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에 퇴근을 하면 6시 20분쯤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에 내립니다.
요 며칠 비온 후 날씨가 좋아지자 정류장에 손자 두 명과 딸이 마중을 나옵니다.
정류장에 버스를 내리면 아기는 유모차에 있고 한이는 자전거를 타고
딸애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만나면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나를 기다리는 세 식구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바로 오기는 아까워서 유모차는 딸이 밀고
자전거는 내가 밀면서 가까운 중산공원을 한 바퀴 산책 합니다.
요즘엔 봄꽃이 어디라도 활짝 피어있어서 공원이 화려합니다.
철쭉 색갈이 붉은색에서 부터 보라색 흰색도 있고
간간히 라일락 향기가 바람에 날려 와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게 됩니다.
나무마다 연한 연두색 새잎이 나서 싱그러운데
그 아래를 유모차를 밀면서 아기들과 함께 걸으면 더없이 기분이 상쾌합니다.
공원을 두어 바퀴 산책한 후에 가까운 페스트 푸드 점에 가서
한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는 콜라를, 한이 엄마는 커피를 한잔 마십니다.
유모차를 밀어주면 잠을 잘 자는 까꿍이는 유모차 안에서 잠을 자고
세 식구는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다리를 쉬어서 집으로 옵니다.
산책 중에 한이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면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을 불러줍니다.
“새싹이 쏘옥 얼굴을 내밀어요.” 하면서
고개를 위로 쭉 빼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여러 번 청해서 듣습니다.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라는 노래도 부르고
“삐약 삐약 병아리…. ” 이런 노래를 부르는데
어린이집에서 어린 아기들을 맡아서 고생도 많이 하고
뭐라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고마움을 표시하느라 과일이나 빵 같은 간식을 수시로 가져다 드리며
선생님들께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한이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
오전 10시부터 오후4시까지 한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놀다 오니까
그 시간에 한이 엄마는 신생아에 열중할 수 있습니다.
한이가 집에 오면 두 아이 돌보기 힘들어서 어느 날은 한이엄마가 나에게
"엄마도 우리를 이렇게 키웠겠지? 나는 손이 네 개였으면 좋겠어,
아이 씻기고 먹이고 빨래해서 널고 개고 하다보면 하루가 언제 가는지 모르겠어."
이러더군요.
MBA 공부까지 마친 사람인데 집에서 아이 육아에 전념하는 것을 보면
어느 땐 너무 비효율적이지 아닐까 하다가도 손자들에겐 더없이 좋은 엄마니까
아이 둘 잘 키우는 것이 유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젖먹이 아기를 남의 손에 맞기고 일을 한다면 본인은 경력단절 없이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에 아기들은
할머니나 남의 손에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친구는 오래 공직에 있다가 올해 퇴직을 했는데
결혼 후 아기를 늦게 낳게 되어 기다리던 아기라 너무도 아기는 귀하지만
일을 놓을 수가 없어서 입주 도우미를 두고 아이를 길렀답니다.
할머니였는데 딸아이는 도우미 할머니만 좋다고 하고
엄마는 남 보듯 하며 자라더니 지금도 엄마랑 정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친구는 직업을 잘 유지해서 지금은 연금을 두둑이 받는 퇴직자가 되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반듯하게 잘 크긴 했지만 어릴 때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은
지금도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정답은 없는데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 경력단절을 하지 말고 일에 전념을 해야 하고
육아를 소중하게 여기면 일 생각하지 말고 아이 키우는 일에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래도 수시로 갈등이 있기는 한가 봅니다.
사실 일하는 게 쉽지 애 키우는 일은 전천후 노동이고 어렵습니다.
딸아이가 가느다란 팔목을 해가지고 두 아이와 씨름 하는 것을 보면
엄마로서 보기가 애처롭습니다.
그렇잖아도 몸도 약한데 아기에게 젖을 먹이니까 더 말랐습니다.
아기에게 쉴 새 없이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손자가 아무리 귀해도 내 딸이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내 딸은 자기 아들이 귀하니까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겠지요.
신생아가 벌써 80일을 넘어 백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낳으니까 아기들은 금방 자라는 것 같습니다.
가끔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주면 아기가 방긋 방긋 웃으며 쳐다보는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한이는 자동차 장남감은 조금 시들하고
카봇이라고 해서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에 푹 빠져 있습니다.
구급차나 소방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데 이리저리 관절을 비틀고 빼고 하는
과정이 재미있나 봅니다.
나는 딸아이만 키워서 그런지 집에 자동차나 로봇은 하나도 없었고
곰 인형이나 마론 인형 소꿉놀이 같은 것만 많았습니다.
성별은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가지고 노는 게 달라서 신기합니다.
인형을 안고 소꿉장난 하던 내 딸은 자라서 엄마가 되었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퇴근을 기다리는 세 식구를 집이 아닌 정류장에서 만나는 기쁨도
대단히 큽니다.
오늘도 날씨가 좋으니까 정류장에서 어린 손자와 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이 가득한 공원에서 데이트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이런 것도 소소한 행복입니다.
딸이 경력단절을 감수하면서도 육아에 전념하니까
누릴 수 있는 여유입니다.
순이
데레사
2015-04-23 at 09:31
나는 두딸이 다 전업주부에요.
큰 딸은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 두었고
둘째는 미국에서는 직업을 가졌는데 해외로 떠돌면서
직업을 그만 두었지요.
살림을 알뜰히 살고 아이들 잘 키우는것도 직업 못지않게
중요하거든요.
나는 늘 일에 얽매여서 애들을 좀 방치해서 키워서 늘 미안한
마음이 좀 있긴 합니다만 나이들어 경제적으로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으니 그것으로 감수하라고 마음의 위안을 삼습니다.
아이들 크는 재미, 정말 예뻐요.
벤조
2015-04-23 at 17:39
데레사님께서 가장 적절한 답글을 해주셨는데 (항상 그러시지만)
경력과 육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아이 잘 기르고 살림 잘 하다가 다시 자신의 커리어를 키워나가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요.
저는 전업주부나 마찬가지였는데도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어요.
아무튼 지금 만족하고 행복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그미
2015-04-25 at 14:35
퇴근길에 세식구의 마중!
생각만으로도 그 광경 행복을 보는 듯합니다.
육아든 일이든 각자 형편에 맞게 할 일이지만
그래도 아기는 할 수 있으면 엄마가 키우는게 제일 좋지요.
학력이 너무 아깝지만 제일 현명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