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싸워 이긴 기적을 올해 마지막 포스팅으로

친구의 손자 백일에 다녀왔습니다.
이 친구는 우리병원에 1년 넘게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에
손자 백일잔치를 하는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3개월도 살지 못한다는 암환자였었나 싶게 기적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차려진 음식도 맛있었지만 손자를 돌보며 생활하는

친구의 일상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이 친구와는 오래 이웃하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작년 1월에 백혈병으로 여동생을 잃고 너무 충격을 받아,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어서 기운을 잃고 시들시들 하고 있는데
이친구의 암 발병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궁암이 뇌와 뼈에 까지 전이 되어 회복 되리란 기대는 전혀 못하고
세브란스 암병원에서 여명을 3개월 정도로 내다 봤습니다.
그래도 일단 자궁암 부위는 수술로 들어내고 머리에 있는 암과
뼈에 전이된 부분은 레이저 수술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환자가 집에 있기는 힘드니까 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당일 내과 의사선생님이 주치의를 맡으면서
"암은 못 낫는 거 아시지요?" 라고 말해서 환자의 살고자 의지와
소생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마저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회생불가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지요.
친구와 나는 병원에서 만나 출입문 앞에서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친구는 암환자 처지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울고
난 내가 무슨 팔자인가(!) 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동생을 잃고 우울한 중에 있는데 아픈 친구를 옆에 두고 고통 받는 것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것은 고문일 것이라는 지래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는 천성이 명랑하고 먹는 것을 즐기고 친구를 좋아해서
병문안 오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친구에게
"국회의원 나오면 따 놓은 당상이다. 빨리 나아서 정치를 해야 하겠어."
라고 농담을 건넸을 정도입니다.
대게 발병을 하면 초기에는 근심어린 친인척 친구들의 방문이 많지만
일 년 넘게 매일 병문안이 이어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환자도 문병객도 지치고 시들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가 있는 병실에선 매일 즐거운 파티가 벌어지느라
우울할 틈도 없었습니다.
입원은 우리병원에 하고 있었지만 세브란스병원으로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다녔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늘 밝은 표정으로 다니니까 오히려 담당의가
조심 하라고 하면서 의아해 할 정도였습니다.

중환자의 상태로 입원해 있으면서도 죽기 전에 외아들을 장가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들이 데리고 온 며느리 감과 환의를 입은 채로 상면을 하고
병원 근처에서 양가 상견례도 하고 가발을 쓰고 나가 혼주가 되어 결혼식도 치렀습니다.
결혼식 당일도 아주 감격스러웠습니다.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는 모습은 활기차고 예뻤습니다.
손자가 태어난 지난 추석 무렵 퇴원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1년 몇 개월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의 담당의도 뭐라고 의학적으로 설명이 곤란한 상태로
암은 소멸된 듯싶고 조심스럽기 하지만 친구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손자의 백일이 되어 온 동네 백설기를 해서 돌리고
저녁 먹으로 오라고 해서 가게 되었는데 퇴원 후 4개월 만에 만나고 보니
얼굴은 소녀의 뺨처럼 붉고 손자를 돌보는 모습은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나는 눈앞에 기적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친구를 내가 나름대로 파악한 장점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식사를 잘합니다. 밥맛이 좋아 아무리 중한 상태에서도
식사를 거절 하는 법이 없고 뭐든지 맛있게 먹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밥만 잘 먹으면 산다."고 하셨는데 사실입니다.
둘째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명랑합니다.
어려움 중에도 근심하는 얼굴을 하지 않고 "좋아지겠지"생각하고
낙관적으로 문제를 봅니다.
셋째는 친구를 좋아하고 겸손합니다.
소녀처럼 고개를 배시시 꼬면서 애교스럽게 말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로 천진하고 늘 착하고 좋은 말만 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습니다.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인데 암환자로서 암을 극복한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식사를 잘 하는데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암의 부위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게는 암환자가 살찌는 것을 경계하는데
이 친구는 잘 먹었기 때문에 암을 극복했다고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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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이 된 아기는 할머니를 닮았습니다.
순하고 잘 웃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어르자 까르르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위협받던 암환자에서 벗어난 친구가 평범한 할머니가 되어
손자를 돌보는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암과 싸워서 승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분명 기적은 있습니다.
새해엔 이렇게 기쁘고 감사한 포스팅이 더욱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순이

6 Comments

  1. 데레사

    2014-12-31 at 00:03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에 저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 친구분, 꼭 완치될거라 믿어요.

    내년을 위하여 아자아자 화이팅!   

  2. 벤조

    2014-12-31 at 03:03

    한해를 좋은 소식으로 마무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이님과 같은 좋은 친구가 있어 그분의 삶이 더 활기찰거예요,
       

  3. 필코더

    2015-01-01 at 02:52

    제가 얼마 전에 ‘암과 싸우지 마라’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이 분은 "암? 니 마음대로 해…난 너와 ‘맞짱’뜨고 싶지 않아..나는 내 방법대로 살거야"라는 마인드를 소유하신 것 같습니다. 의술만으로 병을 고칠 확률은 50% 미만이라는 것을 어느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의술+자연치료+환자의 의지>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정설일 것 같고, 친구분은 이것을 신봉하는 것 같습니다.    

  4. 노당큰형부

    2015-01-01 at 12:03

    정말 기적이 우리 주변엔 많은것 같습니다.
    친구분의 쾌유 소식을
    신년 원단에 접하며 느낀 생각입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5. 말그미

    2015-01-01 at 19:30

    새해 벽두에 기적을 봅니다.
    기분 좋습니다.

    제 생각에도 음식 잘 먹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친구 좋아하고… 그럼 성격도 명랑 쾌활하진 않을까요?
    딱 기적일 만큼의 조건인 상 싶습니다.

    순이 님,
    새해도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
       

  6. dotorie

    2015-01-02 at 15:26

    암환자들은 암으로 죽는게 아니고 안/못먹어 죽는다고 하지요.
    억지로라도 먹은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한해도 푸근한 글 많이 올려주시고
    더욱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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