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초코렛과 사탕을 아낌없이 주는 시간

주말이면 가끔 딸 내외가 심야영화를 보러 갑니다.
심야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극장을 갈 수가 없으니까
한이를 재워놓고 내외만 다녀오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정쯤 시작하는 영화 한편 보기 위해서는 한이를 11시쯤 재운 다음
한이 엄마 아빠가 살짝 빠져나가고 내가 한이 옆에서 자야하는 합동작전이 필요합니다.
혹시나 한이가 자다 깨어 엄마가 없으면 놀랄 것 같아서요.
대게는 한이가 깊게 잠자는 시간이라 별 문제가 없는데 가끔은 깨어나서 울기도 합니다.
그런 날이면 한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뺍니다.

지난밤에도 한이 옆에 자려고 누웠는데 한이가 이불을 안 덮고 자기에
이불을 살짝 덮어준 것이 사단이 되어 한이가 깨었습니다.
여름에도 이불을 덮어야 자는 할머니와는 다르게 한이는 이불을 안 덮고 잡니다.
그래서 수면조끼를 입혀서 재우기는 하지만 하얀 발은 그냥 노출되어 있어서
추울 것 같아 아랫도리 쪽으로 이불을 덮었더니 이불을 발로 차다가 어떨결에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극장에도 미처 도착하지 못했을 시간이라
다시 돌아오라고 할까 하다가 할머니 체면이 있지 모처럼 영화한편 보러 간 내외를
불러 드리기엔 미안해서 한이와 서너시간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한이는 말을 하고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니까 무작정 울지는 않고 말을 합니다.
“할머니 엄마 어디 갔어요?”
아직 극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어려워서 엄마가 가끔 중산공원에
운동하러 가는 것을 아니까 운동하러 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엄마랑 아빠랑 운동하러 갔어, 금방 오신데 걱정하지 말고 자.”
“엄마 빨리 오라고 전화하세요.”
“엄마 전화 안가지고 갔나봐”
그러자 한이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울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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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에 아기를 울리면 안 되겠기에 초코렛을 줄까 물었습니다.
요즘 한이가 초코렛 맛을 알아서 초코렛으로 딜을 하면 가장 잘 통합니다.
"초코렛 줄까? 핑크색 말랑카우랑 파란색 말랑카우도 주고?"
울다가 초코렛 소리에 뚝 그칩니다.
한이를 안고 주방으로 가서 찬장에 있는 킨더초코렛을 꺼내 주었습니다.
말랑카우는 아기들이 먹는 소프트한 우유사탕인데
포장지가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사탕을 먹을 때는 꼭 색갈이 다른 것을 하나씩 두개를 달라고 합니다.
한이 엄마도 없겠다. 울음도 달래야겠고 한이에게 사탕 인심을 쓸 수 있는 기회이고
울지만 않는 다면 나는 뭐라도 한이에게 해 줄 태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깨어났으니 초코렛이나 사탕이 그다지 유혹적이지 않고
오직 엄마만 있으면 될 것 같은지 할머니가 대안으로 제시한 킨더초코렛도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은 눈치로양손에 받아 쥐고 이리저리 들여다보면서
울까 말까 망설입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킨더초코렛 종이를 벗겨서 입에 넣습니다.
한밤중에 초코렛을 먹고 양치를 못하고 자면 치아가 걱정인데….
그러나 우선은 안 울리는 것이 중요해서 먹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킨더초코렛을 한 개 다 먹고 말랑카우도 두 개를 먹고 나더니 또 울먹울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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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안이 없어서 한이를 가슴에 안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다람쥐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알고 있는 동요는 다 불렀습니다.
아기 수준에 맞게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노래는 가사를 몰라서도 못 부르고
동요 정도를 벗어나면 노래다운 노래를 아는 게 없습니다.

한이가 내 가슴에 안겨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3시경 영화를 보고 딸 내외가 귀가하여 한이가 자고 있으니
안심하는 눈치입니다.
한이 엄마에게 한이가 초코렛을 먹고 잔다고 하면
한이를 깨워 양치를 하게 하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고
그냥 자게 하면 치아에 충치 생길까봐 걱정할 것 같아서
아무 말 하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서너 시간 휴대폰으로 중장비 동영상을 보여 준 적도 있어서
한이 엄마는 내가 아기를 돌보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것은 번합니다.
그러나 아쉬울 때 한이를 맡겨야 하니까 대놓고 말은 못하고
초코렛을 먹고 양치도 못하고 그대로 잘 것이 번한 아이에게
한밤중에 초코렛이나 사탕을 주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한이 엄마와 내가 모녀 사이가 아니고 고부간이면
무지 혼 날 것 같은 할머니입니다.
그렇다고 만날 원칙적이고 바른 것만 할 수 있나요?

잠에서 깨어나면 초코렛을 먹었는데 양치도 안하고 재웠노라고
한이 엄마에게 고백하고 아침이라도 양치를 시키라고 말해야지요. ^^

순이

2 Comments

  1. 축복

    2015-01-04 at 12:10

    저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어요 어떤 젊은 부모들, 설탕을 독으로 알아서 쵸고릿 준 것 알면 눈 흘킴 당하고 난리 부루스. 애봐주고 욕먹고 그런데 작은 입에 넣어주는 할머니 손길은 공범자의 심리 일까요    

  2. 騎士

    2015-01-05 at 07:58

    퇴원했습니다
    그동안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거 감사힙니다
    아직 자판이 몹시 서툴어서 글을 맘대로 못씁니다
    그림도 아직은 못그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화복되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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