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다닌 우리 동네 목욕탕이 3월 말까지만 영업하고
문을 닫는다는 공고가 붙었습니다.
주변에 스파라는 이름을 달고 생긴 거대한 목욕탕이 두개나 있는데도 잘 버틴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수지타잔이 맞지 않아 더는 문 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목욕탕과 목욕탕 주인도 나와 함께 중년을 보내고 나이가 들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그 댁도 딸 둘을 키워 목욕탕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두 자녀를 결혼시켰고 이제 남편과 둘이서 큰 돈벌이는 안 된다고 해도 소일거리 삼아
욕심 없이 먹고 살기만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매달 적자가 누적되어 어렵다고 하면서
문을 닫기까지 고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농담 삼아 자기는 돈을 벌면 꼭 목욕탕이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기존 시설에 더운물만 준비하면 되는데 요즘엔 자동 보일러로 스위치만 올리면 되니까
알아서 물이 덥혀 지고 목욕탕 입구에서 돈만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나이 들어 큰 노동력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목욕탕 운영이 아닐까 하더군요.
그러나 내가 보는 목욕탕은 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 일찍 부터 보일러 가동하는 일은 남편이 먼저 나와서 하고
아내는 아침식사를 챙겨서 조금 천천히 출근을 합니다.
햇볕도 안 드는 습한 지하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다가 해가 지고 어두워야
지상으로 올라가는 그런 생활입니다.
그나마 돈이나 잘 벌리면 모를까 동네 사람들도 시설이 좋은 스파로 가고
시설이 노후된 어두침침한 재래식 목욕탕은 나 같은 나이 먹은 단골들만 갑니다.
어느 땐 아무도 없는 목욕탕을 전세 낸 듯 혼자서 할 때도 있었습니다.
명절 전이나 공휴일이 되어야 조금 붐비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수익을 낼 방법이 없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네 목욕탕!
나 같은 목욕마니아에겐 아주 중요한 장소 입니다.
휴일 아침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겉옷만 하나 더 걸치고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슬리퍼를 끌고 부스스한 모습 그대로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걸어 목욕탕을 갑니다.
이런 걸 취미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목욕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입니다.
그것도 샤워 보다는 때타월로 피부를 벅벅 밀어야 시원합니다.
우리 딸들을 보면 집에서 샤워는 자주 하는데 때는 안 밀더군요.
때가 없냐고 물어보면 매일 샤워하는데 무슨 때가 있냐고 합니다.
나도 자주 샤워하는데 때가 많은 것은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습니다.
피부과 의사도 때를 너무 빡빡 미는 것은 각질뿐 아니라 피부에 상처를 내기 때문에
때 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 하는 기사를 읽었지만 나는 때를 밀어야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을 보면 피부의 개인차도 있을 것 같고 습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도 중독은 중독입니다.
때밀이 중독(^^)
그런데 이것처럼 개운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온도가 높은 사우나를 두세 번 들락거리며 땀을 뺀 후에 때 타월로 때를 밀고 나면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나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풀리는 듯합니다.
몽이 지푸등 한 것도 사라지고 상큼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행복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가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목욕탕 가는 일을 거의 운동으로 여기고 합니다.
겨울엔 그나마 운동량이 적어서 목욕하는 일을 겨울 스포츠라고 여길 정도입니다.
20년을 다닌 목욕탕
나의 중년을 지켜본 (?) 목욕탕이 사라진다니 아쉬워서 목욕탕 주인에게
시설이 노후 되긴 했지만 수리해서 다른 분에게 팔면 안 되냐고 했더니 요즘엔 다들
스파로 가기 때문에 수익이 안 나는 동네 목욕탕을 운영할 사람이 없답니다.
그러니 나도 4월부터는 어쩔 수 없이 스파랜드이 스파렉스니 하는
찜질방을 가려고 우체통에 꼽혀있는 할인권을 챙겨봤습니다.
찜질복 포함 입장료가 5000원이니 동네 목욕탕 요금 하고 똑같습니다.
24시간 영업하고 찜질복은 무료이고 연중무휴에다가 참나무 장작을 때는 불한증막에
황토방 소금방 얼음방도 있고 온가족 휴식처인 야외 노천족탕도 있다고 합니다.
나도 이제는 업그레이드된 목욕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대는커녕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안경 쓰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안경을 벗으면 시야가 흐릿해서
습도가 높은 목욕탕 안에서는 더욱 조심해서 다녀야합니다.
그러니 20년 동안 익숙한 공간은 내 집처럼 편안하게 다닐 수 있지만
새로 가는 공간은 습기속에 안경을 쓰고 다니던지 아니면 적응이 될 때까지
조심조심 다닐 수밖에 없는 난코스를 만난 것입니다.
내가 지루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변화를 싫어해서 그런지
이런 환경이 바뀌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조금은 괴롭습니다.
그냥 익숙한 것이 좋고 환경이나 생활이나 모든 것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순환되는 것이 좋지 변화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게으른 내가 즐겨 찾는 장소 하나가 세월의 부침에 견디지 못하고
또 사라져 간다는 것이 슬픕니다.
목욕탕이야기를 일 년에 서너 편 이상을 블로그에 했었는데요.
더 좋은 환경의 목욕문화를 즐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사는 것이 맞겠지요?
순이
데레사
2015-03-16 at 14:44
눈이 그러면 절대로 조심조심 걸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몸에 오일을 발르고 잘 씻어내리지 않아서
미끄러운 곳도 있는데 낯선곳이니 조심 하세요.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면 아주 고생하거든요.
이제 옛날식 영세업은 뭐든 사라지나 봅니다.
솔이울/유인걸
2015-03-16 at 21:37
30년 이발소도, 20년참치집도 집도, 40년 양복 마춰주든 영감도,모두 문닫았습니다.
슬픈일이지요….
해군
2015-03-17 at 01:56
취미생활이 생업으로 이어지면 좋다고 하던데
그 목욕탕을 인수해서 운영하시면 어떨까요?
취미생활, 운동, 스트레스 해소까지 1석3조ㅎ
참나무.
2015-03-17 at 13:33
우리동네는 설명한 곳 비슷한 옛날 목용탕이 아직 두 군데나 건재한답니다
예전에도 몇 번 올리셔서 저랑 비슷하시구나 했거든요
언제 없어질 지 모르니 저도 열심히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