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잘 때는 사람처럼 누워서 자요.

할머니 뭐하세요?
방에서 컴퓨터를 좀 하고 있으면 손자 한이는
슬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와 쳐다보고 웃습니다.
아침에도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안방으로 달려옵니다.
컴퓨터 작업을 더 할 욕심에 아무 대꾸 하지 않고 못 들은 척 하고 있으면
마우스에 올려 있는 내손을 끌어 내리고 무릎위로 올라오려고 다리를
치켜들고 버둥거립니다.
어쩔 수 없이 "한이구나! 할머니 왜?" 이러면 내 손을 잡아 방에서 끌어냅니다.
“할머니 뭐하세요?” 하는 말끝에는 별별 요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함께 놀아 주던지
책을 읽어주던지
노래를 하든지
그림을 함께 그리든지
놀이터를 가든지
요플레를 냉장고에서 꺼내 주든지.
한이의 시중 들 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는 한이가 요 며칠 집에 없었습니다.
한이 아빠가 회사일이 바빠서 여름휴가를 못 가고 미뤄놨다가
연차를 연말 전에 다 써야하는 일로 일주일 넘게 휴가를 받아서
가족 모두 괌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한이 없을 때 조용하면 글쓰기 교실에 숙제가 있는데 그걸 좀 해야지 했는데
그게 맘대로 되질 않더군요.
할머니~ 하고 잡아끄는 한이가 없으니 어찌나 적적한지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퇴근해 집에 와도 반갑게 뛰어와 안기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니까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고 생기가 없습니다.
어지르는 사람이 없어 물건은 제자리에 있고 먼지도 나지 않지만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요.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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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도 괌에 가서 두 밤을 자고 났더니 집에 가자고, 할머니한테 가자고 하더라는 군요.
바다가 보이는 하얏트 호텔이 좋다고 해도 자기가 늘 자던 방보다는 불편하고
수영장이 아무리 넓어도 우리 집 목욕탕에서 마음껏 노래하고 뛰어 노는 것이 좋고
매일 노는 놀이터의 그네와 미끄럼이 좋고
장난감 자동차 줄 세우며 노는 내 집이 좋은 가 봅니다.

한이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무조건 다 들어주는 만만한 할머니도 그립겠지요.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를 자러갈 때는 다 눕혀놓았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차를 일으켜 세웁니다.
자동차도 누워서 잔다고 생각하는 아기의 생각에 동조해서
한이 엄마도 아기를 재울 때는
“빵빵도 다 잘 시간이야. 누워서 자라고 하고 우리도 자러가자.” 하면서
자동차 눕히는 일을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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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에서 한이 엄마가 잘 놀고 있다고 전화를 하면
한이 잘 노는지 꼭 먼저 묻게 되는데 딸은 서운한척 하면서
“엄마는 왜 임산부 딸을 먼저 안 물어보냐”며 웃습니다.
“너야 어른이니까 알아서 잘 지내겠지만 아기는 물 갈아 먹어서 배탈은 안 났는지
더워서 고생스럽지는 않은지 열은 안 나는지 걱정이 되니까 그런다.“고 하면
임산부인 자기 걱정부터 해 달라고 응석을 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나와 통화를 하면 “얘들은 잘 있나?” 물으십니다.
어머니께서 “애들”이라고 부르는 법위는 결혼한 우리 큰딸과 작은 딸 사위
손자 모두를 말씀하는 겁니다.
나도 우리어머니께 "엄마는~ 엄마 딸이 잘 있나 물어봐야지? “ 이러면
“너야 잘 있겠지 애들 잘 봐라” 하십니다.
“엄마 애들은 다 잘 있어!” 그런 대답을 들은 후에야
“너도 밥 잘 먹고 건강해라.” 그러십니다.
어릴 때 어머니 속 썩이려면 밥을 잘 안 먹고 데모하던 내 모습이
어머니는 아직도 가슴에 걱정거리로 남아 있나 봅니다.
속상하거나 시험 때거나 걱정이 있으면 밥을 안 먹을 때가 많은 것을
어머니는 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뭐 애들인가? 이젠 할머니가 되서 밥 안 먹고 데모해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할머니야. 엄마한테나 이러는 거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더 할머니인 어머니가 계셔서 어울리지 않게
징징거려보기도 합니다.
우리 어머닌 언제나 내 편이고 내 자녀들 편입니다.

두어 달 후에는 넷째 손자가 태어납니다.
몇 년 사이에 식구가 부쩍 늘었습니다.
딸이 결혼해서 일가를 이뤄 4식구씩 되었으니…….
그러니 나이 먹고 늙는 것이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어머니께서 나를 사랑하시듯이 나도 내 자녀를 사랑하고
이제 손자 사랑에 빠져서 삽니다.
오늘은 우리 한이가 집으로 옵니다.
일주일 만에 만나는 우리 한이 재롱이 더 늘었겠지요?
할머니 반가워하려나요?
그동안 할머니를 까맣게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눈을 마주치고 해맑게 웃는 그 모습을 보면 살아있는 기쁨을 느낍니다.

순이

4 Comments

  1. mutter

    2014-11-08 at 06:33

    잘 읽었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더 기쁜 것이라네요.
    누워서 자는 자동차!!   

  2. 노당큰형부

    2014-11-09 at 12:34

    예쁜 손자 한이가
    여행에서 돌아와
    할머니와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있겠군요^^

       

  3. 공군

    2014-11-11 at 03:49

    나두 자동차를 눕혀 재워야지..매우 창조적인 생각입니다
    둘씩 낳는 세대들은 참으로 복받을 가정입니다
    할머니는 점점 깊어만 가고…ㅎ   

  4. TRUDY

    2014-11-23 at 03:58

    갓난이때 보다 미남 됐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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