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헤어드라이어의 줄이 꼬여있을 때 플러그를 빼 풀어두는 것.

화장실 쓰레기통의 휴지가 만삭으로 부풀어 있을 때 여보와 엄마와 하숙집아줌마를 찾기 전에 비닐봉지를 먼저 찾는 것.

비록 세탁기를 돌릴 줄 모르더라도 벗어놓은 양말과 바지가 세탁바구니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들이 제 멋대로 뒤집혀진 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빠져나간 머리카락을 원망하기보다 수챗구멍에 쌓여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고인 비눗물이 원망 없이 잘 빠져나가게 해주는 것.

누군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 연속극 소리나 음악 소리가 거실을 뛰어다니지 않게 죽여주고 방문이 쿵쾅거리며 닫히지 않도록 해주는 것.

야자 타임으로 늦게 귀가하는언니나오빠의몫으로 남겨둔 젤리뽀나 요거트를 손대지 않고 냉장고 안에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

퇴근 무렵 엄마를 찾는 아빠의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다고 센스 있게 답하고,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동창회를 보호해 주는 것.

아빠는 왜 일요일이면 잠만 자고 우리와 한 약속은 안 지키느냐고 따져 묻기 전에 내가 한 성적 약속, 책 읽기 약속, 약속 지키기 약속은 잘 지켰는지 먼저 점검해보는 것.

엄마 생일 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급조해 휘갈겨 쓴 빈약한 사랑 종이쪼가리와 봉사 쿠폰을 선물로 내미는 일이 얼마나 쪽 팔리고 창피한 일인지 빨리 깨닫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