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감기가 걸려도 2주는 아픈데
좀 중한 병이라고 하니 한 일 년 쯤 고생하지 뭐!
요즘 세상에 치료하지 못할 병이 어디 있어
길이 있을 꺼야, 노력해 보자고….
동생이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모든 형제가 달려들어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한자리에서 17년이나 하던 약국 문을 닫고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면 도움이 되겠지 하고
여름을 강원도 평창에 가서 지내보기도 했고
병원 입 퇴원을 반복할 때도 함께 했습니다.
제부도 있고 스무 살 된 딸도 있었지만 자매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것은
자매간이 친밀하기도 했고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그럴 때
혈육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한다고 비난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타인이 자신의 질병에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도
환자가 부담스러워하고 경계하는 일이 생긴다고,
지나친 동일시는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질병의 고통은 누가 대신 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환자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라 관심의
수위와 고통의 수위를 조절하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자신 없는 소리로 중얼 거렸습니다.
"그래 넌 참 좋겠다. 그렇게 감정을 조절하고 살아서…
나도 그런 말 하고 살아 왔어, 그러나 내 일로 닥치면 그게 안 되더라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넌 대학병원 높은 위치에서 직업으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나에게 보이지 만, 난 내 혈육에게 닥친 일이라 그런 말도 화가 난다구!“
냉정을 유지하는 친구에게 눈물까지 비치면서 화를 내고도
친구의 냉정한 태도가 얄밉고 섭섭한 감정까지 가졌습니다.
그러나 동생을 먼저 보내고 나니
아무리 자매간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몸을 가진 개채라
결국 대신 살 수도, 대신 아플 수도 없고
생명은 부모라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죽고 사는 일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의 소관이고
우리는 아무 힘이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생의 장례를 치르면서 너무도 고통스러워 다른 동생들하고도 정을 좀 떼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부모님을 빌어 태어난 형제지만 이제는 각자 결혼하여 가정이 있고 자녀들이 있고
이런 이별이 누구에게 언제 또 닥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럴 때마다 계속 이런 shock를
서로 당하게 하거나 끼치는 일은 힘든 일이라
너무 핏줄에 얽혀있지 말자, 조금 거리를 두고 살자,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일 것 같다 다짐을 했습니다.
장례식이후 형제들이 카톡을 해도 나는 반응을 잘 하지 않고
전화를 해도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었습니다.
사람의 친밀도라는 것이 용건만 간단히 하고 말면 사무적인 관계가 되지만
연애를 할 때 보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전화를 수시로 하게 되잖아요?
우리 딸이 사는 것을 봐도 사위와 수시로 교신(!)을 합니다.
회사에 도착했다고 점심을 먹었다고 한이는 뭐하냐고
저녁엔 뭘 먹자고, 퇴근한다고, 어디쯤 왔다고…..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집에 오면서도 수시로 전화하고 문자하고 그럽니다.
형제 자매간에도 늘 서로 챙기고 관심하며 살다가 내가 일부러 냉정하게 굴었습니다.
이가 빠진 것 같은 삶의 형태가 되자 사는 게 시들하고 재미가 없어서
자매들과 대화하는 것도 귀찮고 대화를 멀리하자 언니 우울증 걸렸다고 더 야단들입니다.
동생의 일주기가 다가와서 의논을 하다가
의도적으로 멀리한다고 해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걱정만 끼치게 된다고
언니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일본 온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울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울증환자는 아닌데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동생이 투병을 시작하고 먼저 가기까지 약 일 년과
보내고 나서 일 년 등 벌써 이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아직도 동생 이야기를 하려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막내 동생이 꿈에 자주 언니를 만난다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 슬픔만 더 큰 게 아니었습니다.
이럴 땔수록 살아있는 동생들과 서로 위로하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을 백혈병으로 먼저 보내면서 너무나도 큰 상실감과
인생의 배신감에 지난해 내내 우울했지만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동생들을 자꾸 마음 밖으로 밀어내려고하면서
고립하고자 했던 것이더 우울한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마음에 거리를 둔다고 멀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몇 년 전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같던 그 여정을 따라서 후꾸오까를 다녀왔습니다.
동생들과 정을 좀 떼고 멀찌감치 살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동생과 언니를잃은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자매들의 치료를 위한 이별여행입니다.
순이
벤조
2014-01-17 at 05:29
친구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순이님도 ‘인생의 배신감’이라는 표현을 하시네요.
알듯말듯.
나의정원
2014-01-17 at 09:43
직장에서 이 글을 읽는 중인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주체 할 수없는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립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 말이 있쟎습니까?
어쩌겠어요. 산 사람은 그런대로, 처음엔 못 살것 같더니 그럭저럭 살아지는 것을 보면 저 자신도 어느 새 아픈 맘은 간직하고 있어도 감정의 무뎌짐을 느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운내세요.
좋은 자매형제분들을 두셔서 아픈 마음이 많이 나아지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인회
2014-01-17 at 11:11
감정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친언니가 46살에세상을 떴습니다.
그후로 우을증과 여러가지로 상실감으로 힘들었지요.
그러다 삶의 방법을 완전히 확 바꾸었습니다.
여행,등산등등으로…
언니가 세상을 뜨고 난후 고2조카 중3조카 도시락반찬을 한주도 안빼놓고 고향충주로 해다 날랐습니다.
그래야 맘이 편해질것 같았던거지요.
살아있을때 좀 더 잘할걸…
직장다닌단 핑게로 아팠을때 제대로 못해준것이 안타까워서..
결국 내만족으로 하는것이지만..
죽는 사람만 억울합니다.
열심히 힘차게 살아야겠습니다.
휴휴…
저도 지금 언니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주루륵….
무무
2014-01-18 at 10:00
저는…..
순이님을 보며 하나뿐인 울언니 마음 여리고 내게 한없이
의지만 했던 가여운 울언니를 어떡하나 그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내가 오히려 언니같아서 혼자 된 언니 책임진다고
내옆으로 오라해놓고 오히려 큰짐만 남기는 꼴이 되었죠
지금도 충분히 버거워 하는 언니 보는 일이 투병보다 힘든 일입니다
trio
2014-01-19 at 07:18
우리도 언젠가 다 가는 길이기에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라고 여기시면
담담히 남은 가족들이랑 보람되고 유익한 삶은 지내셔야한다고 여겨져요.
동생도 하늘나라에서 그것을 원하고 계실거예요.
건강 잘 돌보시구요. 순이님!
리아
2014-06-03 at 03:22
저도 10여년 전에 뜬금없이 여동생을 먼저 보냈는데
있을 때 좀 더 재미나게 지내지 못한 게 지금도 한 번 씩 북받쳐오르곤 한답니다.
물론 서로 타지에서 떨어져 살다보니 그랬겠지만
젊은 날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종종 걸음 친게 가슴을 쓰리게 하네요.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올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암튼 언니인 내가 좀 더 신경쓰지 못 한 게 많이 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