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한 인테리어까지는 아니지만 아늑하고
정리되어 있고 제자리에 물건이 놓여있고
값비싼 가구 같은 것은 없어도 집에 들어오면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이
내 집이니까 당연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부터는 누가 어지를 사람이 없으니 물건이 움직일
이유도 없고 보기 좋은 걸 걸어 놓거나 눈높이에 두고 보기도 하지만
거의 변함없는 거실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손자가 생기고 부터는 사정이 확 달라졌습니다.
아기가 뒤집기 시작하니까 국민문짝이라고 하는 장난감 문짝이
거실에 놓이더니 그네같이 생긴 앉아서 뛰는 방방카가 놓입니다.
걸어 다니기 시작하니까 아기가 넘어지면 다치니까 방지하기 위해
얼룩덜룩 한 무늬의 안경 쓴 뽀로로 비닐매트가 쫙 깔리고
(그것도 여러 장이 모양 볼 것도 없이 지그재그로 놓이고)
그 위에는 담요나 면으로 된 매트 등 그냥 닥치는 대로 덥힙니다.
거실이 누더기를 기워놓은 모습의 풍경입니다.
어찌 되었든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지만 않으면 되지
모양이니 인테리어니 분위기니이런 건 아주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텔레비전을 마주보고 있어야 정상인 긴 소파는 창가로 밀려 났고
아이 소파만 정상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아기 놀이용 텐트가 계절과 상관없이 늘 설치되어있고
텐트 속은 장난감의 임시 저장처가 됩니다.
아기 그림책을 아기 키에 맞추어 꺼내고 넣기 쉽게
낮은 유아용 책장이 벽을 차지하고 어른책장은 방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거실에 기차레일이 깔리고 비행기가 들어오고
자동차는 불자동차 엠블란스 경찰차 등 구색을 갖추어
수십 대가 도열을 하고 미끄럼틀이 자리 잡고 말이 뒹굴어 다닙니다.
강아지 양 호랑이 곰 인형이 구석구석에서 웃고 있고
앵그리 버드 같이 유행하는 헝겊인형들도 수십 명 함께 삽니다.
언제 아이들이 다 커서 연한 살구 색 카펫을 거실에 다시 깔아보고
텔레비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소파에 앉아보나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지만
아기가 크면서 더 큰 사고는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입니다.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기계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컴퓨터 on/off 버튼을 수시로 눌러보기 때문에
글이라도 쓰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다 날아가 버리고
안전 모드에 걸려서 수십 분에 걸려 부팅을 새로 해야 합니다.
생각다 못해서 컴퓨터 본채를 책상위로 올려서 설치를 했습니다.
모든 버튼이란 버튼은 다 눌러 보기 때문에 프린터기계도 거실에서
안방으로 밀려들어온 가구를 포개어 놓고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소박하고 (사실은 후지고) 깨끗하고 조용했던 거실이 어떻게 디디면
노래가 나와서 깜짝 놀라고 (요즘엔 어린이 책이 거의 소리가 납니다.)
발에 체이는 자동차에서도 소리가 나는 지뢰밭 같아 졌습니다.
어린이 놀이방이 된 거실에 아이가 통통거리며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고
나는 부드럽지 않은 관절을 가지고 아기에게 끌려 다닙니다.
아기가 손을 잡아끌면 부엌으로 작은방으로 다니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어야 하고 책을 읽으라면 읽어야 하고
자동차 소리를 내라고 하면 자동차 소리 까지 합니다.
자동차는 빵빵, 기차는 칙칙폭폭 꽤~액
불자동차는 애~앵 애~앵 경찰차는 왱~왱~왱~왱, 앰블런스는 삐뽀삐뽀
오토바이는 부릉부릉 자전거는 때~릉 때~릉
이런 소리도 내야하는데 이것도 보통 난해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한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무한 반복을 해야 합니다.
자동차 소리만 내야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 흉내도 내야합니다.
병아리는 삐약 삐약, 오리는 꽥꽥, 염소는 움~매, 소는 움~머 (조금 크게)
호랑이는 어흥, 고양이는 야옹 …..
할머니 노릇 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 나는 장난감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ㅎ
순이
騎士
2014-01-13 at 08:16
장난감이 사라지고
거실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집안이 조용해지고
그 때는 기다리는 나날 이겠지요
소란스럽고
요란 스러웠던시간을 그리워하면서
인간은 소리와 요란함을 좋아한답니다
적막과 정적을 사랑한다 함은
위선이랍니다
mutter
2014-01-13 at 09:25
이히히~
그렇군요 순이님
할머니 노릇도 쉽지 않겠어요.
난 손자들을 어려서는 일주일,크고나니 한달에 한번씩보니
몰랐네요. 순이님 글보니 장난 아닌데요. ㅎㅎ
운정(芸庭)
2014-01-13 at 13:26
울집에 가끔 내려오는 동생의 외손주,
요개 내손을 붙잡고 이모할머니 이거 뭐야?하고 궁궁한것 묻습니다.
확실한 답변을 들어야 손을 놓아주는 녀석이 난 귀엽거든요.
떠나간 후의 허전함이 아이가 보고 싶어지네요…
아이들 키우는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말그미
2014-01-14 at 06:29
실감나고 웃음이 났습니다.
우리 아들집을 가면 꼭 저렇거든요.
어쩌다가 잘 못 밟아도 노래가 나오고
무엇이나 건드리면 노래가 나옵니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Angella
2014-01-17 at 07:11
풍경이 고스란히 그려지네요.
놀이방이 된 거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