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단장을 하고 할아버지를 유혹했지만

할머니 한분이
아침체조 시간에 무지개 홀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예쁘게 보이려고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꽃단장을 하는 것 때문에 방식구들의
새벽잠을 방해해서 원성이 자자합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편마비가 되어 왼쪽 수족을 전혀 못쓰고
오른팔 오른다리에 의지해서 생활을 하느라 뭘 하려면
남들 보다 서너 배 시간을 더 들여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전혀 힘을 못 쓰는 왼쪽 팔을 오른 팔로 들어서 배위에 가지런히 놓아야 하고
왼쪽 발을 오른손으로 들어서 침대 아래로 내려놓아야 움직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일 한 가지도 보통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왼쪽 팔과 다리를 오른손으로 단속을 해가면 움직이려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잠이 깨는 즉시 씻고 화장을 하려고 하는데 방식구들이 너무 싫어하는 것입니다.


낮에는 간병인이 도와주지만 새벽부터 움직이면 간병인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되도록 달게 자는 간병인이나 방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신체 움직임이 부자유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세수를 하려고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해 오래 부스럭 거렸더니
간병인이 잠에서 깨어 "제발 좀 더 누워계시라고" 짜증을 냅니다.
평소에는 천사처럼 착한 간병인인데 잠자는 시간을 방해하면 화를 냅니다.
도와 달라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혼자 하는데도 그러니 할머니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 잠에서 깬 이상 잠이 더 오지 않습니다.
한참을 힘들게 침상에서 내려와 곁에 두었던 휠체어에 올라타고 화장실로 갑니다.
한 손으로 세수를 하는데 다른 할머니가 깨어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다른 분들도 덩달아 다 깨어나 병실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납니다.
간병인이 휠체어를 화장실에서 꺼내 할머니를 침대로 옮겨드리면서 사정을 합니다.
“할머니 지금 새벽 세십니다. 새벽마다 깨어 이러시면 다른 분들이 잠을 못 주무시는데
아침까지 누워 더 주무세요. 저도 자야 낮에 일을 하지요.“
“그래서 내가 물도 살살 틀고 조용히 다니는데 ……”
“어머니는 살살 한다고 하지만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휠체어 부딪치는 소리 수돗물
트는 소리에 다른 분들이 다 깨었잖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정말 힘들어요.“
“조용히 다닐게 걱정하지 말고 더 자요.”
“어머니 그러다 낙상이라도 하면 다 내 책임 입니다. 저도 못하겠어요. 잠도 못자고
너무 힘들어서 중국으로 가야겠어요. “
“…….”

할머니는 아랑곳 하지 않고 침대에서 화장을 시작합니다.
불은 켤 수가 없고 희미한 취침 등 아래서 거의 더듬다 시피 하여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크림을 바릅니다.
거울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화장을 할 수 없어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올 리가 없습니다.
빨리 아침체조시간이 되어 할아버지 옆에 가서 함께 있고 싶은 생각 밖에 없습니다.
밤은 왜 그렇게 길고, 밤에 꼭 자야 하는 것도 원망스럽습니다.

긴 밤을 보내고 아침밥을 먹은 후 앞 침대의 할머니에게 눈총을 받아가며 화장을 합니다.
화장이라야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바르는 정도 인데
앞에 할머니는 무슨 술집 여자를 보듯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리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눈을 흘깁니다.
심지어 들릴 듯 말듯 욕도 합니다.
“늙은 것이 미쳤지, 나이 들어도 곱게 살아야지 무슨 꼴이야…..”
앞 침상의 할머니는 종일 식탁에 성경책을 펴 놓고 고상한 모습을 보이지만
성경책을 읽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느 땐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등에 대고 “미친 할망구”라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행차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몸이 아프긴 하지만 워커를 잡고
움직일 수 있고 인지기능이 비교적 좋은 분입니다.
나이는 90세가 넘었지만 워낙 골격이 크고 훤칠한 모습이라 어디서도 눈에 띕니다.
할머니도 살아 계시고 자녀들도 다 효자들이라 주말마다 가족들이 면회도 빠짐없이
오는 유복한 할아버지입니다.
젊어서도 인기남이라서 요양병원에서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아니 귀찮아합니다.
할머니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병실에 찾아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시큰둥하시지만 할머니들이 경쟁적으로 할아버지의 시선을 받기를 원합니다.
새벽부터 꽃단장을 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짝사랑하는 겁니다.
모든 하루의 일과를 할아버지 주변에서 맴돌고 다닙니다.
할아버지가 휴게실에 계시면 휠체어를 한쪽 발과 한손으로 바퀴를 움직여 다가갑니다.
강당에서 프로그램이 있어서 여럿이 모일 때면 할아버지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휠체어로 비집고 들어가느라 다른 할머니들의 미움을 받지만
할아버지 옆에 다른 할머니가 있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는 요즘 생병이 났습니다.
오래 할아버지 곁을 맴돌았지만 할아버지가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다른 할머니들과 얘기 나누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혼자 휴게실에 있을 때 할머니가 다가가 다짜고짜로
"내가 싫으냐?"고 물었더니
"언제 내가 좋아했느냐?"고 쌀쌀맞게 말하면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니 사모하는 마음에 할아버지 주위를 맴돌던 할머니가 무참해진 것입니다.
할아버지를 짝사랑한 것이 3개월도 더 되었는데 끝내 알아주지 않고 내치니까
할머니는 배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머리도 아프다며 끙끙 거리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병동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도 휴게실에 놀러 가는 것도 새벽 화장하는 것도
다 접고 끙끙 거리고 있지만 도움을 줄 방법이 없습니다.
할머니는 주위 사람에게 “내가 아프다고 할아버지에게 전해 달라”고 해 보지만
주변에 미움만 잔뜩 샀던 터라 아무도 사랑의 메신저로 나서질 않습니다.

누가 사랑은 아름답다고 했나요?
할머니의 짝사랑은 주책없다는 소리만 듣고 끝이 났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화장을 하고 설레임으로 하루를 기다리던
그 활력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불쌍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스럭 거리며 다니는 것이 나을까요?
타인에게 폐 끼치는 일없이 혼자 아픈 것이 나을까요?
조화롭지 않은 것은 늘 사단이 나기 마련이지만
할머니의 짝사랑은 너무 슬퍼요. ^^

순이

5 Comments

  1. trio

    2015-03-09 at 04:38

    그 할머니 참 가엽네요. ㅋㅋ
    그래도 그 분을 지탱해 주는 힘일테니까 아무도 말릴 수도 없겠지요.
    인생이 참 짧고 허무한데… 그 마음을 이해해 주어야할텐데요.
       

  2. 데레사

    2015-03-09 at 08:42

    인생에,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할머니께서 그러므로 행복하다면 그것도 좋은일인데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으니 좀 답답합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3. 푸나무

    2015-03-09 at 11:31

    그러니 참 육신은 쇠해가는데
    왜 마음은 안늙는거지요?   

  4. 대성

    2015-03-10 at 12:38

    그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쨘합니다.
    부디 마음을 잘 추스려서 그 곳 생활의 재미를 찾았으면 합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 하군요.
    "Pledging My Love" sung by Aaron Neville
    이런 노래도 좋을 듯~~~   

  5. 솔이울/유인걸

    2015-03-16 at 20:27

    순이님 헬스에서 내 주변을 맴도는 할멈 꼴 보기싫어 죽겄는데 어떻게 해요?나 집에 할멈하나 있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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