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또래의 할머니가 된 사람은
딸이나 며느리들이 손자를 키워주기를 원해서 그걸 뿌리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손자를 맡아서 키워줘야 하느냐, 애초에 맡지 말아야
하느냐 이런 이야기들이 큰 이슈입니다.
옛날부터 “밭을 매겠냐? 아기를 보겠느냐?” 선택하라면 밭을 맨다고 했답니다.
손자가 예쁘고 사랑스럽고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여북하면 “애 보느니 밭을 맨다.”고 했겠습니까?
직장을 나가야 하는 자녀의 입장에선 야속한 말이지만
그만큼 애보는 일이 힘들다는 겁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기 돌보기는 젊은 엄마들이 감당하기에도 중노동인데
몸 여기저기서 노화의 신호가 오기 시작하는 할머니에겐 병을 키우는 일입니다.
안고, 업고를 반복하다 보면 차라리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결혼한 여자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육아입니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기엔 어쩐지 불안하고 안심이 안 되지만
현실 적으로 가장 믿고 맞길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입니다.
정서적으로도 안정적이지만 육아 장소가 할머니집이라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중간한 중늙은이가 된 내 친구들도 손자를 맡아 키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딸의 아이 즉 외손주를 길러줍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손자를 길러주겠다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애 보기는 어렵다는 친구도 있고
자녀 다 길러놓았는데 새삼 손자 키우느라 남은 기운까지 다 소진할 생각이 없다며
손자를 맡지 않을 수 있는 비법(?) 내지는 핑계를 서로 교육하기도 하고
심각하게 의논했었는데 그게 현실로 닥치니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딸들이 요청을 해도 단호하게 거절할 듯 했는데 어쩔 수 없거나
자청해서 손자를 맡아서 키웁니다.
그게 순리인 듯합니다.
일산에 사는 내 친구는 지금도 면허만 걸면 자신의 일을 가질 수 있는
전문직 여성임에도 손자들을 맡아서 길러줍니다.
그것을 희생이라고 하지 않고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기쁨으로 여깁니다.
딸들도 사이좋게 엄마의 이웃에 와서 살면서 휴가를 서로 조절하여 엄마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배려해 줍니다.
친구는 손자를 맡아서 키우면서 한 번도 힘들어 하거나 불평 하는 말을 못 들었습니다.
원래 착하기도하고 긍정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큰딸이 낳은 아이, 작은 딸이 낳은 아이까지
전적으로 맡아서 키우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큰딸은 세브란스병원 의사이고 작은딸은 방송국 기자입니다.
큰딸이 아들을 낳고 바로 전문의 시험을 봐야했기 때문에 육아는 전적으로 친구가
맡아서 했고 작은 딸은 방송국 기자라 자정 넘어 퇴근하는 일도 많아서
할머니가 아닌 엄마처럼 육아뿐 아니라 예방 접종 교육까지 철저하게 돌봐주었기 때문에
딸들은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일찍 퇴근을 하거나
출근이 늦어지는 수도 있는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이 딸이 신경 쓰지 않고 직업에 충실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더니 딸 직장의 상사들도 내 친구를 대단하게 생각한답니다.
친구는 자기 자녀를 잘 길렀으면서 여전히 손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큰손자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큰딸이 바쁘니까
초등학교를 등하교를 시켜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학교 다닐 때도 정말 성실했고 모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무엇보다 노력 형입니다.
매일 꾸준히 한눈팔지 않고 공부하던 성실한 친구라 결혼 생활도 성실했습니다.
위로 딸 둘을 낳고 아들을 바라는 시어른들의 소원 때문에 막내아들을 낳았습니다.
막내아들이 아직은 20대 후반이라 몇 년 더 있어야 장가를 가고 손자를 볼 터인데
친구는 아들이 손자를 낳으면 그 마저 키워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나의 아이는 키워주고 아들의 아이는 안 키워주면 아들이 섭섭해 할 것이기
때문에 공평하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내 친구는 옷은 꼭 수녀님처럼 입습니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치마에 머리는 묶어서 뒤통수에 핀을 찌르고
굽 낮은 검정 구두를 신은 얌전한 모습입니다.
밝은 색깔의 옷은 입지 않고 회색이나 검정의 면소재의 옷을 입습니다.
겸손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큰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킵니다.
그래도 가끔은 손자 자랑을 합니다.
둘째 딸이 난 손녀가 얼마나 재롱둥이이고 똑똑한지를 말 할 때는
그녀답지 않게 웃는 소리가 크고 행복해합니다.
그 친구도 나처럼 운전을 못했는데 필요에 의해서 꼭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니
못할게 없다며 아들을 옆에 태우고 시내를 돌아보는 주행연습도 하고
남편과 함께 주행을 겨우내 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자 등하교를 위해섭니다.
자기가 낳은 자녀를 여러 가지 이유로 키우지 않고 할머니에게 맡기려고 하는
젊은 엄마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요즘 젊은 할머니들도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이 키우는 일은 누구나가 다 인정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남들이 다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손자 키우는 일을 행복으로 여기고
잘 감당하는 할머니들이 더 많아질 때 사회가 안정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많을 때 일수록 가정 내에서의 갈등을 줄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할머니들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손자 키우는 일에 바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내 자녀를 위하고 내 손자를 위하는 일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희생이 아닌 즐거움으로 자청해서 손자 기르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글을 쓰는 순이는 왜 손자를 안 보고 직장을 나가느냐 묻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들은 아기를 위해 직업을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그 일을 행복해 합니다.
그들의 품에서 손자를 빼앗아 내가 길러줄 터이니 직장을 나가라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저도 넌지시 “엄마가 애 키워줄까?” 해 봤는데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우겠답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순이
데레사
2015-03-07 at 05:52
문제는 한 아이를 길러주면 그다음 아이도 그 다음 아이도
공평하게 길러줘야 자녀간에도 불평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내 친구는 50대때 첫 손주를 길러주고 이제 막내의 아이는
70대인데 관절염에 허리통증에 시달려서 못 봐주겠다고 했드니
뭐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해서요.
자식들이 많으면 손주들 봐주기도 심사숙고해야 할 세상이 되어버린것
같아서 그게 좀 걱정 스러어요.
저도 딸둘은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손주를 길러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만약 지금 노총각 아들이 장가가서 맡기면 감당할 힘이
될려는지는 의문입니다.
지나
2015-03-07 at 12:40
손주가 불러주는 할머니 라는 이름은
자녀가 불러주는 엄마 라는 이름 과는 또다른 행복한 느낌이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고, 기회가 주어 진다면
아기를 돌봐주고 싶어요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jh kim
2015-03-08 at 02:31
오래전
선배님들께서 하시는말씀들이
손주는 올때는 반가우며 좋고 갈때는 더좋더라고 하시더이다
제가 직접 당해보니
올때는 너무 반가워 어쩔줄모르고
갈때는 시원 섭섭 하더이다
딸들모두 부부가 함께 직장생활을하다보니
보모가 와서 아이를돌보는걸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쨘하답니다
dotorie
2015-03-08 at 05:20
따님들의 결정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애들을 키운 사람으로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지인의 부부는 남자는 주정부 법원 판사이고 여자는 변호사이지만
보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애들을 보면
부모의 사랑 결핍을 눈으로 볼 수 있어 안타깝더군요.
말그미
2015-03-08 at 06:38
그 친구분 참 현명하군요.
전문적 여성임에도 자녀들 뿐만 아니라 손주들까지
다 잘 키워주시니…
보통 사람을 여간해서 그런 결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순이 님도 가장 최선을 다 하시는 모습이 현명하십니다.
내 일도 갖고 손주들이나 수하들에게 사랑도 주시니…
어쩌면 제일 이상적일지도 모르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