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제공한 남원에 있는 콘도에서 일박을 하고
둘째 날엔 지리산 둘레길 제 1구간을 갔습니다.
출발 지점이자 첫 구간인 주천~운봉길입니다..
치안센터를 떠난 지 30여 분이 지나자 마을과 농로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됩니다.
고갯길이 시작될 무렵 길 중간에 큰 바위와 쉼터가 있는 개미정지가 있는데
거기서 부터는 가파른 등산로가 험했습니다.
개미정지에서 잠시 쉬고 다시 걷자 용트림을 하는 것 같은 "용소나무"가 있는데
길이 험한 것에 염려가 생기자 그런 걸 살필 여유가 없었습니다.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붙은 연리지 용소나무는 그 모습이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과 닮아 용소나무라 불린다는데 땅만 보고 걷다가는 지나치기
쉬우므로 호흡을 천천히 하며 유심히 찾아야 만날 수 있습니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커다란 소나무를 휘감고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하다며 친구들은 사진을 찍는데 나는
"이게 무슨 둘레길이야? 거의 고산등반이구만" 숨이 차서 투덜거렸습니다.
험난하기로 유명한 지리산의 가파른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능선 길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되자 큰 병을 앓고나 회복 중에 있는 친구가
몹시 힘들어합니다. 호흡도 거칠고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더 이상 가기가 무리일 듯해서 하산하는 것이 어떤 가 즉석에서
의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오르막을 계속 가는 것 보다는 내려가는 길은 쉬우니까
아픈 친구는 돌아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본인의 의향을 물었습니다.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돌아가겠다고 하기도 어렵고
앞으로 나가기도 힘이 든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친구들의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거의 다 올라온 것 같은데 조금 더 가보자고 격려하는 친구도 있고
아픈 사람인데 무리하면 안 된다고 돌아가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고생스러운 둘레길은 가기 싫던 차에
이친구가 포기하고 내려가겠다고 하면 내가 동행해야지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본인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보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낙오되는 것은 싫다며 끝까지 가겠다고 했습니다.
돌아서 내려올 찬스도 없어진 나는 아픈 친구보다 내가 더 힘들어 하면서
오르막을 계속 갔습니다.
한 10분이나 갔을까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자 평평한 길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한바탕 인생론이 펼쳐졌습니다.
포기하려고 까지 한 마지막 어려움을 극복하자 이렇게 평탄한 길이
펼쳐지는 구나 이런 것이 우리네 인생하고 비슷하다 하면서요.
정말 좋은 길을 만나자 힘들게 올라오던 길을 포기하고
내려갔더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리막은 흙길로 되어있고 완만한 경사와 소나무 숲이라
산책하듯이 걸어서 내려오는데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진짜 둘레길이었습니다.
숲길을 다 내려오자 회덕마을이 나왔습니다.
구룡폭포길을 통해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려고 계획했는데
마을이 가까워오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잔뜩 흐려 있어서 비가 올 것 같기는 했지만
중간에서 비를 만나자 다음 스케줄에 차질이 있었습니다.
마침 비닐하우스가 보이는데 음식을 팔고 있어서 그곳에
쉴 겸 비옷을 챙기려고 들어갔습니다.
도토리묵 파전 국수, 라면 같은 것을 팔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과 허리가 반으로 굽은 할아버지, 두 분이
장사를 하고 계신 곳이었습니다.
비를 피해 등산객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제법 넓은 비닐하우스가
꽉 차게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돈만 받으시고 조리를 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없어서
할머니 혼자 손으로는 이 많은 등산객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어려워보이자
내 친구 두 명이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친구는 설거지를 하고 한 친구는 파전을 부치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주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우리는 나중에 잔치국수를 삶아서 먹었습니다.
물론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음식 값을 덜 내는 것도 아니지만 노인을 돕는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그런 것입니다.
돈을 벌기위해서는 서비스를 해야 당연한 것이지만
노인 두분이너무 애를 쓰는 것 같고어려움을 겪자 도와드린 것입니다.
멸치국물에 다대기 양념도 부족하여 조금씩 넣고 더달라 소리도 못하고 먹은 국수지만
무슨 잔치 상이라도 받은 듯 즐거워하며 맛있다 소리를 연발하며 먹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먹은 설거지 까지 우리가 해드렸습니다.
국수를 먹고 친구들이 커피한잔이 생각나 커피 물을 끓이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할머니는 커피를 팔고 계셔서 그런지 물만 조금 끓이겠다는 것을 불편해 하셨습니다.
우리는 할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해 드리고 파전을 부쳐드렸는데
할머니는 커피 물 몇 잔 끓이는 것도 아까워 하셔서
시골 인심 치고는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계속 오고 있어서 구룡폭포를 통과하여 하산하려던 것을 바꿔서
차를 회덕마을 까지 오라고 해서 화엄사로 갔습니다.
순이
그리움
2013-11-13 at 01:30
아름다워야 할 끝맺음이 그만 썰렁한 마음으로 돌아오네요
인정이 이뤄진 – 굳이 커피값은 안받겠다며 거친손으로 젊은여성들 등을 쓰다듬어주셨으면 좋으련만~
고마우이~~ 고마우이~~ 천천히 마시고 가~~~그러실수있는 할머니가 옛 우리 인정이시련만 –
수고하시고도 도와드릴수 있었다는 그 기쁨이 커서 커피값 쥐어드리는 마음의 오고 감, 또한 인생같기도 한데—-
저두 언젠가는 지리산 올레길 나들이 가고픈데 그 가파른 길목엔 어쩔꼬~ 싶습니다 ㅋ
강대용
2013-11-13 at 12:40
좋은 일 하셨네요. 복 받으세요.
해군
2013-11-13 at 13:42
참 아름다운 마음씀인데 맞대응이 안 됐군요
저도 지리산 둘레길 걸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정이 메말라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참 아쉬웠답니다
혹시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릅니다만…
yourprincess
2013-11-13 at 20:22
감사하기 싫은, 아니 감사할줄 모르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마음이 섭하셨겠어요.제가 님이었다면,’할머니 제가 돈도 안 받고 서비스 해 드렸으면 커피한잔 주셔도 무방한거 아녀요. 할머니가 되셨기에 감사할 줄 몰라도 되는 건가요? 내가 할머니의 자녀였다면 그렇게 야박하지는 않았겠지요. 난 할머니가 일손니 모자라 어쩔줄을 몰라서 자신해서 도와 드렸는데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말씀 한번 하시지 그랬어요?커피값을 드리면 한잔 마시수 있는 건가요? 이렇게 인정이 없는 할머니었다면 나도 처음부터 모르척 했을 거에요.’ 뭐 이런 정도는 한마디 해도 상관 없다고 봐요. 할머니가 자신의 인정머리 없는 행위가 만인에게 공개되었다는 걸 누구의 입을 통해서ㅜ아시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초롱아씨
2013-11-14 at 02:36
아마 할머니의 삶이 퍽퍽하셔서
‘감사’의 여유조차도 사라진 때문이 아닐까요…..
매일매일 쫓기면서 살다보니 여유롭게
웃고 즐거워하며 산행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돈벌이 대상으로만 보였을 듯 하네요~
할머니가 감사의 마음으로 취미삼아 즐겁게
일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지 궁금해요…..
김상수
2013-11-14 at 03:41
제가 그곳 주천면 출신입니다 그곳을 떠난지가 어언 30여년 그때 당시의 인심은 막걸리 한 되만 시켜도 안주가 무려 40여가지 밥상에 안주 놓을 자리가 모자라 안주를 두겹 세겹으로 쌓아 술상을 내오곤 했었는데 참 야박한 인심이 그곳 까지 스며 들었네요 흑 글쓰신 님 넘 야속타 생각 마시고요 담에 제가 만나면 어디서 커피 막걸리 사발로 타 드릴께요 그곳 인심 절대 그러질 않았어요 흑흑 제가 그곳 출신이어서 잘 안당개요 흑흑흑
ryu junmo
2013-11-14 at 04:50
이게 전형적인 한국인의 문제점 입니다. 그 할머니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영업하는 주방에 왜 들어 갑니까? 정 이라고요? 그 할머니가 안 되보인다고요?
매정 한 듯 보이지만 한국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런 의식은 좋은 점보다 안 좋은 점이 더 많습니다. 좋은 일 하려다 마음만 상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