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에서 하는 도전 골든 벨이나 퀴즈게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찬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안타까운 마음에 기회를 주기위해
찬스를 쓰라고 하는데 친구들이 정답을 쓴 비행기를 날려 정답을 알려주고
퀴즈를 푸는 사람은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런 경우 찬스를 쓴다고 합니다.
우리 큰딸은 가끔 친정찬스를 씁니다.
친정찬스가 정확한 용어는 아니겠지만 의미는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찬스를 쓰지 않아도 딸에게 친정은 영원한 우군이고
항상 도와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3살짜리 개구쟁이 아들과 뱃속에 아이가 있는 만삭의 임부라
쉬고 싶으면 친정에 와서 아이를 맡기고 푹 쉬기도 하고
사위와 둘이서 외출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아빠찬스를 씁니다.
놀이공원이 가까이 있는 영화관으로 영화 티켓을 예매해 놓고는
아빠를 불러내어 건이와 친정아빠를 놀이공원에서 놀게 하고
딸 내외는 영화 관람을 합니다.
며칠 전에는 딸 내외가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보기위해
아빠를 불러내어 건이를 맡겼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는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집니다.
할아버지를 잘 따르는 건이와, 건이를 몹시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둘이서만 서너 시간 동안 놀이공원을 다니며 놀던지
밀가루 놀이터에 가서 뒹굴며 놀거나
놀이방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며 놉니다.
할아버지는 건이가 혹시 어디 부딪칠세라 넘어질세라
졸졸 따라다니며 돌봅니다.
아이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따라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할아버지는 아이를 독차지하고 본다는 것이 행복해서
딸이 불러주면 무척 고마워합니다.
녹초가 되도록 손자를 따라 다니며 봐 주면 딸이 아빠에게
감사해 하는 것이 당연한데
아빠는 손자를 키우는 딸이 대견하고 손자를 맡겨준 것이 감사해서
건이에게 뭐라도 사주라고 용돈까지 주고 헤어집니다.
이러니 아빠찬스를 쓰는 딸은 이래저래 신나는 것입니다.
건이에게 해방되어 두 내외만 오붓하니 데이트할 수 있어서 좋고
아빠가 맛있는 밥을 사주고 용돈까지 주니
딸로서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지요.
남편은 무뚝뚝하기가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억울할 정도의 사람인데
손자들 앞에서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손자가 무엇을 요구하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줍니다.
안으라면 안고 다니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가자면 가고 서라면 섭니다.
뼈도 없는 사람처럼 손자 앞에서는 녹아내립니다.
뭘 요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시행하고 하늘에 별이라도 따다줄 기세입니다.
그러니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많은 엄마와 노는 것 보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특히 사탕 같은 단 음식을 아무 잔소리 없이
대령하는 할아버지와 노는 것이 너무도 좋은 건이입니다.
건이를 봐 주었으니 베이비시터 비를 받아야 할 텐대도
할아버지는 그냥 온전히 아이를 맡겨 준 것이 고마운지
자주 맡겨 달라면서 금일봉까지 줍니다.
"아빠 시간 있어?"
라고 딸이 물으면 언제라도 달려가 태세가 되어있습니다.
손자가 뭔지…
딸들이 어릴 때는 아빠가 바빠서 함께 놀아주지도 않았는데
늙어가면서 손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기 조차합니다.
그래도 친정찬스, 아빠찬스를 쓰는 것이
아빠도 딸도 건이도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