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자신이 없어지고 두려운 마음이 앞서

친구가 일원동에 있는 삼성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질병은 다스리고 극복하며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 때는 철이 없고 터무니없이 자신만만했던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겁이 없어서 일까요? 아니면 어려움을 몰라서 일까요?
나이 먹고 경험이 많이 쌓이면 어려움을 만나도 해결이 쉬울 것 같았는데

오히려 지금은 매사에 두려움이 앞서고 더럭 겁부터 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없고 미리 기운이 빠집니다.
그래서 되도록 어려운 일은 피하고 싶고 안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첨단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삼성병원까지 와서
친구가 입원한 것을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심각한 질병인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픈 친구보다 내 심리상태를 먼저 배려해야 할 정도로 마음이 허술해졌습니다.
60년을 살았으니 주변의 크고 작은 불행과 질병에 이제는 이골이 날만도 한데
점점 더 자신이 없고 질병 앞에 무기력하고 한없이 초라해 집니다.
친구가 큰 수술을 받고 아파서 누워있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수술 받기 전 건강할 때(?) 다녀오려고 서둘러 면회를 갔습니다

친구는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서 작년엔 이상이 없었는데
이번 검사에 위암이 발견되었답니다.
아프거나 특이한 증상이 없었는데 순전히 정기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으니 조기 발견한
케이스라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였고 처음엔 레이저 수술로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답니다.
그러나 조직 검사 결과를 보니 암종이 특이하다고 삼성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부랴부랴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고 합니다.
암세포도 순한 놈이 있고 아주 막가는 놈이 있는데 친구의 위점막에서 발견된 세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포분열이 빠르고 성질이 나쁜 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개복을 해서 위 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산에서 강남구일원동에 있는 삼성병원까지 가는 길이 멀기는 하지만
지하철 3호선이 갈아타지 않아도 되니까 편리했습니다.
검색을 하니 일산에서 삼성병원까지는 약 두 시간이 소요 된다고 하여
왕복 네 시간을 읽을 만한 책 한권을 챙겨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거의 끝에서 끝까지 가야하는 여정이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흔들림이 적은 지하철은 좌석에 앉으면 책읽기에 적합한 환경입니다.
요즘엔 안경을 쓰고는 활자를 읽기가 점점 어려워서 안경을 벗어
머리위에 얹고 책을 눈앞에 가까이 들고 책을 봤습니다.
가끔 책에서 눈을 떼어 둘러보면 불광동역이고 압구정동역이고
신사동역과 고속버스 터미널 역 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책을 반쯤 봤을까 했더니 거의 목적지에 도착이 된 것을 알 수 있어서
책을 핸드백에 챙겨 넣고 일원역에서 내렸습니다.
며칠 따뜻하던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한겨울 보다 더 찬바람이 휘젓고 다니는데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 추위가 사정없이 옷에 와 감깁니다.
길눈도 어둡고 방향도 잘 몰라서 막막한 기분으로 계단을 올라와 보니 버스정류장이 있고
안내문에 01번 버스를 타면 환승이 되고 무료라고 되어있습니다.
조금 기다려 01번 버스를 타서 두 번째 정거장에 내리니 암병동과 장례식장입니다.
매서운 찬바람 속을 헤매지 않게 바로 병동 현관에 내려주는 버스가 너무 고마웠는데
차비도 무료더군요.

회전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섰는데 6층 병실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큰 수술을 앞둔 친구 얼굴을 바라보기 어려울 것 같고 마음이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무겁기만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무거운 표정으로 친구를 만나면 안 되겠기에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필요 없는 걸음을 한 것이지요.
지하엔 식당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커피숍도 있지만 마땅히 쉴 자리가 보이지 않아

다시 일층으로 올라와서 외래 진료가 끝나 한가한 대기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천진하고 예쁜 친구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걱정이 되고
그녀가 살아온 날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마음을 다시 추슬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육층으로 갔습니다.

친구는 나를 보자 반가워하기는커녕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무엇 하러 힘들게 왔느냐며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이런 곳에서 환자복을 입고 친구를 만나니 자존심이 상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친구의 손을 잡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야 이젠 우리도 이런대서 만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 했더니
"그러니? 이런대서 만나는 일이 많아지겠지?"하며 비로소 서먹한 마음을 푸는 듯했습니다.
낮 동안 모든 검사를 마쳤고 자정부터는 금식을 하고 다음날 수술을 한다고 했는데
친구는 표정이 밝고 더욱 선해 보였습니다.
친구는 일산까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날 걱정하고
난 친구의 회복을 기원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녀는 일층까지 따라 내려와 배웅을 했습니다.
옆에는 반백의 머리를 한 초로의 남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환자보다 더 맥이 풀린 모습입니다.

사는 게 점점 즐거움 보다 어려운 일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다 손쉽게 감정을 수습하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야하는데
우선 피하고 싶고 보고 싶지 않고 정면 대결을 피하고 싶고 비겁해 집니다.
수술 전에 문병을 하는 것이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받고 싶어 하는 이런 심리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통의 구체적 원인을 분석하지 않은 채 일단 피하고 보는 유아적인 상태로
퇴화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눈으로 보지 않는 다고해서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그러면서 오늘 수술은 잘 되었는지 걱정은 더 많이 합니다.

순이

5 Comments

  1. mutter

    2015-03-10 at 07:05

    잘 되겠지요.
    잘 될 거예요.
    제 친구남편은 사경을 헤매는데 친구는 초죽음이 되어 있습니다.
    또 한 친구는 파킨슨병이 와서 모임에도 못오고
    시장보기도 힘들다고 하네요.

    내 근처로 모든게 와 있는 느낌입니다.
    어느때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그게 안되네요.   

  2. 데레사

    2015-03-10 at 09:14

    친구들이 큰 병에 걸리고 잘못 될때 마다 다음은 꼭 내차례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요.
    순이님 마음 너무도 잘 이해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 있으니 모두가 힘 내야지요.
    순이님도, 그 친구분도, 그리고 나도.   

  3. 대성

    2015-03-10 at 12:46

    순이님과 아주 가까운 친구이기에 더 그런 것 아닐까요?
    믿는대로 생각한대로 된다고 했으니
    잘될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군요.

    친구의 빠른 쾌차를 빕니다~~~   

  4. 말그미

    2015-03-11 at 13:52

    가까운 친구일수록 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곧 나도 그렇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큰 병은 아무에게나 올 수도 있으니 더 겁이 납니다.

    순이님,
    심신이 활기차면 병도 범접을 못할 것입니다.
    생기 있고 활기찬 나날이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5. 벤조

    2015-03-12 at 05:37

    두렵고 자신이 없을 땐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러고 나면. . . 하나님의 평화가. . .
    빌립보서 4:6-7 말씀을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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