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이 결정 나자
몸은 아프지만 마음속으로 은근 기대가 되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며칠 병원 잠을 자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직장에는 합법적으로 병가를 얻어 출근을 면제 받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나만의 오붓한 시간이 생겼습니다.
책이나 읽고 인터넷도 하고 맛있는 것만 먹으며 좀 쉬어보리라 생각하니
입원이 강제적이긴 하지만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나 가족들이 아플 때 보호자로 병간호를 해 봤고
친인척 지인들 병문안은 다녀봤지만 내가 입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병원놀이”가 은근 어떨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습니다.
“병원놀이”라는 말은 저의 지인이 쓰는 용어인데
그분은 병원에 가끔 입원하는 일이 있어서
병원에 가는 일을 병원놀이라고 말하며 힘든 병원생활을
애써 놀이로 가볍게 여기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입원해야 한다고 하니 보는 사람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생각하세요."
“강제로 쉰다고 생각하고 푹 쉬세요.”
그러는데 그 말이 너무 맘에 드는 겁니다.
최근 새로 생긴 노트북도 폼 나게 써 볼 기회가 된 것 같아서
최신형 노트북과 읽을 책, 세면도구를 챙기면서
어디 낯선 곳으로 여행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병상이지만 노트북을 펼쳐놓고 실시간 환자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볼까
아니면 병원풍경을 그려볼까?
병실풍경도 재미있겠다.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잠자고 먹고 쓸 생각을 하니 얼마나 즐거운지! ^^
열은 높고 몸은 나른하지만 이까짓 폐렴이야 며칠 쉬면되겠지.
이렇게 만만한 기분을 망친 것은 단 한방의 주사였습니다.
검사실에서 오더니 굵은 주사 바늘을 혈관에 찔러 넣고
생수를 물통에 받듯이 유리대롱 7~8개에 가득가득 담고는
술병 마개를 닫듯 바늘을 빼지 않고 막아 놓으면서 주사를 연결할 거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수액 봉지가 연결되고 고단위 항생제라며 커다란 주사기로 주사액을
혈관에 주입하고 나니 몸에 맥이 쭉 빠지면서 그대로 침상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머릿속에서 용암이 끓는 것 같은 느낌이 나면서
머리를 들고 일어나 앉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귀에서는 앵~ 하는 사이렌 소리까지 납니다.
주치의에게 얘기했더니 항생제 주사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면
완화 시키는 주사를 놓겠다고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머릿속을 잠잠하게 해야겠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그 담부턴 오심과 구토 어지러움에 시달립니다.
몸이 괴롭고 힘들다가 잠이 좀 들 만하면 커튼 넘어 옆 침상에 계신 할머니가
가래침을 돋아 뱉느라 쿨럭 거리고 숨을 몰아 쉬셔서 저러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들고
폐렴에 치매가 있는 앞에 할머니는 밤새 저금통장이 없어졌다고
누가 가져갔냐고 부스럭 거리고 찾으시고
화장실 가겠다고 조르시는데간병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4인실에 폐렴으로 산소를 마시는 할머니 두 분 그 앞자리는 하룻밤에도
입원환자가 두 명이나 바뀌었습니다.
다음날 수술을 한다며초저녁에 아주머니가 입원을 하더니 검사결과
수술을 할 몸 상태가 아니라며 며칠 집에서 약을 먹고 쉬었다 오라며
퇴원을 시키고 나더니 자정이 넘어서 응급실을 통해 숨이 차 헐떡이는
할머니가 입원을 하느라 불을 환하게 켜 놓고 사람들이 부산하게 드나들었습니다.
그들은 조용조용 말한다고 하지만 한 겹 커튼 넘어 일이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누워있는 내 침상으로 들려옵니다.
서울역대합실같은 소란함이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벽 4시쯤 되어 겨우 잠잠해 져서 잠이 들까 하는데
새벽 다섯 시에 혈압을 재러 와서 깨웁니다.
혈압을 잰 후 지하1층에 내려가 엑스레이를 찍고 오랍니다.
새벽 다섯시에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 이유가 뭐야?
낮에 찍어도 될 일을….. 속으로 투덜거리며
수액거치대를밀면서 비척거리며 엑스레이를 찍으라는 지하로 내려가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벽에 붙은 거울을 보니
환의를 입은 어떤 늙은 여자가 푸스스한 머리를 하고
낯설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며칠 있으면 없던 병도 더 생길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어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조용한 내 집 두고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집에 가서 약 먹고 쉰다고 해야지………
그렇지만 그게 내 맘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원도 어렵지만 퇴원은 더 어려웠습니다.
입원 첫날부터 잠도 못자고 시달리고 났더니
다음날부터는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 머리를 들기조차 어려워서
침상과 합체를 이루어 무거운 침상만 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는커녕 일어나 앉아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노트북은 가방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하고
책은 앞장도 안 열어봤습니다.
어지럽고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서 눈을 수건으로 덮고
침상 위에서 완전 플랫상태로 있었습니다.
병원놀이가
넘어진 김에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우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순이
mutter
2015-04-11 at 23:00
으흐흐~ 병원놀이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순이님
데레사
2015-04-11 at 23:04
순이님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한게 아니었군요.
폐렴이 얼마나 심했길래 그렇게 주사를 주렁주렁 달았을까요?
정말 없던 병도 생길것 같은데요.
아프지 말아야지, 아픈게 죄이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겠어요.
이제는 괜찮으시죠?
벤조
2015-04-12 at 05:08
에그…고생 많이 하셨네…
이젠 퇴원하셨다니 다행이예요.
앞의 포스팅과 순서가 바뀌었나요?
말그미
2015-04-12 at 14:46
순이 님,
퇴원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조리 정말 잘 하셔야겠습니다.
빨리 쾌유하시는 방법이 있어요.
한이와 동생을 한참씩 바라보시기…
금방 나으실 껄요? ㅎㅎㅎ
빨리 쾌차하시길…
煥
2015-04-13 at 00:02
속히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