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병원 밖을 나오니 찬바람이 얼굴로 훅 몰려옵니다.
길게 맸던 스카프를 풀러 목에 친친 감고 찬바람 속을 걸어
버스 정류장 까지 걸어가기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에 택시를 탔습니다.
요즘은 버스로 거의 출퇴근 했는데, 특별히 춥다는 생각도 들고
내일 모래 이틀은 대구 어머니께 다녀오려고 체력을 좀 아끼자는
그런 생각도 들어서 입니다.
냉큼 택시에 올라타고 보니 나이가 들어 뵈는 기사분이 말을 겁니다.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타도 어서오시라던가 어디로 가시냐고 묻지도 않고
입을 딱 다물고 "어디로 갑니다."라고 말하면 그때 움직이기 시작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 말도 안하는 기사분이 대부분입니다.
나도 그런 일에 익숙해 있어서 무뚝뚝한 기사가 오히려 편하기도 합니다.
"밖에 날씨가 바람이 불고 많이 춥지요? " 하시기에
"네 많이 춥네요." 했더니
"추운 것도 그렇지만 더운 것도 참기 어려워요." 라고 합니다.
추운날씨에 더운 걸 걱정하는 기사분이 특이했습니다.
택시 기사 분들은 직업 특성상 종일 뉴스를 듣고 있으니까
시사에도 밝고 여론도 조성하고 정치적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정치색을 가지고 여러 말을 하는 것은 듣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선거철에 지지정당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상대 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
듣기가 불편해서 택시에 앉아있는 내내 고문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냥 인사로 두어마디 하고 말면 좋은데 말이 너무 많아도 귀찮고
투명인간 취급을 해도 기분이 언짢고 그렇습니다.
추운날씨에 왜 더위타령을 하시나 했더니
왜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기사 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70년대 후반에 가서 4년 동안 일하고 왔다고 합니다.
요즘엔 영화 국제시장 덕택에 월남이나 사우디 독일을 다녀 온 분들의
삶이 재조명 되어 본인들도 잊고 있었던 과거의 추억을 들춰내어
이야기 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어려웠던 삶에 대해 혼자만의 추억이 아닌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에
대해 60대 이상의 아버지들이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삶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영화가 가지는 힘입니다.
“뉴스 들으셨지요? ” 라고 이어서 물으시는데 나는 종일 일하느라
뉴스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식사시간이나 여가 시간이 좀 있으면 컴퓨터로 뉴스를 보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약을 가지고 씨름하느라 카톡 온 것도 열어보지 못했기에
"무슨 좋은 뉴스가 있나요?"기사 분께 물었습니다.
집에 가시면 뉴스 보세요.
어떤 40대 남자가 무직인데 처자식을 다 목 졸라 죽이고 자신은
도망가다가 잡혔더군요. 이러며 흥분해서 말을 합니다.
기사 분은 시간대로 업데이트 되어 들려주는 뉴스를 듣고 있어서
나름대로 그 남자의 자살원인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한때 잘 나갔는데 실직 후 (기사 분은 명퇴라고 했습니다.)
무직상태로 있다가보니 수입도 없는데 부인이 자꾸 돈 달라고 하니까
아내에게 쪼들려서 화가 나서 그랬을 것 같다고 40대 가장의 자살을
아내 탓으로 돌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할대가 얼마나 많은데 왜 자살을 하냐고 하면서
자신은 사우디에도 다녀왔고 버스운전도 20년 정도 했고
택시 한 지도 20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한때 어려운 것을 견디지 못하고 처자식을 다 죽이고
저도 죽으려 했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나는 뉴스도 못 봤고 그 말에 참견할 기분도 아니라서
사우디아라비아 어디에 근무하셨는지 물었더니
주베일 항만건설 현장에 현대 건설 노무자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때 더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도 그 모래열기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합니다.
유조차 같은 탱크로리를 가지고 건설현장에 식수를 나르는 일을 했다며
이분은 스스로 자신의 살아온 길에 감동을 받는 듯 했습니다.
그런 세월을 견디었는데 처자식을 죽인 남자는 강남에서 비싼 아파트에 살고
대학 나온 남자인데 그럴 수 있냐는 겁니다.
자신은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지만 평생 운전대를 잡고일해서
자녀를 다 결혼시키고 지금도 일하는데 본인 생각으로는
대학 교육이 나쁘다고 결론을 내시더군요.
괜히 쓸데없는 공부만 많이 시켜서 일도 못하게 바람만 넣는 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분 말씀에 속으로만 공감했습니다.
직선거리로 4Km남짓한 거리고 신호등을 여러 개 지나온다고 해도
10여분 정도면 도착하는 시간에 기사 분은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는 열심히 들어 들었습니다.
이분은 요즘 극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제시장”의 그 이야기를 살아온 분입니다.
순이
데레사
2015-01-07 at 08:22
오죽 답답하면 죽었겠느냐고도 하겠지만 정말 그럴 용기로
살아주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저도 이 뉴스
보면서 생각했거든요.
기사분 말씀이 맞아요.
대구 가시는군요.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