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과 달리 대학병원은 새벽 일찍일과가 시작됩니다.
새벽 5시만 되면 혈압을 비롯한 바이탈을 재기위해 환자 잠을 깨우고
그 즉시 지하1층에 있는 방사선 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오라고 합니다.
그 새벽에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보호자가 모시고 다니는 환자도 있고
침상에 누운 채로 침대에 실려 호흡기를 하고 오는 중환자도 있습니다.
그래가면서 꼭 방사선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병원에 입원한 이상 병원 룰에 따라야 하니까 나도 수액거치대에 의지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 엑스레이를 찍으러 다녔습니다.
나는 비교적 가벼운 질환이라 링거 거치대를 밀면서 혼자 다녀옵니다.
병원에서 환의를 입고 있으면 잘난 사람도, 잘생긴 사람도, 멋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환자복은 김태희가 입고 있어도 후줄근하다고 하잖아요. ^^
팔에는 링거가 꼽혀있어 자유롭지 못하니 매일 하는 샤워를 못하고
(샤워는커녕 세수도 못하고)
계속 누워있으니 뒷머리가 베개에 뭉쳐서 제비둥지를 틀고 얼굴은 창백하고
푸시시한 몰골이 내가 봐도 봐줄 수 없을 정도로 가관입니다.
환자에게서 윤이 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 거울에서 마주 치는
내 모습은스스로 보기 싫을 정도로혐오스러웠습니다.
아까운 새벽잠을 잘라먹고 기분은 몹시 언짢은 상태에서 방사선실을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 한분을 방사선실 앞에서 3일을 같은 시간에 마주쳤습니다.
할아버지는 수액거치대를 양손으로 잡고 걸음을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걷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즐거운 모습입니다.
가까이 가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인지장애 있어서 행동이 좀 이상한가 보다 하고 조금 거리를 두었습니다.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마주쳤는데 노인이 부르는 노래가 또렸이 들렸습니다.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당신만 아세요. 여든일곱 살이에요.
다시 유심히 들어봤습니다.
“가만히” 하면서 오른쪽으로 사뿐 뛰고
“가만히” 하면서 왼쪽으로 사뿐 뛰면서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당신만(죽음) 아시라고
저승사자를 가만히 오라고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노래가사가 이렇습니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언제나 정다운 버드나무 아래로.
이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여든일곱 살이에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여기는 백병원 백병원입니다.
할아버지가 부르는 노래가사를 듣자니 가슴이 서늘 해 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승사자가 자기를 잡으러 오라고
나이를 밝히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할아버지 나이를 몰라서 모시러 안 오시는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여든일곱 살이라고 무한히 반복해서 노래 부르며 다니셨습니다.
죽기를 소망하는 노래치고는 너무 명랑하고 유머가 있어서
소망대로 저승사자가 모시러 쉬 올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
내가 병원에 입원하자 가장 속상해 하는 사람은 내 딸이었습니다.
워낙에도 마음이 여리고 착한 딸이기는 하지만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해서인지 견딜 수 없이 속상해 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아플 수도 있지. 너 때문에 맘 편히 아프지도 못 하겠다."
싫은 소리를 했지만 딸은 본인이 아픈 것보다 더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애써 괜찮다고 위로를 하면서 며칠을 병상에 있다 보니
자녀를 위해서도 아프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야 없겠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더욱 노력을 해야 하겠다는 자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태 큰 병이 없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었습니다.
감기도 없이 폐렴에 습격당한 나의 허술함에 스스로 속이 상했습니다.
우리 병원 내과과장님은 내가 출근하자 악수를 청하시면서
"연세가 있으셔서 이젠 건강에 유의 하셔야 합니다." 이러시는데
연세라는 말에 웃음이 나긴 하지만 실제로 나이 탓이기도 한 가 봅니다.
보는 사람마다 이젠 연세가 있으셔서 조심하시라고 하는데
이놈에 연세는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알았는데 언제 내 것이 되었나봅니다.
연세타령을 듣지 않으려면 조금 더 건강에 유의해야 하겠고
평소에 건강한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게을러서 평소에 운동도 안하고 숨쉬기만 겨우 하고 산 것을 반성 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하니까요.
특히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는 일이
내가 안 아프고 사는 일 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가만히 오라고 노래 부르면서까지 청하지 않아도
조용히 찾아온 죽음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순이
물위에 달가듯
2015-04-16 at 03:40
병원에 입원 해 계시는군요
조속한 쾌유 빕니다
이제는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부지런히 운동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운동을 하여야 좋은가 선택하기가 마뜩치 않습니다
집안에서 조용하게 할 수 있고 효과 만점인 도인술을 소개 합니다
저는 도인술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장수보다는 자연사를 계획하셔야 합니다
부지런히 운동하여 건강하게 살다가
쇠잔하여 자다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도록,,,,,,,,
데레사
2015-04-16 at 09:11
그 할아버지 재미있습니다.
죽음을 저렇게 명랑하게 받아 들일수 있다면 참 좋은
현상인데… 그래도 마음은 측은합니다.
아직은 연세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에요.
좀 지나면 씩씩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갈겁니다.
너무 소심해지지 마세요.
말그미
2015-04-17 at 12:52
순이 님,
연세라니요.
이제 한창입니다. ㅎㅎㅎ
환자복을 입으면 잘난 사람도 없고
전부가 환자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그만하시고 일어나신 것을 축하합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연록색 계절 만끽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