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오래되어 낡고 허름한 아파트 10층이라 앞 동 뒤통수만 보입니다.
얼룩덜룩 때가 끼어 바라 볼 곳도 없었는데 요즘 들어 벽면을 새로 칠해서
깔끔해 져서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며 내다보는 기분이 조금 낫습니다.
내 생애에 다시 한 번 이사할 기회가 생긴다면 앞 동 시멘트벽이 가로막힌 곳이 아닌
들이나 산이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나마 봐 줄만 한 바깥풍경은 부엌에서 바라다 보이는 뒷동네입니다.
왼쪽 탄현역 쪽으로는 고층아파트 새로 생겨 스카이라인이 바뀌긴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냉수를 마시거나 커피 잔을 들고 싱크대에 배를 붙이고 서서
아침풍경을 바라다 볼 때가 많습니다.
출근을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까지 내려가야
눈이나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알 수가 있어서
비가 오는 걸 모르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서 우산을 챙길 때도 있고
옷이 추워서 외투를 가지러 두 번 걸음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연환경과는 거리를 두고 인공적인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탓에
정원이나 텃밭, 들이나 산 이런 말들이
나에겐 아주 멋지고 사치스러운 용어로 들립니다.
이번 남도 여행 중에 들린 담양 소쇄원은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래 머물러 있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소쇄원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였던 분의 생활이 그대로 녹아있는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멋진 곳이었습니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장소입니다.
당시 스승이었던 조광조는 반대파의 모함에 휩쓸려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게
되는데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양산보는 정치에 뜻을 버리고 고향에 머무르며
소쇄원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소쇄(瀟灑)란 뜻은,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자연을 그대로 빌려서 즐긴 곳입니다.
일본식 정원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월당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으로
정자라기보다는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책을 읽는 곳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소새원에는 제월당과 광풍각이라는 집이 있는데
광풍각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이라는 사람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한 것에 유래하여
양산보가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
(광풍 – 光風)과도 같고 비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제월 – 霽月)과도 같다.“ 라는
말을 그대로 ‘제월당’과 ‘광풍각’에 새겨 넣은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양산보가 추구했던 삶이 "맑고 깨끗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법정스님께서도 "맑고 깨끗하게" 라는 책을 내시기도 했습니다.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의 역할을 주로 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소쇄원에 모인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분들로는
‘면양 송순’, ‘제봉 고경명’,’송강 정철’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소쇄원을 드나들며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며 멋진 시구 등을 통해
이곳을 찬송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월당 내부에는 소쇄원의 현판과 함께 김인후가 썼다는
"소쇄원 48영"의 시가 걸려있습니다.
특히 이 현판을 쓰신 분은 다름 아닌 ‘우암 송시열’이라고 합니다.
조선 중기 호남의 사림 문화를 이끈 인물들이 교류하는 장소 역할을
소쇄원이 톡톡히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곡문 곁 담 아래로 흘러들어오는 시냇물을 따라 오곡암과 폭포를 꾸며놓았고,
바로 옆에 "광풍각"을 세워 놓았습니다.
오곡문은 외원과 내원을 이어주는 통로라고 할 수 있고
담 밑에는 계곡 물이 흐르고 있는 멋진 담장입니다.
이곳 담장에는 소쇄원의 ‘문패’라고도 할 수 있는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이 글씨 역시 우암 송시열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도심 속에 살다가 소쇄원 제월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깐이지만 그들의 풍류를 느껴 봤습니다.
자연과 하나 됨을 추구하셨던 그분들의 풍류와 멋, 맑은 정신
계곡물이 소리치며 흐르는 소리를 듣고
대숲에 이는 바람, 짙은 녹음에 떨어지는 빗소리
구름 사이로 흐르는 달, 맑은 햇살, 찾아오는 친구들
상상해 보면 멋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순이
데레사
2014-05-30 at 00:27
한여름에 소쇄원 갔드니 아주 시원하던데요.
올라가면서 계곡에 발도 담궜지요. 물론.
순이님.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