겹이 둘러진 먼 곳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탁 트이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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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시간에 쫒기지 않으니까 원만한 경사의 편한 길을 택해
천천히 내려오면서 저녁노을을 눈이 부시도록 바라다 볼 수 있었습니다.
하산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저녁이 오고 사위가 캄캄해졌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는 낙옆이 다 떨어지고 이미 초겨울의 찬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순이

1 Comment

  1. 해군

    2013-11-13 at 00:35

    산꾼들 지리산 종주한 것만큼이나 힘든 등산을 하셨네요^^

    깜깜한 04시 성삼재에서부터 슬슬 걷기 시작,
    노고단에서부터 본격 산행하는 게 지리산 종주입니다

    노고단 할머니께 인사드린지도 여러해 됐는데
    내년 여름에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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